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 한파 수위였다던 며칠,

하지만 오늘 겨울산에 아이들과 든다고

하늘은 또 두터운 볕을 내보내고 있습니다,

바람까지 없는.

한결 추위 덜한 느낌이지요.

고맙습니다.

 

곰사냥을 떠납니다; 울렁산

골짜기 깊고 골골이 이야기도 많고

사는 존재들 또한 많습니다.

곰인지 늑대인지 호랑이인지 그곳이 뉘 집일지 어이 알겠는지요.

이야기 하나에 고개 하나씩 넘으며 가보려지요.

 

이른 아침부터 샘들은 김밥을 쌉니다.

그런데, 아이들도 적고 느긋하게 다녀오리라 해서

아침 시간을 정교하게 짜지 않았더니 밀리고 있었지요.

그런들 또 어떠려나요, 햇살 퍼질 때 가라는 말이리라 하지요.

혼자 살아도 한 살림이라고, 작은 산오름이라도 산오름.

더구나 겨울산임에야 말해 무엇하려나요.

왔던 이들이라도 전체를 점검하는 중간인력이 빠진 자리가 커서

희중샘 서현샘 생각 많이 나는 아침이기도 하였더랍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일 어느 때라도 촘촘히 잘 짜야겠다 했지요.

 

아침부터 이장님댁에 전화 넣어 다시 확인을 합니다.

요새 수렵기간이지요.

개를 네 마리나 데리고 총을 든 사람들이 산에 들고,

산 너머 무주엔 이웃 사람을 짐승으로 잘못 알고 쏴

목숨을 버린 일도 있었습니다.

긴장!

 

하여 길을 따라 걷기로 합니다.

마당에서부터 단단히 단도리를 하고,

한 줄로 늘어서서 마지막 점검을 합니다.

“여기 와서 아이 숫자 세는 거 처음이예요.”

그럼요, 확인하고 또 확인해얄 것입니다.

그 순간 순간이 마음을 더욱 다지는 시간일 겝니다.

 

그런데 대해골짝 끝 석현너머,

마침 ‘수렵금지구역’ 팻말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아, 다행입니다.

(고백하면, 그래도 길을 앞장서며 내내 어깨 뻣뻣했지요,

멀리서 오인한 총알이라도 날아오는 듯만 해서.)

 

산에 듭니다.

지난 봄 마을 어른 두엇과 나물을 뜯으러 들어갔던 산입니다.

병풍채며 취나물과 도시락초, 그리고 참나물과 집우를 뜯었고

더덕을 제법 캐기도 하였던 깊은 산이지요.

“저보다 앞서가면 점심이 사라지는 마술을 보실 겝니다.”

마지막 샘보다 늦으면 파이가 사라진다 엄포를 놓지요.

아이들은 그 사이에서 움직이며 오를 것입니다.

 

한참 가면 기도도량 하나 있고,

거기 오르기 전 간 길 되짚으니 쉬며 돌아서니

우리 선 곳이 얼마나 첩첩산중인줄을 알겠는,

저어기 겹겹이 둘러친 산들!

 

인적이라고는 한해 다 가야 초팔일이 아니면 거의 없는 곳이어

절집 개들이 다 풀어져있습니다.

우리는 그저 산길을 따라 지나가는 사람일 뿐이다,

그 사실을 알리기엔 그저 묵묵히 조용히 걸어가면 되겠다 했지요.

 

눈에 묻힌 길을 따라 더 깊이 더 깊이 들어갔지요.

그런데, 길이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걸음을 멈추고 정찰병을 보내기도 하지요; 류옥하다 규한 현진.

저기 앞에 길이 이어져 있는가 보라고.

 

쉼터마다 울렁산에 얽힌 이야기를 이어가지요.

단 것들이 하나씩 쥐어주며...

화전민 마을에 어디선가 흘러들어온 거구의 재평이 아저씨,

사람들은 그에게 일을 맡기고

차츰 일하는 법을 잃고 그의 노예가 되어가고,

재평이 아저씨 횡포가 점점 심해져

깨어있는 이들이 이래선 안 된다 자각하지요.

헌데 그에게 맞서기 직전 재평이 아저씨 아파 몸져눕는 일 생기고,

흔히 이야기가 그러하듯 반성과 참회 그리고 나눔이 이어지고...

그의 흔적들이 우리 가는 산길에 얽혀 있습니다.

“알고 보니 그 아저씨 울릉도 태생이었네.

죽기 전 고향 가고파 했으나 결국 못가고

그를 묻은 산이 울릉산.”

우리 마을 계곡 들머리가 헐목인가 흘목인가 헷갈리듯

울렁인가 울릉인가가 뒤섞이던 낱말은 울렁으로 굳어져

결국 울렁산 되었다는 이야기.

 

산오름의 묘미는

힘든 길 서로 북돋우고 가는 걸음에 있지요.

끌어주고 밀어주고 함께 갑니다.

