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아침입니다.

자고 일어나 해를 보는 건 여전할진대 무에 그리 해가 바뀌는 게 큰 의미이겠냐 싶지만

그런 지점에서 마음을 또 다 잡게 되는 게 우리들이지요.

새로운 아침, 새로운 한주의 시작 날, 달을 시작하는 초하루, 새해 첫날….

새로이 시작할 수 있는 지점이 있다는 건 얼마나 고마운 일이던가요.

그래서 근근이 살아가는 인간세에도 처음처럼 살아지고 또 살아지는 걸 겁니다.

"황새는 날아서 / 말은 뛰어서 / 거북이는 걸어서 / 달팽이는 기어서 / 굼벵이는 굴렀는데 / 한날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 // (‘새해 첫 기적’, 반칠환)"

잘했건 못했건 지나갔습니다.

칭찬을 들었어도 욕을 먹었어도 지나갔지요.

욕을 먹었다 한들 뭘 어쩌겠는지요. 모다 지나갔는걸요.

하지만 다시 출발선, 새로 시작하면 되지요.

과거를 묻지 마셔요, 지났는걸요.

하지만 다가오는 날들은 어찌 해볼 수 있을 겁니다. 왜냐하면, ‘시작’이니까.

새해에도 우리의 삶은 계속 될 테지요.

진정한 아름다움은 삶을 살아가는 태도에서 나온다던가요.

아름다우시기를.

 

‘2011 겨울, 백마흔아홉 번째 계절 자유학교-겨울나무도 숲을 이루지-1’이

문을 엽니다,

온 식구들은 수행으로 아침을 열고.

희중샘과 한별샘이 영동역으로 아이들을 데리러 나가고

나머지 샘들은 마지막 맞이 청소를 합니다.

밥바라지 선정샘이며 저이들은 무엇 하러 이 산골까지 들어와

동토의 날들에 저리 움직인단 말인가요.

기꺼이 마음을 내서 저네가 만든 물꼬의 기적이

또 이 149 계자를 끌고 갈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이곳에서 임금체계에 있지 않지요, 여기 상주하는 이들조차.

이 자본중심의 시대에 그런 곳이 있다니요.

고마울 일입니다.

그러니 이곳에서 어찌 아이들이 복되지 아니 하겠는지요.

 

눈 날리는 속으로 아이들이 왔습니다;

자리가 다 찬 150 계자와는 달리

이번은 갑자기 여름 계자로 미루게 된 남매 둘을 빼니 열일곱,

그리고 잠시 머물 희중샘을 더하여 어른 열넷(새끼일꾼 셋 포함).

지난 여름 처음 다녀가고 다시 오고 싶어한 태희가 그만 신청이 더뎠는데,

누나까지 오고 싶다 사흘 전에 연락 와 겨우 여행자보험을 같이 넣을 수 있었네요.

96년이던가요, 계자 의료진으로 왔던 품앗이일꾼 정민샘이

혼례 올리고 아이 셋을 낳았고,

그 아이 자라 계자를 온 게 지난 여름의 태희.

그리고 태희 누가 희정이까지 걸음하게 되었습니다.

진한 세월입니다, 물꼬가 그런 시간을 삽니다.

 

또 다른 기적, 절묘한 우리들의 날씨!

아이들 들어오는 줄 어이 알고 눈, 눈.

오랜 세월 서울에서 혹은 영동역에서 아이들을 실어날아 왔던 여행사가

이번 계자를 위해 차를 기꺼이 내주었답니다,

물꼬 논두렁이시기도 한 이성덕님, “내 봉사할게.” 하셨지요.

12인승 승합차와 희중샘 차,

그리고 규범이네 차까지 아이들의 이동을 도왔습니다.

혼자 살아도 한 살림이라고

규모가 작아도 할 건 또 다해야지요.

어쩌면 더 다양한 것들을 할 수도 있을 겝니다.

‘그렇게 쓸고 닦던 학교에 아이들이 짐을 풀고 뛰노는 모습을 보니 괜히 내 기분이 이상해졌다.’(새끼일꾼 해인형님의 하루 갈무리글에서)

 

공간 안내를 하고 낮밥을 먹고 그리고 마당에 쏟아져 눈싸움.

가슴 깊이 감동을 받았다는 새끼일꾼 경이형님이었지요,

아이들과 이렇게 놀 수 있는 공간 “물꼬”가 있어서 행복하다는.

눈싸움이 전쟁이라 표현될 만치 역동적이었더랍니다.

이렇게 엿새를 보낼 겝니다.

 

“얘들아!”

‘큰모임’을 하려고 아이들을 부릅니다,

같이 속틀도 짜고, 서로 인사도 좀 하고, 안내모임에서 놓친 것들도 챙기려.

