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12.달날. 흐림

조회 수 1147 추천 수 0 2011.12.20 12:00:50

 

김장 갈무리.

8일 배추를 절이기 시작해서 어제 땅에 묻은 통에 넣기까지

나흘일이 마무리 되었으나

고추장 담고 메주 쑤는 이즈음에 같이 하는 일들까지 마저 하자니

이리 닷새가 되었습니다.

 

밭에 남은 배추 덮어두기.

겨우내 된장 풀어 끓여먹을 테지요.

묻은 파 덮어두기.

역시 겨우내 야금야금 빼서 총총 썰어 쓰일 테지요.

 

마른 고추 다듬기.

붉은 고추를 볕에 말려내는 일은 쉽지 않지요.

그래도 작년보다 나아져 올해는 고추농사 좀 했습니다,

다들 고추 흉년이었다는 해였으나.

그래도 못난 놈들 있지요.

잘 다듬으면 다싯물을 만들 때도 생선을 조릴 때도 요긴하겠기에

부엌에 드나드는 사이사이 자르고 가립니다.

그것도 한 망태기 되었네요.

띄웠던 청국장 꺼내와 소금 넣고 절구에 찧어서 간도 하고,

효소 항아리도 몇 걸러두고,

뒤란에 쌓아두었던 잣을 까는 건 아이 할머니 일이셨지요.

 

며칠 들여다보지 않은 교무실 일들 좀 처리하고,

한 이틀 비울려면 단도리가 필요하지요,

쓰레기장 뒤란 정리도 합니다.

지난 여름 남정네들이 쓰레기들을 마구잡이로 밀어젖혀놓은 것은

얼음장 물 녹을 때 정리하리라 하고,

어느새 또 쌓여있는 눈 앞의 것들만 분류하고 치우며

왜 바로바로 치우지 않고 던져두냐고 식구들한테 잔소리도 좀 합니다,

언제 해도 해야 될 일 아니냐고.

사실 제 자신에게 하는 소리이지요.

바쁘다보면 밀쳐놓을 수도 있지만 잊지 않고 챙겨서 최대한 정리하기!

지금 보이는 것 하기, 지금 못하면 나중에도 못하리,

요새 되내고 다니는 생활구호라지요.

 

재봉질도 몇,

식구들 겨울 옷들 터진 것들.

옷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지만 즐겨 입는 옷이 있기 마련이고

그런 옷들이 산골 거친 삶에 살아남기 만만찮지요.

애도 어른도 죄 꺼내나옵니다.

 

나갈 걸음에 실어갈 택배도 꾸립니다.

지난 봄 광양서 온 매실로 곳간이 풍성했더랬습니다.

실하게 키운 매실 잘 먹었기에 매실 효소 항아리 비우며 생각나

견과류 조금 보냅니다.

해마다 얻어먹는 매실을 지난 봄엔 이곳에 보내주신 황규희박사님께도

매실효소를 좀 싸지요.

고맙습니다.

매실장아찌도 해서 보내리라 했으나

아이들이 방망이질을 어찌나 해댔던지 그만 죽이 되고 말아

그건 아쉬움만 남았네요.

 

어둑해서야 대해리를 나섭니다.

고속도로에서 한 시간 멈춤.

앞에서 화물차 전복되어

실렸던 소들도 죽었다는 전갈이 건너 건너 옵니다.

사람이 죽었을지도 모르겠는 일에 덤덤하게 소식을 받지요.

아, 잔인한지고,

사람이 그렇습니다.

나 살기가 절박하니 타인에 대한 마음이 이리 건조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산골 겨울 삶은 너무 팍팍합니다.

“언제까지 이러고 살 거고?”

어머니는 하시는 말씀 끝마다 이제 작은 살림으로 살아가길 권하십니다.

어디로든 흘러갈 테지요...

 

한 도시에 들러 일가댁에 김치를 나눕니다.

“형아는 지금 아파트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나는 지금 이 추운 데서 형 먹을 김장을 하는 거네.”

괜스레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했던 아이였지만

나눠주며 마음 좋아라 했습니다.

고마운 일입니다.

물꼬는 또 물꼬 삶 속으로 걸어 들어오는

다른 손발들을 늘 만나지 않던가요.

 

평생을 대학 교단에 섰던 온화한 이모부,

아비 없는 세월에 우리 집안을 건사하고

외가 맏사위 노릇도 하셨던 당신이

근자에 눈이 멀어가고 있습니다.

내려온 길,

바닷가 어시장 가서 회라도 챙겨 내일은 거기 들리려 한답니다.

 

뭉쳐 다 하는 일들이 힘이 좀 들었던가 봅니다.

입술은 갈라지고 코밑은 헐고 잇몸은 붓고 입안은 까이고...

식구들 모다 애 많이 썼더랍니다.

그 등 뒤로 든든한 곳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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