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도 흐리더니 눈발이 날립니다.

가는 길을 재촉하려함이려니.

 

간 밤, 밤을 꼬박 샜습니다.

아이들도 자정이 넘어서야 들어갔지요.

야참을 먹은 샘들이 잠자리로 가고도

(이리라도 해야 그나마 아이들 에너지를 따라갈 수 있을 겝니다)

몇 샘들의 개인 면담이 있었고,

좀 나이 있는 샘들의 전체 계자 평가도 있었지요.

우리들의 계자는 아이들의 시간이기도 하지만

청소년들의 학교이고, 품앗이샘들의 학교이고, 어른들의 수행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네 가지 학교가 동시에 돌아가는 거지요.

 

마지막 밤, 불을 지키기 위해서도 아궁이 앞에도 갔습니다.

소사아저씨 나올 때까지 나무를 집어넣지요.

아이들은 따뜻한 아랫목에서 늦었던 밤의 피로들을 잘 풀었더랍니다.

 

마침 아침은 이불을 터는 것으로 해건지기를 대신합니다.

다들 기척이 없어 깨우지요.

이불을 텁니다.

손발이 좀 안 맞습니다, 아쉽습니다.

마지막 긴장을 늘 강조하건만

우리들은 역시 또 모자랍니다.

 

아침밥상에서 혜준의 생일 잔치가 있었고,

새벽녘 경단을 좀 만들었고, 미역국을 끓였고,

예쁜 초를 준비했더랬지요.

물꼬에서 부르는 생일노래를 함께 불렀습니다.

“나는 귀하다/ 나는 예쁘다 / 나는 기쁘다/ 태어나서 고맙다.”

 

좀 좇기는 듯하였으나 할 건 또 다합니다.

7학년 여자 아이들의 밥상머리공연도 있었습니다.

효정은 꼬마 아이들과 둘러앉아 피아노 치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좋습디다.

아이들의 재능이 얼마만한 크기이건

가마솥방 작은 무대에 올려지고 나눠지는 과정은

참으로 훈훈합니다.

대단한 것만으로 사람들 앞에 서는 게 아니라는 것,

‘일상에서 즐기는 예술활동과 향유’도 이 시간의 우리들의 배움이지요.

 

가방을 싸고 갈무리 청소를 하고 남겨진 물건들을 챙겼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모여앉아 우리에게 정리가 무엇인지 짚는 걸

그만 놓칩니다.

사람은 잊지 쉬운 존재여 순간순간 그런 확인이 필요하지요.

그런 순간 다시 마음을 다잡는 것이고.

아이들에게 더 많이 맡길 수 있는 것을

서두른 어른들의 손이 그걸 막는 결과를 부르기도 하였네요.

일을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못하더라도 기회를 주는 것 역시 중요하다마다요.

 

갈무리글을 쓰고, 낮밥밥상을 받고, 버스에 오르고...

영동역, 우리는 마지막 노래를 부르지 못했습니다.

서둘러 기차시간에 맞춰야 했지요,

지난 여름 일정보다 당겼는데도.

역시 더 바투 잡아야겠습니다.

하지만 7학년이며 샘들이며 아직 떠나지 않은 아이들이

아쉬워라 영동역 떠나가도록 노래를 불렀지요.

쫓겨날 뻔했습니다,

역무원이 좇아왔으니까.

역무원 가고,

“어디까지 했더라?”

거의 수화에 가깝게 마무리 지은 노래.

그래도 좋았습니다, 함께 하는 즐거움(패거리 문화와는 분명 다른)!

준샘이 보름 일정을 마침 샘들을 위문하러 와서

우리 공연을 관람하였지요, 일당 천(명)!

 

모두가 떠나고, 읍내에서 하는 샘들의 갈무리.

모다 애들 썼습니다.

하지만, 하느라고 했다고 해서 우리들의 허물이 가리는 건 또한 아니겠습니다.

현애샘,

“이번 계자는 새끼일꾼들이 많아...”

그런데, 겨우 넷이었습니다.

나머지는 분명 품앗이일꾼들이었지요.

“그렇다면 반성하셔야(어른 부재가 많았던 지점에?)겠네요.”

어쩌면, 정곡이었겠습니다!

원활하지 못했던 어른들의 흐름을 지적한 것이지요.

아이들은 신명으로, 또 왔던 아이들을 주축으로

어떤 계자보다 유쾌하고 즐거웠으나

분명 어른들이 어른들로서 담지해내야 하는 것들이 있는 거지요.

샘들을 최상으로 끌어내지 못함은 순전히 중앙의 책임이겠습니다.

미안하고, 고맙고, 한편 안타까웠습니다.

 

밤, 부엌샘을 비롯 고기를 사서 응원을 온 준샘과

여러 어른들의 계자 후속모임에 가까운 뒤풀이가 있었습니다.

