하면서 힘을 내기!

네, 하면서 힘이 납니다.

 

아, 물이 철철 나와서 얼마나 다행이냐,

오늘 설거지를 하며 빨래를 하며 청소를 하며

이 물이라도 얼어붙으면 사는 일에 고단함이 얼마나 더할 것이더냐,

산골서 물 얼어붙지 않고 이리 쓰고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고마웠습니다.

 

털신을 챙겨서 내야할 시절입니다.

어느새 또 널려진 현관 앞 신발들도 챙겨 숨꼬방으로 가지요.

어, 그런데, 오늘은 다른 일을 하리라던 참이었으나

여기 가면 여기 쌓인 일이 저기 가면 저기 쌓인 일이 발을 묶는

공간 너른 산골살림이지요,

쌓여있는 모든 신발들을 정리키로 합니다.

‘보일 때 하기! 나중엔 못하리.’

요새 구호삼고 지내는 말이지요.

털이 너무 낡은 것은 고무가 성할 지라도 방한에 도움이 되진 않을 게다,

눈 딱 감고 치워내고,

아무리 새 것이어도 이 산골서 신을 일 절대 없겠는 신발도

여러 해 만에 비로소 버립니다.

결국 공간만 차지하다 단 한 번도 볕을 보지 못한,

가져다 준 이의 호의에 대한 예의로 그 지경에 이른 것들이었지요.

이곳에서의 여벌의 신발이라면,

여름과 겨울 사람들의 산오름을 위해 챙겨두는 것이 목적의 대부분입니다,

그 한 켤레가 없어 고생하던 어른을, 아이를 보지 않겠다고.

얼마 전 숨꼬방을 채우고 있던 한 이웃의 짐이 이태를 넘기고 나갔습니다.

그에 갇혀있던 우리 살림들이 모습을 드러내니

비로소 맨 안쪽 장도 열 수가 있었지요.

이불 거기도 몇 채.

다 꺼내 빨래도 시작합니다.

 

파를 묻습니다.

배추 오던 때 황간의 점순샘댁서 온 것들입니다.

겨우내 먹자고 간장집 볕 좋은 곳에도 한 줄로,

그리고 부엌 가까이 뒤란에도 한 무더기 심어둡니다.

어디가면 실한 파가 그리 탐이 나데요.

밭 가득 덮은 그 댁 밭이 그러하더니,

한 가득 실어주셨더랬답니다.

고맙습니다.

 

남아있던 마른 고추 꼭지를 따고,

냉장고를 정리합니다.

계자 앞두고 또 할 일 없이

김장 앞두고 하는 결에 한 번에 하기로 마음먹고

넣을 땐 알았으나 어느새 잊힌 것들 꺼내고,

지금 알지만 나중에 잊힐지도 모를 것들 이름표를 다 붙여둡니다.

밥상머리 공연하는 무대에 어느새 쌓여있는 짐들도 정리하고

내친김에 가마솥방도 정리.

 

이 겨울 막바지를 위해 마지막 남겨놓았던 벼가 있었습니다.

빻습니다.

이제부터는 곳간 비어 순전히 사먹는 쌀이 들어올 것입니다.

가까이 사는 이웃들의 유기농 쌀이 오기도 할 것이나

방앗간에서 일반농 쌀을 사들이기도 할 테지요.

또 이는 생각, 벼농사만은 해야지 않나...

 

“어머나! ...”

뒤란 감춰진 쓰레기.

지난 여름 남정네들이 우르르 붙어 부엌 앞 쓰레기들을 치워주었습니다.

깔끔하게 비어진 공간을 보고 고마웠더랬습니다.

아, 저는 거기까지만 알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거기까지만.

다 분리 되어 있겠거니,

아니면 그냥 좀 쌓여있겠거니,

몇 발 더 걸어가 확인치 못하고

그저 지금 눈앞에서 없어진 것에 감사해라 했습니다.

그런데, 온통 뒤섞여 산을 이루어

바깥수돗가 뒤란 후미진 곳에 ‘감춰져’ 있었습니다!

세상에!

그건 치운 것이 아니라 감춘 것입니다.

다시 분류해야 하고, 다시 실어내야 하고,

일은 더 많아졌습니다.

할 때 제대로 하지 않으면,

혹은 할 때 뒷일을 생각지 않으면 그리 됩니다.

좋아라 했던 자신이 낯뜨거웠습니다.

누가 이 살림을 다 헤아리며 살 것인가,

사는 자들의 몫일지니...

 

당장 빻아야 하는 마른 고추가 아직 꿉꿉하기

아이가 챙겨 달골 이불방에 깔았습니다,

가장 온기 있는 방.

어느 아이가 그럴 것인가,

시킨 것도 아닌데 기특하고 고마웠습니다.

오후엔 저가 쪽파를 다듬어 놓고 있었지요.

제(자기) 삶이 고단키는 할 것이나 참 잘 크는구나 싶었습니다.

이마저의 배움도 없다면 이제 산을 나갈 일이겠습니다.

 

내일부터 하겠다던 김장, 달랑 식구 셋 하리라 했습니다.

그래서 200포기 넘을 배추를 150포기만 해야지 하는데,

한밤, 집안 어르신의 연락입니다, 기차 타고 가마는.

이것도 물꼬의 기적의 범주에 넣겠습니다요, 하하.

부랴부랴 달골도 청소.

혹여 햇발동에 머무실지도 모르겠기에.

그리고, 기락샘은 일본 출장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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