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15.해날. 맑음

조회 수 1123 추천 수 0 2012.01.27 13:07:05

 

날이 푹해집니다.

겨울이 다 간 느낌입니다,

계자까지 끝나고 보니 더욱.

표독스런 추위 앞에선

‘나는 몰라도 이 선한 사람들을 이토록 고생시킬 수 없겠다’ 싶어

겨울 계자는 이 낡은 건물에선 다시 못하리 했으나

그런데, 또 할 만하겠는 마음이지요.

산통을 지나며 다시는 아이 못 낳겠다 하고 또 낳는다더니...

 

EBS 한국기행 추가촬영이 있었습니다.

류옥하다 선수는 마을의 인술이 아저씨랑 칡 캐러 갔습니다.

눈이 녹기 전이라도 양지 쪽은 농한기에 들만 합니다.

아주 가끔 더덕도 캐내고는 하지요.

진즉에 산에 한번 들자던 것을

마침 이번 참에 두 사람이 가게 되었네요.

이맘때면 눈에서 길을 잃은 짐승들이,

혹은 먹을 것을 찾아 산 아래 내려오는 동물들이 있습니다.

아이는 옛적 노외할머니처럼 그들을 위해

눈밭에 먹을 것을 뿌리고는 하였지요.

오늘도 그런 아이를 카메라가 좇아갔더랍니다.

낮밥으로 국밥을 먹으며 들으니

개들이며 닭들이며 밥 챙기는 것까지 다 담았던 모양입니다.

방영이 오는 30일이라던가요.

 

선정샘네 가고 기락샘도 가고

이제 상주 식구들만 남았다 싶으니

동선도 그리 만들어야지 합니다.

부엌바닥부터 앉아 걸레질을 박박 하지요.

일상적으로는 방처럼 쓰는 까닭입니다.

부엌곳간도 정리하고 쓸고 닦고 선반 먼지들도 털어내고

일상에서 쓰기 편한 구조로 바꾸었지요.

소사아저씨는 계자에 나왔던 그릇들을 다시 뒤란 곳간으로 보내고...

 

성빈이가 남았습니다.

더 묵고 싶어 하였지요.

내리 2주를 밥바라지한 선정샘에 대한 답례가 될 수도 있겠다 싶어

마음 좋았습니다.

마침 19일 서울 갈 일 있어

그 참에 같이 올라가기로 한 것이지요.

내일 아이들을 데리고 나들이를 가기로 합니다.

품앗이샘들과 오랜 인연들,

이제 그 아이들이 조카입니다.

그러니까 이모이고 고모이고 혹은 외할머니인 게지요.

 

이번 겨울 계자, 아이들로 원활했고 신명났고 유쾌하였으나

어른이기에 여러 가지로 곱씹게 됩니다.

새삼 철학에 소홀했음을 상기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남긴 갈무리글을 읽으며 깜짝 놀랐지요!

우리 어른들이 그리 놓치고 있을 때

정작 아이들이 물꼬의 철학을 챙기고 있는 겁니다.)

우리는 아이가 아니지요, 어른입니다.

성찰이 있어야겠지요.

이곳에서 같이 아주 잘 배우고픈 하나는 ‘정리’입니다.

정리한다는 것은 책임진다는 것이지요.

우리 어른들이 정작 잘 못한 것이 그것 아니었나 싶어요.

어른공부방에서 허물 벗듯 난장판인 채 몸만 빼낸 건 아닌가,

지내는 동안 돌아보자 아이들에게 강조했건만

정작 우리들은 어른공간들을 온통 흩어놓았던 건 아니었나,

아이들에게 전화며 인터넷이며 게임기며를 놓고 다른 문화를 만들어보자 했지만

불가에 앉아 모두 손가락을 눌러대기 지나치진 않았나,

비상용으로 쓰기 위해서였던 옷방의 옷을

준비 없이 와서 잔뜩 껴입고 산더미처럼 남긴 건 어른들만이 아니었나...

한편 우리에게 ‘기꺼운 순종’은 있었는가,

우리가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살았으면 얼마나 살았겠는가,

내가 옳네 하고 어른들 얘기에 거친 마음은 아니었나,

물꼬에서 보낸 시간이 더 많았다 하고 어른들한테 방만하진 않았었나,

우선 귀 기울이고 들어보고 옳을 수도 있음을 인정하지 않고

내가 옳다 하고 지나치게 날 세우진 않았나...

아이들에겐 패거리를 나무라면서 어른들은 패거리가 되진 않았나,

긍정적인 이야기로 서로가 뭉치면 아름다울 것을

뜻이 맞지 않은 어른을 향해 공격적이진 않았나,

마치 험담하며 연대하며 깊어가는 관계들처럼 되지는 않았던가...

불편한 곳에서 일 좀 했다고 생색난 마음은 아니었나,

받은 것보다 서운함이 크지는 않았나,

아이들에겐 공손을 말하면서 우리는 어른들을 먼저 챙겼나,

내 즐거움에 정신없어서 전체의 움직임, 필요한 일을 자주 놓치진 않았나,

새로온 샘들에게, 혹은 후배들에게 본보기가 되긴 하였나,

어른임을 잊어버리지는 않았나...

문을 닫자고 했지만 우리가 연 것이 더 많지는 않았나,

신발을 가지런히 놓으라 하고 우리는 그리 했던가,

정리를 외치며 교사 하루재기 뒤 가마솥방은 잘 정돈했던가,

사람들이 한 것을 아니 한 것보다 더 잘 보았던가,

던가, 던가, 던가...

깊이, 깊이, 반성하는 밤입니다.

 

그러나 나아질 겝니다, 진한 성찰 뒤.

새로운 계절 새로운 계자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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