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장집에서 일어난 아침,

머리가 좀 찌끈찌근한 오전이었네요.

200포기 배추 절이던 일에서부터 장류들 정리며 여러 도시까지 장거리 운전, 강의 종강까지

푹푹 빠지는 눈을 길가로 치워내듯

지난 열흘을 섣달 갈무리로 밀어댄 뒤끝이려니 했지요.

감기 올까 얼른 쉬었습니다, 나절가웃.

지금이 어느 때라고 아픈단 말인가요.

이제 한 발도 나가지 않고 청소년 계자와 계자 준비를 해야 하는 철!

 

생활 동선이 달골까지 가지 않아도 되니

한결 수월합니다.

부엌에서 난로 위 주전자 물로 씻고 움직이는 것도 좋습니다.

그 물로 설거지도 하고 걸레도 빨지요.

 

고추장집 시렁에 매단 메주를 위해

창을 열었다 닫기를 아침저녁 합니다.

마당의 평상 위 무말랭이도 하루 두 차례 비닐을 열었다 닫지요.

가을볕 아래 고실고실 말리는 것도 맛나지만

이렇게 찬서리에 얼리고 말리기를 반복하면

그 맛이 또 일품입니다.

소사아저씨한테만 자주 맡기고

바깥일을 너무나 살피지 않았다 반성도 합니다.

 

답을 기다리는 메일이 여럿이었습니다.

오후에는 책상에서 해질 때까지 움직이지 않습니다,

밀쳐둔 글쓰기도 잠시 손대고.

아이랑 소사아저씨는 큰 해우소 뒤란 창고를 정리하였다지요.

 

참 많은 이들의 손발로 살아가는 이곳입니다.

도움이 많이 필요한 곳, 그것을 축으로 가는 곳,

그래서 더욱 의미를 지니는 공간이지요.

그런데 너른 살림살이로 좇아다니다 보면

도와주러온 이들에게 소홀하기 한두 번이 아닙니다,

마음이야 그렇지 않지만 우리 살아가는 일이 너무 절박해.

그런데, 그 사정을 헤아리고

그리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외려 위로해주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서운함으로 소원해져서 영영 소식 없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날 더운데 와서 혹은 서럽도록 추운 날 와서 고생한 시간들이 보람 없다 싶을

그 맘이 얼마나 불편했으면 그랬을지,

또한 그 불편한 마음을 바라보며 미안하고 속상해서 어찌할 바 모르겠는 순간들,

서로가 상대로부터 함부로 대해졌다는 참담함...

물꼬 역시 다른 곳에 손발을 보탭니다.

그럴 때 어떤 마음이어야 하는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은 또 어떻게 헤아려야 하는지,

그런 일들을 되짚으며 새기고 또 새기지요.

그리고 자신이 똑바로 서야, 건강해야(자긍심도 그런 거 하나이겠지요),

관계도 건강해진다는 걸 또한 되새김질합니다.

물꼬, 이곳에서의 삶이 얼마나 큰 배움인지요.

그래서 물꼬에 산다 싶습니다.

부디 사람들이 와서 마음 잘 쉬다 가기를,

넘들이 아든가 모르든가 그저 우리는 우리의 길이려니 살아갑니다.

아이 왈, 우리도 여기 자원봉사하는 건데,...

그렇지요.

생은 흐르고, 삶은 유한한데,

우리 인간사는 자주 이렇게 허망합니다요.

서로 좋은 일 하고도 이러하니...

 

동지 가까운 짙은 겨울밤,

벨기에의 거장 다르덴 형제의 영화 <아들>(Le Fils, The Son, 2002)을 봅니다,

<로제타, Rosetta, 1999>와 <더 차일드, L’Enfant, The Child, 2005>로

깐느에서 황금종려상을 쥐었던.

5년 전 세상을 떠나보낸 어린 아들,

그리고 그를 죽인 소년이 지금 눈앞에 있습니다.

삶의 기쁨을 잃은 아비의 흔들리는 마음과 삶의 고단함이

거친 영상 위에서 숨결까지 전달됩니다.

영화가 아니라 다큐멘터리인데,

그런데 다큐멘터리가 아니고 영화입니다.

그들의 영화는 여전합니다.

음악은 없고,

인물과의 거리는 일정하고,

대사는 압축되어 있고,

설명은 없습니다.

더하여 갑작스레 암전에 빠지고 침묵 속에 엔딩 크레딧.

영화는 느리나 울림은 바쁩니다.

역시 그들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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