만나는 자연에도 산오름의 즐거움이 있지요.

눈 덮인 산 절경, 그 위로 부서지는 햇살,

마른 나무 가지 사이로 보이는 푸른 물 쩡쩡한 하늘...

민성이가 작은 아이들을 어찌나 잘 챙기던지요,

큰 아이들만이 아니라 저마다 다른 이들을 얼마나 돕던지요.

 

드디어 울렁산.

가파르기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눈길 아니어도 미끄러지기 일쑤겠는 경사였지요.

기어 오르고 다시 미끄러지기를 반복하며 올라갑니다.

마침내! 능선에 올랐습니다.

 

아, 그런데 사진기가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얼어서 그런가요?

배터리가 다 돼 정작 가장 중요한 순간을 놓치게 생겼지요.

다행히 요새들 전화기가 좋아 샘들이 아이들을 담았더랬네요.

 

능선에서 점심을 풉니다.

하원이가 울었습니다,

이런 산행 해본 적도 없고 태어나 이렇게 많이 걸어본 적도 없다고.

그래요, 우리들의 산오름은 그런 지점 하나입니다,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을 가르는.

 

그런데, 김밥이 좀 매웠습니다.

다른 때라면 바닥을 보이고도 더 찾기도 하련만

글쎄, 남았지요.

귤은 차서 아무래도 내려가서 먹기로 합니다.

따뜻한 차와 파이를 먹고 서둘러 하산.

 

아이들은 엉덩이를 아예 부치고 미끄럼을 탑니다.

생애 최고의 미끄럼틀을 만났을 겝니다.

성호샘도 바지가 찢어졌지요.

늘 몸바치는 샘들로 굴러가는 계자랍니다.

 

10시에 나섰던 학교에 낮 3시를 조금 넘기며 닿았습니다.

돌아와 한껏맘껏.

싹 씻고 뜨끈한 황토방에서 뒹굴뒹굴 하는 것도 참 좋았다지요.

그리 눈길을 걷고도 힘이 하나도 빠지지 않은 아이들.

그 기세로 한데모임에서 산오름 갈무리를 하고

(언제나 그렇듯 영웅담이 흐르지요),

고래방으로 달려가 강강술래 뛰고

다시 촛불잔치,

그리고 인디언놀이.

 

샘들 하루재기.

“오늘의 산행은 21년 짧은 인생에서 가장 빡세고 기억에 남을 산행이었어요.

그런데, 다른 새끼일꾼 샘들은 오늘 산은 산도 아니라고 해서

이 아이들은 어떤 산을 타왔던 건지 놀랐어요.”

한별샘이었습니다.

‘오늘은 산에 갔지만, 저번 겨울 계자보다는 몇만 배 더 편했던 것 같다. 날씨도 도와주고 정말 좋았다. 옥샘이 그렇게 말하시던 ‘물꼬의 기적’을 눈에 보이게 느낀 것 같다. 솔직히 처음에 ‘물꼬의 기적’이 그다지 느껴지지 않았는데 물꼬에 오래 있어보니,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유진샘의 하루 정리글 가운데서)

‘산 전체를 보면 아직은 길 없는 산에 들어가 본 적이 없는데, 아무도 포기한 사람 없이 간 것이 좋았다. 산이 자기의 한계를 넘어서게 하더라.’

처음 온 성호샘은 이리 쓰고 있었지요.

 

조금 수월하게 걸었던 산이었습니다,

길도 그리 어렵지 않고,

날씨도 좋고.

대신 함께 사선을 넘었을 때 오는 진한 연대감,

그리고 희열은 조금 덜했지 싶습니다.

그래도, 어른한테도 결코 쉬운길은 아니었습니다.

이 눈 내린 겨울에 산오름이라니요.

“할 게 무수히 많은데도

굳이 우리가 하루를 들여 산에 오르는 까닭은 무엇이었을까요?”

오늘 나서며 주었던 숙제였지요.

우리는 산에서 무엇을 얻었던 걸까요...

늘 놀랍니다만, 아이들 정말 훌륭합니다!

우리 아이들, 그들 앞에 놓인 삶의 산들도 그리 헤쳐가기를.

 

그리하여 닷새가 지납니다.

‘...진심을 대했기 때문에 확신한다. 기억해주겠지.’

수환샘의 하루 정리글 가운데서였습니다.

‘내일이면 물꼬를 떠난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는다. 교육활동 가면 아이들만 남는데, 와서 아이들을 만나는 것 뿐 아니랄 배울 게 많고 새끼일꾼 품앗이 친구들을 만나고, 옥샘을 통해 삶의 여러 가지 힌트들을 얻어간다. 애쓰셨습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한별샘의 하루 정리글에서)

‘마지막 날인데, 저 계자 뽑아주셔서 감사하구요...’

어른들과 아이들 사이에서 좋은 다리 역할을 하였던 새끼일꾼들,

그 가운데 동진이었네요.

 

달콤한 잠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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