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16.쇠날. 눈 내린 아침

조회 수 1101 추천 수 0 2011.12.24 02:46:08

 

눈 내리고, 종일 흐렸습니다.

 

가능한 한 눈에 보일 때 하기!

다시 손이 안 가게 하기!

요새 식구들이 하는 훈련이랍니다.

늘 그리해야 하지만, 늘 그리 하려 했지만

편한 대로 흐르기 쉬운 게 또 사람인지라,

상주하는 손발은 적고 공간 넓은 지라,

퍽이나 정리 안 되는 살림이었더이다.

하여 엄동 앞에 결연한 마음으로 하는 움직임이라지요.

우리 일이 주는(줄어드는) 것도 주는 것이지만

그리 더 옴작거릴수록 이곳에 오는 이들이 덜 추울 수 있겠다 하지요.

추위에 웅크리고 얼마나 외면한 일들이 많았던가,

계자에 닥쳐 사택까지는 전혀 돌아보지 못한 채

밥바라지 오신 분들을 재웠더랬답니다.

미안하고 또 미안했습니다.

세밀하게 더 챙길 것!

그러자면 더 부지런할 것!

그렇다고 표도 안난다지만...

 

어른 책방 안쪽을 들여다봅니다.

역시 손도 못 대고 몇 차례의 계자가 그냥 지나갔습니다.

어느새 창고가 되어 있었지요.

쌀자루가 거기 쌓였고,

온갖 잡동사니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다 치워내긴 어렵겠기에

우선 뺄 짐만 내옵니다.

그렇게라도 공간 공간 손을 거치게 할 것!

 

메주를 말리고 청국장을 띄우고 짠 된장에 섞어먹을 콩 띄우던 고추장집,

짚을 다 빼내고 이불들도 빱니다.

청소년계자 잠은 올망졸망 구겨져 사택들에 스며 자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너른 교실에 어설프게 자느니.

여덟의 자식들이 아비어미랑 나란히 겨울 한 방에서 잤다던 얘기를

옛적 듣기도 했더랍니다.

어쩌면 성탄 전야가 더 의미 있고 재미있지 않을까 싶어요.

 

아이가 안팎으로 다니며 어른 일손을 돕습니다,

그것도 홑옷으로.

“안 추워?”

“추우면 제가 입어요.”

“하기야 살이 두터워서 그런 갑다.”

추위를 덜타는 아이라 어미 추위가 덜하다니까요.

저것까지 추위가 고통에 가까우면 어이 했으려나요.

청소년계자까지 해야 할 일들,

계자를 위해 중앙에서 해야 할 일들을 점검하고 있는데,

아이도 곁에서 뭔가를 끄적이고 있었습니다.

성별에서부터 지역, 계층 등으로 코드분류표를 만들고 있었지요.

이런 게 공부이겠거니 합니다.

우리 아이들은, 늘, 부모보다 낫습니다요.

 

당신의 뜻한 바대로 살아가는 일이

꼭 이리 추워야 하고 꼭 이토록 불편해야 하느냐,

지기가 물었습니다.

무슨 일을 하면 그렇지 않을까요,

무어나 살아가는 일이 힘에 겹지요.

‘무식한 울어머니’ 늘

천석꾼은 천 가지 걱정 만석꾼은 만 가지 걱정이라셨습니다.

“그래도 안 해도 될 고생까지 하며 살아야 해요?”

고생....

겨울 앞의 산골 삶이 가까이 와서 보니 안쓰럽던 모양입니다.

고행, 삶이 그렇지요.

산골 내 삶의 내 길이려니, 숙명이려니, 뭐 그런 생각 문득 들데요.

예서 살아가는 일이 수행이거니 합니다.

어디로든 흐르겠지요.

 

자등명(自燈明)!

스스로 등불이어라,

자신을 등불로 삼고 나아가라는 말이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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