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21.물날. 눈발로 열더니 해

조회 수 1068 추천 수 0 2011.12.28 10:45:19

 

하늘은 눈발로 아침을 열고

우리는 대배 백배로 열었습니다.

몸이 데워져서도,

우리가 맑아져서도

그리고 일을 밀고 가는 강력한 기운이 함께 해서도 좋은 아침이었습니다.

 

이른 아침, 선정샘의 연락이 닿습니다.

답 메일 보냈다는.

그의 성품을 알기에 망설이다

첫 일정에서 두 번째 일정으로 밥바라지 일정을 바꾸어 주십사 했고,

만약 그리 할 수 없어도

물꼬는 어떻게 또 꾸려지는 기적이 있음을 우리 모두 알지 않느냐 강조도 했더랬습니다.

그런데, 첫 일정에 그대로 내려온다는 소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첫 일정 끝내고 올라가는 게 아니라

내리 다음 일정까지 있겠다는 전갈이었지요.

‘추울 것도 살짝 무섭고

세현이가 감기 걸리지 않으면 좋겠다 생각하지만

사실은 사실이고 또

당면한 일은 당면한 일대로

당면하면서 사는 거니까요.’

물꼬의 기적 한 순간이었습니다.

‘샘은 늘 제가 할 말이 없게 해요...’

다른 어떤 말도 못한 채 겨우 한 줄 답글을 보내드렸답니다.

그가 이곳의 최근 몇 해의 삶을 받쳐주고 있습니다.

“대배해서 그래!”

아이가 소리쳤더랍니다.

 

그리고 아리샘과 오고간 문자.

“이 아침 청천벽력이 아니길.

 그대하고 나하고 두 번째 일정 밥한다이!’

젊은 친구들에게 좀 밀고 우리가 밥하자,

지난 빈들모임에서 얘기 나눈 바가 있었더랬지요.

드디어 최종 결정 안으로 연락했습니다.

답 문자.

‘밥하러 갑니다.

영동 가는 일이 이렇듯 결연한 출정이 될 줄이야~’

(그의 대학 1년 때 이대 강의를 가서 만난 인연으로

대학 내내 물꼬의 품앗이더니 이적지 그러하고,

물꼬의 큰 논두렁 역까지 오랜 세월하고 있답니다.

초등 특수교사로 벌써 10년차를 훨 넘은 그는 방학조차 학급 아이들을 달고 다니는데,

새끼일꾼들은 그를 일러 마더 테레사라 부르고 있습디다.)

그리하여 어느 때보다 최강 부엌이 되었답니다.

선정샘이라면 물꼬의 가장(!) 훌륭한 밥바라지이지요.

품앗이일꾼들에게 새끼일꾼들에게

그보다 더한 스승은 여태 없었습니다.

뭘 가르쳐서가 아닙니다,

오직 그가 온 몸, 마음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말이지요.

보고 배우는 법이다마다요.

저 또한 그로부터 배운 바가 얼마나 컸던지요.

최근 몇 해 앞치마 챙기고 작업복 챙겨 다니며

가는 곳마다 환영받았던 것도 그로부터 배운 바 입은 덕이었더랍니다.

 

본관 뒤란 나무보일러실에 불을 넣습니다.

지난 겨울 애를 먹인 적도 있었기,

미리 확인해두어야지요,

날 워낙 춥다 하니 보일러가 얼 것도 걱정이고.

흙집 부실공사야 한두 번 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덧댄 보일러실 지붕에도 구멍 숭숭했더랬습니다.

본관 처마 아래로 이어져 있어 비나 눈이 새지는 않았지만

온기가 다 빠져나가고 있었지요.

어찌 그 지경으로 두었단 말인가요.

그리고 우리는 그걸 두 해 동안 손도 못댔습니다.

오늘, 드디어, 막았습니다!

아무런 변화도 없는 낡은 학교 건물일 것 같지만

이렇게 구석구석 늘 손을 대며 삽니다.

그리고 뭔가 한 그것에 기뻐합니다.

할 일을 보자면 얼마나 끝이 없는지요.

우린 한 것을 보며 갑니다.

하나씩 해나가는 즐거움!

 

지난봄부터 농업교육이 있었습니다.

멀리 강의를 가서도 시간에 맞춰 달려가며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다녔더랬답니다.

오늘 졸업식.

여기 일이 몸을 뺄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갈무리 날 강의가 있는 것도 아니라

인사만 넣었고, 더러 인사를 받았습니다.

지역 안에서 좋은 만남들이었지요.

모두 서로 힘이 많이 될 겝니다.

 

미루었던 재정 정리가 며칠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내내 제일 짓누르고 있던 일이었더랍니다.

아이가 새벽 두 시까지 함께 합니다.

먼저 사택으로 올라갔으나 교무실이 궁금해 다시 내려온 그였지요.

낼까지 하면 아쉬운 대로 얼추 작업이 끝날 듯.

아이가 단단히 몫을 해요.

저이 없으면 이 산골살이 못하겠다 싶습니다.

미안치요.

어째서 제 삶은 이토록 다른 이를 기대며 가는 것인지...

하기야 누구의 삶이라도 모두 그리 연기되어 있을 테지요,

사람 아니어도.

 

씻고 이불 속으로 드니 세 시 넘어가고 있는 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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