아이들은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파할까요?

눈싸움, 눈사람, 빙어낚시, 팽이치기, 썰매타기, 겨울산 오르기, 강아지랑, 만들기, 야식, 열린교실, 보글보글, 국수고랭이, 연탄갈기, 구들더께, 연극, 들불, 산책, 두멧길...

“그래, 그래, 합시다, 다 합시다.”

아이들의 뜻을 받고 어른들은 오늘밤 시간 틀에다 그걸 다 구겨 넣을 것입니다.

그리고, 글집에 자기 소망을 담기 시작했지요.

산골, 밖은 눈보라치고, 구들은 따뜻하고,

엎드리고 끼리끼리 도란거리며 그림 그리고,

천국 극락 정토가 다른 곳이 아니더이다.

재원은 의사인 자기 꿈을 담고,

성빈은 하고 싶은 거래요, 놀이동산 가서 롤러코스트 타는.

진희는 나무와 폭포를 그렸고, 민성이는 손이 가는대로,

진주는 가고 싶은 곳이라며 폭포를, 희정이는 살고 싶은 곳 시골을,

하원이와 민교는 성탄날을 그려넣었습니다.

규범이는 곰이 너무 커서 담지 못했다나요.

류옥하다는 임진년을 자신의 이름으로 디자인하고,

이리 저리 뒤집으며 사랑과 자유를 읽을 수 있도록 배치해 놓았지요.

규한이는 형 규범이 4년까지 성탄 선물 받았는데 자신은 그렇지 못하다고

포켓몬 받고 싶다 합니다.

샘들도 곁에서 글집을 채웠지요.

유진샘은 ‘치유하는 물꼬’라고 썼습디다.

 

‘두멧길’.

내다보니 눈은 굵어져 천지를 채워 눈나라를 이루었습니다.

이런 날은 창 안에서 구들을 끼고 뒹굴거려도 더없이 좋을 테지요.

빙고도 하고 딱지도 접고 윷놀이도 합니다.

마당에선 현진 지성 규범 규한 태희가 어느새 덩어리를 이루어

눈싸움 기지를 ‘건설’하고 있었지요.

눈에 잠기고 있는 산마을...

 

저녁을 먹은 가마솥방.

난로 위에 고구마를 올려놓으니

밥을 잔뜩 먹고도 또 손이 가는 아이들입니다.

늘 하는 이야기입니다만 아이들 좀 멕이셔야겠습니다.

아이들 참 잘 먹습니다.

움직임이 많고 주전부리보다 밥에 더 집중하는 것도 까닭하나일 겝니다.

“내일은 인절미 먹어야겠다.”

“우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데... 저 쑥떡도 좋아해요.”

희정입니다.

“어, 어찌 알았지? 우리 쑥인절미 먹을 건데...”

류옥하다 외할머니가 손수 만들어 보내준 것이 있었더랬지요.

 

한데모임을 하며 여기서 즐겨 부르는 노래도 익히고, 손말도 하고,

서로 마음도 내보이고, 같이 지내기 위해 필요한 일들도 의논합니다.

그리고 수행방에서 춤명상.

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특히 아이들에게 참 좋은 명상법이나 싶습니다.

이어 대동놀이를 합니다.

놀이는 같이 노는 이들이 만들어가는 것이지요.

물꼬에서 자주 하는 놀이를 조금씩 만지작거려

놀이형태를 바꿔 잘 놀았습니다.

모두 천사가 되어 나풀거리기도 하고,

여우골에 들어가기도 했으며,

친구 집에 꽃을 찾으러 가기도 했고,

곳곳에 꽃 넘치는 봄 동산을 만들기도 하였지요.

 

이번엔 작은 규모라

모둠방에서 자는 여느 때와 달리 잠자리를 조절했습니다.

숨꼬방을 치워내고 여자방으로 쓰고,

사택 고추장집에서 남자들이 자기로 하였지요.

모둠 하루재기를 마친 뒤 아래 학교 흙집에서 씻고 방으로 들면

샘들이 머리 맡에서 책을 읽어주었고,

샘들이 하루재기를 하러 가마솥방에 모였을 땐

민성, 류옥하다 큰 형님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뒷간도 가고 잠자리도 살펴주었네요.

 

샘들 하루재기.

새끼일꾼 2년차가 된 동진이가 선배들을 따라 익힌 대로

제 역할을 아주 잘해내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만만한 ‘밥’이 되어주는 것도 새끼일꾼의 역 하나.

그의 유쾌함이 고마웠습니다.

