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15.나무날. 해지며 기온 뚝

조회 수 1089 추천 수 0 2011.12.24 02:45:00

 

어릴 적, 아니 꽤 커서도

해마다 해일이 덮치는 마을에 사는 이들이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언덕으로 가지 왜 가지 않고 여전히 거기 사느냐 말이지요.

그건 말입니다, 그곳이 그들의 삶터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숙명 같은 거.

산골에 사는 물꼬 삶이 그렇다 싶어요.

혹독한 겨울 앞에 벌벌거리면서도 떠나지 않고 살아간단 말이지요, 하하.

 

대해리는 의외로 따수웠다 합니다.

소사아저씨는 뒤란 나무보일러실 안 물건들을 정리하며 보내셨다지요.

하지만 해지며 기온 뚝.

처음으로 일가댁에 김장도 좀 나누었고,

집안 어르신들도 뵙고,

장애재활센터 가는 일도 이번학기 매듭을 짓고 왔습니다.

돌아오는 고속도로 경산에서 차내려 청운예당 들러서

서각하시는 성철샘도 뵙고 왔지요,

물꼬 현판 서각해주셨던.

이번 학기 오가는 내내 드리자던 인사가

그래도 갈무리하는 날 할 수 있어 고마웠다지요.

샘은 지금 각 교실에 달 제목판을 궁리하고 계십니다,

글씨는 류옥하다 선수가 쓴 것으로.

 

돌아와 서둘러 저녁 먹고 이장님댁으로 건너갑니다.

메주를 매달려지요.

전 이장님이 몇 해 전 가르쳐준 적 있기는 했습니다만

하던 일이 아니니 그만 잊혔습니다.

그동안 양파망에다 짚 넣고 메주를 걸었더랍니다.

올해는 꼭 짚으로 하려구요.

“자다가 머리통 안 깨질라면...”

마실 왔던 할머니들이 한 마디씩 보태셨지요.

짚을 잘 추려 열 가닥 정도씩 두 묶음 만들어

각각 아래로부터 15센티미터 가량의 위치로 묶고

꽁지가 서로 마주보게 두 묶음을 놓습니다,

세 갈래를 지어 서로 엇갈리게 .

그런 다음 메주 놓고 묶은 쪽 나머지 부분들을 세 갈래씩으로 갈라

한 쪽의 양 두 쪽 짚은 메주를 대각으로 가로 질러 저편으로 보내서

저편의 가운데 갈래와 모아 꼬지요,

저편의 양 두 쪽은 이편으로 같은 방식으로 보내

이편의 가운데 갈래와 만나게 해 모아서 꼬고.

그렇게 메주 위 양 쪽에서 꼬인 두 갈래를 시렁에 묶어주는 겝니다.

 

이번학기, 종교인들과 함께 하는 수행모임이 있었습니다.

어디고 사람이 모이는 일이면 소음이 끼는 일 그리 이야깃거리도 아니지요.

모임을 이끌던 수행자랑 같이 인도를 갔던 이가

실망해서 뒤도 안돌아보고 떠난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그럴 것까지야, 라고 하기 싶지만,

그게 또 사람 마음이지요.

그런데, 며칠 전 그 수행자가 남긴 글 한편을 보고

낯이 뜨거웠던 일 있었습니다.

그만 실망스러워 인도를 다녀와 다시는 볼 수 없는 그니와 같은 마음이 생겼지요.

당신을 험담한 이들에게 한 경고성 글이었습니다.

험담을 했다면 험담한 이들의 죄업이지요.

그게 구업이란 것 아니더이까.

그런데 많은 이들이 좇아가는 큰 수행자가

굳이 그런 글을 쓸 것은 아니지 않았나 싶었던 게지요.

아, 마음의 평화라는 게 그렇게 어려운 것이구나 싶데요.

잠깐이나마(글은 금새 다시 내려졌지요) 균형을 잃은 당신의 마음이 헤아려지고,

나의 ‘해석’과 ‘사실’이 분명 다를 수 있음 또한 머리를 쳤습니다.

그리고,

그저 내 입으로 지은 죄들과 손으로 휘젓고 다니며 지은 죄들,

발로 밟고 다닌 업들을 반성했습니다.

누가 누구를 욕하겠는지요.

내 눈을 찌르고 나를 단도리할 일입니다.

너무나 깨지기 쉬운 살얼음이 우리의 평화 아니더이까.

그러하니 위대한 고승들 또한 그 득도가 유지키 어려워

수행하고 또 수행하는 것 아닐는지.

좋은 공부했습니다.

열심히 수행하려지요.

 

이번 학기 어미 따라 동물매개장애치료센터를 다니며 간 걸음에 말을 타던 아이,

오늘은 엄청난 질주를 하였습니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 조금씩 조금씩 하더니.

그래서 저금하는 놈과 공부하는 놈은 당해낼 재간이 없다지 않던가요.

나날이 한발 한발 나아갈 것.

 

내일 강추위라 하기 여기저기 수돗물을 틀어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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