샘들의 움직임이 원활하지 못해 아쉬웠다고들 했습니다.

엊저녁부터 아이들 보내는 순간까지

전체 축을 맡았던 휘령샘과 철욱샘, 그리고 아리샘이 너무나 종종거려야 했지요.

우리 샘들의 나이가 아직 어리다, 라는 말로는

분명 모자람이 있었지요.

여기는 어른들의 학교이기도 합니다!

어른은 어른으로서의 역할들에 대해

조용히 그러나 팽팽히 되짚어볼 일입니다.

아이들은 전화기를 쓰지 못했는데,

우리는 꼭 해야 할 일이 있지 않는 한

너무 자주 쓰고 있지는 않았는가(밤이었을지라도),

더 민감하게, 분명히 전화 사용은 건물 밖이어야 했습니다,

아이들한테는 돌아보라 하고 우리는 잘 돌아보았는가,

아이들한테 짐을 늘여놓지 말라하고 우리는 그러지 않았는가,

아이들에겐 옷방은 비상시에만 쓰는 것이라 하고

우리 어른들은 그러하였는가,

아이들에게 하루재기 잘하자 해놓고

우리는 샘들 하루재기 뒤 가마솥방을 그리하였는가,

아이들에겐 예의를 갖추라 했는데

우리는 어른들한테 잘 대했는가,

아이들에겐 기꺼운 순종을 말하면서

우리는 상대에게 기꺼이 순종할 줄 알았는가,

사이좋은 자유라 해놓고 우리는 그러하였는가,

배려가 있는 자유라 해놓고 우리는 그러하였는가...

 

계자 8년차 초등학교 교사인 현애샘이 그랬더라지요.

“옥샘이 아이들한테 한없이 너그러워도 어른들한테는 가차 없었어요.

그런데, 이제 안 그러세요. 왜냐하면 자식들이니까.

계자에서 왔던 아이들이 커서 새끼일꾼이고 품앗이일꾼들이 되었으니까.”

엊저녁 불가에서 제게도 그랬댔지요.

“예전엔 품앗이들을 기다리시더니 이제 품앗이들의 아이들을 기다리시네요.”

그 말도 옳겠습니다.

못한 것보다, 안한 것보다, 한 것을, 잘 한 것을 보려고 했다 생각했는데,

고운 자식 매 한 번 더 드는 게 필요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새로운 훈련이 필요합니다,

철학을 공고히 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한 문제이겠습니다!

어른들은 날밤을 샜더랬지요,

겨울 일정이 다 끝난 후련함으로도.

 

아, 7학년들이 남았습니다.

아이로 오는 마지막 계자, 8명이 모두 모이기 어디 쉽겠냐고

간밤 늦게 하루를 더 허락해달라는 부탁이 있었지요.

하룻밤 불을 더 때는 거야 무에 어려우랴,

기꺼이 밥도 해주다마다, 하였습니다.

이번 계자, 아이들의 힘에 기대고 간 바가 컸습니다.

그 중심에 7학년들이 있었고,

그래서 보태어진 하룻밤은 물꼬에서 주는 선물이 된 셈이었네요.

새벽 4시까지

원 없이 놀기도 하고 진지하게 서로를 살피는 시간도 꾸렸답니다.

 

어른들의 움직임과 평가가 어떠했든

정말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받은 느낌일 것입니다.

행복하다 했지요.

그들로 늘 벅찹니다.

그래서 뒷배로 봐서는 아쉬움이 많은 계자였으나

계자는 성공적이었다, 라고들 하게 된 거지요.

성공적인 공연 뒤 정신 하나도 없게 흐트러진 무대 뒤, 뭐 그랬다고나 할까요.

 

그래도 그래도 우리가 ‘함께’ 만들었던 ‘진한’시간이었음이 부인되는 건 아닙니다.

아무도 안 다쳤어요,

아이들이 고맙고 즐거웠고 행복하다잖아요.

늘 하는 말이지만, 남아있는 일보다 한 걸 더 많이 보아줄 것.

샘들이 못했다면 그건 몰라서, 혹은 너무 힘들어서 그랬을 것입니다.

누가 뭐래도 우리 샘들이 혹독한 이 겨울 산골로 들어와

열악하기 이를 데 없는 공간에서 온 몸을 던졌지요.

모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그저 중앙이 제대로 안내하지 못해 미안합니다,

못했다면 그건 다른 샘들이 아니라

잘 안내하지 못한, 잘 조직하지 못한 중앙 탓이었다마다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물꼬에서 보낸 아이들입니다.

그들이 교사들의 부족함을 채우며 전체를 끌어갔지요.

경이로웠습니다!

아이들이 남긴 갈무리글을 읽으며

오히려 어른들이 놓친 물꼬의 철학을

정작 아이들이 견지하고 있음을 봅니다.

하여 또 하는 말, 아이들은 힘이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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