 

“아이들은 관심 받고 싶은 게, 누군가를 이겨보고 싶은 게 당연한 일인데 내 몸이 그 원하는 것들을 다 들어주지 못하니까 되려 화가 일더라’는 한별샘의 고백도 있었고,

‘아이들은 역시나 각양각색의 모습을 보였다. 선생님들과 노는 아이들, 자기들끼리 노는 아이들은 모두 저마다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고, 이것은 저마다 하나하나씩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 아이들이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어울려서 살아갈 것이다’라는 것이 의미 있게 다가온다.‘ 성호샘은 하루 갈무리글에서 쓰고 있었지요.

샘들은 샘들을 통해 또 깊이 배웁니다.

‘이번에 밥바라지 보조를 맡았다. 하면서 느낀게 선정쌤 대단하다. 나 같으면 안오겠다. 그냥 집에서 애기랑 편히 쉬겠다. 근데 기꺼이 봉사정신 하나로 오시는 것 같다. 뭐땜에 이러시는건지 나로선 아직 모르겠다. 애기제쳐두고, 하루종일 서서 허리에 통증을 느끼면서, 음식하는 선정쌤을 보고 한번더 대단하다. 내가 보기엔 아무것도 즐거운 게 없다. 하지만 웃는 얼굴 변함없이 룰루랄라 음식 하시는 선정쌤 정말 대단하다. 그 대단하신 분과 함께 일하게 되어 영광일 뿐이다.’

진주샘은 하루 정리글은 이러했습니다.

물꼬 존립의 기적을 만들어내는 샘들은

물꼬의 내일을 또 그리 든든하게 만들어내고 있지요.

가르치는 대로가 아니라 본 대로 하는 법.

훌륭한 샘들이 훌륭한 교사들을 길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학교이면서 어른들의 학교!

글은 이리 이어집니다.

‘잘 못하는데, 그래도 끈기있다며 칭찬해주시는 선정쌤 대단하다. 감사하다. 어떤 사람 때문에 자기 일이 늦춰지면 거술리고, 마음 안좋을 텐데... 지난 5년간 다짐했던 말 2012년 1월 1일에 끈기있다고 칭찬받았다.’

서로를 고무시키며 우리는 매서운 겨울을 가르고 있답니다.

 

진주샘과 태우샘은 계자 아이를 거쳐 새끼일꾼을 거쳐

드디어 품앗이일꾼에 이른 계자입니다.

“쌤, 우리 이다음에 뭐해요?”

계자에 처음 온 진희가 진주샘에게 물었습니다.

“너희 하고 싶은 거.”

“진짜요? 진짜 자유학교네~”

진주샘, 자부심 가득해지더라나요.

또래인 두 샘은 애쓰고 있는 서로를 보며

‘진짜 우리가 일꾼이 된 것 같다.’며 뿌듯해했습니다.

일도 잘하고, 애들하고도 잘 놀고.

 

경이형님은 새끼일꾼이나 계자 연차로 보면 대선배인데다

계자준비위도 꾸리고 있으니 책임감이 여간 무겁지 않아 했습니다.

‘희중샘 서현샘 휘령샘 등이 안계시니까 그 공백이 너무나 크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류옥하다의 마음(* 어른 못잖게 물꼬 삶에 무게를 느끼고 사는)이 이해되는 순간이라 할까요?’

‘항상 느끼는 거지만 나는 언제쯤 옥샘처럼 아이들을 잘 집중시킬 수 있을까 생각한다. 계자 끝나야 아, 이렇게 옥샘처럼 하면 되겠구나 하는데 또 계자 시작할 때 되면 다 까먹게 되어서 아깝고 “물꼬 사는 법”이란 책을 낼까’ 하는 생각도 하였더라지요.

 

‘무심코 지나친 행동들을 보며 그들을 타이르거나 애들을 불러 알려주었을 때 “그렇게 알려줬는데 왜 모르지?”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가도 맞다, 나도 그랬을 때가 있었지 하고 그냥 웃으면서 넘겨짚게 되었다.’

새끼일꾼 해인형님입니다.

시간이 흐르고 그렇게 나이들을 먹습니다.

그리고 그 나이에 이르면 알게 되는 것을 만나고,

한편 지난날을 해석하기도 하지요.

긴 세월 서로의 성장을 지켜보는 일, 느꺼운 일입니다.

 

희중샘, 계자 시작을 안정감 있도록 도운 뒤

눈을 뚫고 떠나 잘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고,

가서도 내내 여기 걱정과 필요한 일들을 놓칠 새라 글 보내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없는 빈자리는 결국 티를 내 글집 사고(?)로 남았더라지요.

1, 2 쪽을 빼먹고 엮은 것.

그래도 남은 샘들은 그의 몫을 다 메우고 아이들을 건사할 것입니다.

물꼬에서 보내는 시간은 우리를 그리 단련시켜주지요.

남은 닷새는 또 어떤 날이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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