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20.불날. 가끔 해

조회 수 1100 추천 수 0 2011.12.28 10:43:45

 

지난 해 겨울 말이지요, 뒤란 나무보일러실 흙벽 터지고,

지난 봄, 거기 공사 하느라 화목보일러 통을 둘러쳤던 벽을 부수고,

거기 자갈 다 쏟아져 치우느라 식구들이 얼마나 고생했던지요.

화목보일러를 감싸고 있던 벽 허물어지고

그 안을 차지했던 모래와 자갈이 흘러내리고

여름 가고 가을이 갔더랍니다.

다시 겨울, 그리고 계자 앞,

이제야 채웁니다, 지금이라도 채웁니다.

또 하나 해치우고 가뿐해진 어깨!

 

늦은 김장시기에 맞춰 그만큼 뒤늦게 무를 썰어 말리고 있었습니다.

얼고 녹기를 반복하며 무말랭이 말라가고 있었지요.

이런 것 하나도 어디 그냥 되던가요.

뒤집어 주고 살펴주고 아침저녁 비닐 걷고 덮기 여러 날,

좀 두텁게 썰었나 싶더니 어느새 꼬들꼬들해지고 있습니다.

곧 들이겠습니다요.

계자에서 아이들 먹이려지요.

 

문짝이 왔습니다.

흙집 현관에 걸릴 것입니다.

휑한 채 두 차례의 겨울을 그냥 보냈더랬습니다.

시영샘이 신경 쓰고 김재영님이 도와준 일입니다.

곧, 계자 전 시영샘 와서 손을 보태기로 했지요.

아이들 샤워하는데 한기가 덜하리,

마음이 어찌나 좋은지요.

 

낮에는 학교 안팎일들을 하고, 밤에는 교무실로 듭니다.

미룬 재정 정리 이틀째.

아이가 힘을 내며 함께 합니다.

무슨 큰일이 아니어도 세상이 끝날 것 같은 죽음을 맛볼 때,

누군가의 시에서 그랬던가요,

그래서 ‘나에게 위로가 필요’하더라는.

그런 순간순간이 있지요, 온 힘이 다 빠지는.

정리되지 않은 행정 일 가운데 재정이 그런 일 하나였습니다,

계속 밀리면서 손에 잡히진 않고 부담만 커가는.

“무슨 가내수공업 같다, 가족기업.”

식당이 주로 그렇다지요.

그러게요, 우리도 물꼬요식업 같은 며칠이랍니다.

이 아이 아니었으면 진즉에 물꼬 일 접었을 겝니다.

 

한참 전 물꼬에 손발 보태고 간 이들이 있었습니다.

불편한 곳에서 고생을 잔뜩 하고 간 남정네들이

맞아들이고 보내기에 소홀함 때문이었던지 소식 없기 한참,

마음 쓰이고 우울하기 여러 날이었습니다.

그러나, 어쩌랴, 했지요.

그래도 시간이 가니 낫습니다.

아, 시간에 기대는...

다 흘러가는 게지요.

질긴 우리 생이 그러다 어느 지점에서 멈출 겝니다.

그냥 흘러가면 될 일이겠습니다.

 

첫 계자 규모로 아직 고민이 가셔지지 않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괜히 여러 사람들 힘들게 하고 보람 없이하는 게 아닌가 하는.

“어머니, 해요!”

수명이 적어도 하자고 아이가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우리가 따로 재정적으로 손해만 안본다면...”

진행하라는 겁니다.

“제가 밥바라지 보조할 게요.”

하기야 그 아이라면 웬만한 대학생보다 나을 겝니다.

“그래, 하자!”

한밤 선정샘한테 긴급 타전.

첫 밥바라지 오는데, 두 번째로 오실 수 있겠냐 물었습니다.

밥바라지 신청을 한, 아이 셋을 데리고 어렵게 사는 분이 계신데,

사정을 보아하니 오지 쉽잖을 듯했지요.

그러면 첫 일정은 빈들이나 몽당계자 규모로 제가 진행도 하며 밥바라지를 하고

품앗이샘들이 아이들을 건사하지 했습니다.

정히 밥바라지 자리가 어려우면

젊은 친구들에게 전체를 맡기고 밥바라지를 내 하겠노라,

늘 각오하고 준비하며 삽니다.

돈으로 꾸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

손발을 기꺼이 내민 이들이 꾸려야 그 좋은 기운이 물꼬의 기운과 함께 어우러져

아이들도 그만큼 복되리라 여겨 왔지요.

하여 이번에 밥바라지 없는 두 번째 계자로 선정샘 자리를 이동해주셨음 하는.

아무래도 제가 사람 많은 뒤보다는 앞 일정에 붙는 게

전체 운영에 나으리라 하는 게지요.

 

헐고 부었던 입안이 좀 나아져 먹을 만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에 기대는 일들이 좋습니다.

계절이 그렇지 않던가요,

이 모진 겨울도 봄이 오는 줄 압니다.

이렇게 엄살 좀 부리고 통통거리고 칭얼대다 보면

한 순간 아, 하고 봄이지요.

 

아름다운 시절입니다,

혹독하니 그러합니다.

어떻게든 걸어가니 그러합니다.

경이로운 역설입니다.

 

또 세 시가 넘어가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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