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없어 얼마나 다행인가요.

꽁꽁 얼기 나흘째.

조금 느지막히 아침을 엽니다.

해건지기; 대배 백배와 선정호흡.

간밤엔 기독교식이었다면 이 아침은 불가식 명상입니다.

이 얼어붙은 아침 우리는 창문을 크게 열고 수행하였습니다.

내 삶을 정갈하게 세우기,

세상에 선한 기운 보태기.

어느새 몸이 데워져 있었지요.

아름다운 시간이었습니다.

 

아침을 먹고 덩어리를 나눠 청소를 합니다,

오전 10시, 소사아저씨는 마을총회가 있어 회관에 가시고.

버스는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으니 서둘러야 했지요.

아침 잠시간을 조금 더 확보한 대가였더랍니다.

그런데, 씻는데 시간을 많이 들여야 하는 이들이 있지요.

아무래도 더 잘 씻기를 원한다면 더 일찍 일어나서 해얄 것입니다.

처음 온 이들은 한번 움직여보았으니 흐름을 알 것이기에

그런 것도 가늠할 수 있을 테지요.

헌데, 서두르는 와중에도 고추장집으로 올라갔던 이불과 베개를

제자리로 챙겨들고 오는 이들이 있습니다.

저기 진주랑 인영이도 보이네요.

새끼일꾼으로부터 배우는 자세라지요.

 

20여 분도 안 남은 시간을 갈무리 글에 쏟는 동안

빵을 굽고 잼을 바르고 사과즙을 챙겼습니다.

미처 못다 나눈 이야기들은 이 글에서 전하마 했지요,

지난 청소년계자들에서 나온 새끼일꾼 결의문과 그에 덧붙인 글들.

 

1. 위아래를 지켜야 한다; 샘들끼리 친해도 아이들 앞에서 예의를 갖추자, 애들이 보고 배운다.

2. 전자기기를 소지하지 않는다.

3. 모든 일정에서 새끼일꾼들끼리 모여 있지 않는다; 아이들 사이에 두루두루 섞여 있는다. 쉬는 경우도 아이들 사이에서!

4. 아이들 앞에서 비속어를 쓰지 않는다.

5. 새끼일꾼 끼리의 활동을 아이들에게 이야기 하지 않는다.

6. 한 아이에게만 집중하지 않는다.

7. 감정 잘 조절하기; 새끼일꾼들 끼리 사이가 안 좋은 경우, 아이들도 느낀다.

8. 웃어른공경; 어른들 먼저 챙겨드리기, 인사 잘하기

9. 아이들을 존중한다.

10. 자기가 맡은 일 최선을 다 한다.

11. 뒷정리한다.

12. 새끼일꾼 일을 잘 분담한다.

 

- 되돌아보라; 신발정리며 모든 일정 끝마무리며...

- 뭉쳐 다니지 말라: 가족끼리, 친구끼리, 어른공부방에서, 늘 아이들 속에서!

- 고데기, 화장품, 전자기기들의 사용을 다시 돌아보자

- 어른들끼리의 일은 어른들끼리만 공유할 줄 알아야지

- 아침모임이며 시간 좀 지키지

- 개념도 챙겨야할 걸; 애들 때리는 일도 일어나더라, 욕설하고, 싸움도.

- 아이들 가리지 마라

 

그리고, 읽어 주리라 준비한 시 한편 결국 여기 옮겨놓습니다.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한날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

 

: ‘새해 첫 기적’, 반칠환

 

“얘들아, 잘했건 못했건 다 지나갔다.

욕을 먹어도 칭찬을 들어도 지나갔는 걸.

새해다, 우리 모두 새로 시작하는 거다!”

그리 말해주고 싶었지요,

자주도 하는 말입니다만.

 

순했던 계자였다던 인영의 표현, 예, 그러하였습니다.

예뿝디다.

정제된 느낌.

저런 새끼일꾼들이면 계자 아이들한테도 얼마나 고마운 일일지요.

버스가 떠나고,

떠난 자리들을 살피고,

그리고 교무실에 앉아 일을 하려는데,

졸고 있는 자신에 화들짝 놀랐지요.

여러 날을 세 시를 넘기던 밤이었습니다.

오늘은 일찍 저녁을 먹고 방으로 가려지요.

 

오늘 아침 수행이 끝난 자리, ‘선언’이 있었습니다.

“물꼬의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일대 전환의 시기를

여러분과 함께 해서 기쁩니다!”

2012학년도에 대한 움직임, 그리고 이후 물꼬의 움직임에 대한.

“여름 계자 꼭 와야겠군요!”

태우가 말했습니다.

다음 학년도를 넘기면 물꼬의 공간에 변화가 있을 것이고,

그래서 내년 학년도는 지금 있는 학교터에서 각별한 시간이 될 것입니다.

가장 먼저 선정샘한테 알리고 싶었습니다.

 

‘샘, 어제에서 오늘 성탄 전야와 성탄을 아이들과 보내며

물꼬는 굉장한 변화의 결정을 했어요.

다른 질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내내 고민하던 끝이기도 하였지요.

샘, 이 겨울만 우리 좀 춥게 보내요.

이번 겨울만 지나면 학교 그만 할라구요.

하하, 사실은 물꼬 문을 닫는 게 아니고...’

공간에 변화를 주리라는 얘기 전했습니다.

‘아시겠지만, 부지런하시지만 더딘 소사아저씨의 움직임에 한계가 있고,

그리하여 커가는 류옥하다 선수한테 갈수록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어요.

급기야 어제 자신을 아프게 한 올해의 사건들을 털어내는 시간,

아니나 다를까 류옥하다는 이곳에 사는 힘겨움을 토로했지요.

일이 너무 많다고, 그만큼 책임이 너무 많고, 그리하여 공부할 시간이 없고...

오는 아이들도 너무 고생시키고

누구보다 걸음마 아이 데리고 와서 고생하는 샘을 위해서라도

뭔가 이제 결단해야 할 시간이 왓던 겁니다.

... 지금 이 학교 건물 구조에서는 도저히 해답이 안 나와요.

더구나 내부 인력이라고는 여자와 아이와 힘없는 중노인,

셋이 해내기엔 살림이 너무 넓었지요.

목조 건축하는 친구 말이 아니어도

싹 밀어버리고 새로 짓지 않는 한은

이걸 어찌 어찌 고쳐서 쓰는 건 엄청난 출혈인 거지요.

추울 대로 추우면서 관리비는 관리비대로 규모가 너무 광대해요.

... 간밤 아이들은 세 시에 불을 껐고,

그제야 마침 와있던 기락샘한테 그 얘기를 전했더랍니다.

기락샘이야 자주 그리 주장했던 바였지요.

오늘 아침엔 삼촌과 하다와 얘기 나누었습니다.

교무행정이 비게 되었던 2008학년도부터는

기적 말고는 무엇으로도 설명이 안 되는 시간들을 지나왔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을 함께 건너는 이들이 너무 고생스러운 시간이었어요.

... 모다 고마웠어요.

샘, 고마워요...’

 

이번 겨울을 보내고 다른 질의 겨울을 맞으리라는 계획으로 달뜬 밤,

그리고 여전히 질긴 이 겨울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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