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30.쇠날. 맑음

조회 수 1000 추천 수 0 2012.01.03 22:11:57

 

노동 강도가 센 것은 아니나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일들,

산골 삶이 그러합니다.

미처 챙기지 못하고 널려 있는 일들,

그것의 규모를 짜내는 일이 특히 행사를 앞두고 있으면 빗장이지요.

 

드디어 먼저 들어왔던 계자 준비위 샘들이 사흘 만에 옷방 정리 완료.

더는 입을 일 없겠다 쌓아놓으면 최종 재가를 하리라,

그리 일러두었던 참이라 산더미 이룬 옷더미가 불렀지요.

멀쩡한 옷들도 적잖지만 둔다고 입을 것들도 아니었습니다.

오랜 기간 아파트며 도시에서 보내져와 옷방에서 자리만 채운 세월이

한두 해가 아니지요.

버릴 것들 가운데서도 다시 옷을 쓸 만 한 것과 아주 못 쓸 것들을 분류하고,

상자에다 정리합니다.

읍내 나가는 길에 재활센터에 가져갈까 했는데,

쏘렌토로 어림도 없는 일이었지요.

욕이나 먹는 게 아닐까 싶어서 조심스러웠는데,

헤진 옷들도 근으로 팔아 재활기금으로 쓴다며

여기까지 들어와 가져가겠다는 이들을 내일 들어오라 합니다.

내년 상반기 내내 물꼬 구석구석 틀어 앉은 물건들도

그리 정리해 내려지요.

2013학년도는 물꼬 공간을 좀 달리해서 쓰려니까요.

 

계자 장을 보러 나가는 길, 휘령샘과 나섭니다.

휘령샘은 계자 준비위 구성원으로 들어왔다

오늘 나가서는 다음 일정 이틀 전에 들어와 교무행정 일을 할 것입니다.

해 벌써 서산에 기울고 있으니

읍내에서 돌아오는 길에 면소재지 장을 보기는 어려울 겝니다.

번거로워도 우리 면에 있는 가게에서 사줘야 하는 물건들도 있지요.

하니 실어 다니더라도 동선을 달래 잡아야 하는 거지요.

사료까지 들여와야 합니다.

그런데, 학교로 돌아와야 할 일 생겨버렸습니다.

결과적으로 잘되었더라지요.

그걸 싣고 다녔으면 정작 들여와야 할 식재료들 때문에

장을 한 차례 더 보러 나가야할 판이었네요.

 

황간에서 어르신도 한분 뵙습니다.

물꼬 논두렁이라 칭할 것까진 아니어도

이러저러 물꼬 일들을 살펴주고 계셨기 인사 한번 드려야 했는데

다행히 해 가기 전 저녁 한 끼 같이 할 수 있었습니다.

가까이서 멀리서 그런 어르신들 그늘에서 살아갑니다.

고맙습니다.

 

읍내에서 철물 가게에서부터 그릇가게, 건어물가게를 들리고

복사기와 전화기 취급점도 좇아다녔지요.

떡집들을 돌며 시루밑도 찾아봅니다.

이런! 이 시대는 집에서 떡을 찌는 집도 흔치 않은가 봅니다.

어디서도 시루밑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내내 쓰이던 것들이 너무 낡아 더는 떡을 찔 수 없을 지경인데,

그간은 어느 분이 챙겨주셨던 꾸러미를 내내 쓰고 있었더란 말이지요.

에고, 이번 계자엔 시루떡 만들기 글렀습니다.

다음은, 얼마 전에도 달려와 손 보탠 시영샘 댁에

된장 나눠드리러 들립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짐이 많은 식재료.

아들이건 다른 샘이건 함께 보다가

처음이지 싶더이다, 홀로 장을 보는 일이.

가격 비교에서부터 팔다리 휘적거리며 장바구니를 채우던 아들이

아쉬웠더이다.

 

자정이 다 된 밤, 계자 장을 보고 돌아오니 흙집 벽 수도가 터져

바닥이 온통 흙탕물이었습니다.

그찮아도 시원찮게 지어진 건물이어

북쪽 뒤란이 내내 마음 쓰이고 있던 터였고,

아침엔 벽으로 스며 나온 물이 뒤란으로 흘러나오기

새는 속에 계자를 진행한 뒤 물을 잠그고

해동되면 공사하리라 했더니...

산 아래 수도를 봐주시는 아저씨께 긴급타전을 했고,

내일 올라온다셨네요.

다 잘 될 겝니다.

 

손수 그린 카드 하나가 보내져왔습니다.

물꼬에서 같이 일하다가 멀리 떠난 후배입니다.

아이가 그의 뱃속에 왔을 무렵 들은 소식이 마지막이었네요.

“미안합니다.

용서하세요

그리고 고맙습니다.”

제가 못한(잘 못한) 것이 더 많았을 겝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늘 너그러웠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는 ‘내 생애’가 고맙고 벅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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