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17.불날. 흐림

조회 수 1134 추천 수 0 2012.01.27 13:12:55

 

봄비 같은 아침비였습니다.

눈이 녹아내리고 마당은 질퍽였지요.

그리고 종일 날 흐렸습니다.

한기가 화악 듭니다, 이런 날이 정작 더 춥다니까요.

 

7학년 류옥하다는 1학년 성빈이를 챙기며 움직이고 있습니다,

손톱도 깎아주고.

“우리 엄마는 빨리 기르지 마라고 이렇게(*바짝이라는 뜻) 깎아요.”

아이들은 맨날 저들 엄마 아빠를 팔리지요.

샤워도 시키고, 같이 책도 보고, 놀이도 하고,

그리고 일기도 마주하여 쓰고 있습니다.

 

하다가 제일 큰 호박의 껍질을 벗겼습니다.

계자 때 먹이리라던 걸 이러저러 지나버렸습니다.

아주 아주 커다란 세 덩이가 고스란히 남고

자잘한 호박들도 장 위에서 내려오길 기다리고 있지요.

설 아래 먹어라 했습니다.

“그러면 내일도 모레도 그 다음도 그 다음도 내내 호박죽만 먹어야 해요?”

성빈입니다.

“응.”

소사아저씨는 어느새 또 쌓인

큰 해우소 뒤란 박스와 종이들을 정리합니다,

연탄도 필요한 공간으로 들이고.

 

“아고, 어깨야...”

성빈이가 다가와 안마를 합니다.

이리저리 방법을 찾아가며 말이지요.

주먹으로 했다, 손바닥을 펴서 했다가,

다시 손을 펴서 칼날처럼 세워서도 했다...

하다 왈,

“그러니까 머리 안 쓰는 놈들 안마시켜야 한다니까.”

 

교무실 드니 남겨진 음성이 있습니다; 황성원샘.

자그맣고 곱고 생각이 올곧은 사람.

비디오저널리스트 선배의 소개로 그가 물꼬를 왔던 게 벌써 15년도 넘어 되지요.

물꼬가 서울에서 도시 공동체를 실험할 당시

와서 여러 차례 묵어가기도 했고,

품앗이로 행사마다 지원도 왔으며,

2004년 상설학교 개교 땐 지나간 시절을 영상을 엮어 틀어주었습니다.

작년엔 그의 소개로 한 교사가 아이를 보내려고 연락을 해오기도 했네요.

눈이 맑다고, 그래서 눈 맑게 살도록 늘 추동하는 그입니다.

아이 없이 살기로 했던 부부에게 아이 태어난 게 마지막 소식이었던 갑습니다.

벌써 네다섯 해,

아이 키우며 사람들은 물꼬 더욱 그립다 했던가요.

설 지나고 다녀가기로 합니다.

 

밤, 세탁기 앞이었습니다.

틈틈이 하기도 했지만

들어온 이들의 빨래만으로도 빨래방이라 불리는 건조공간이 부족하다 여겨

이제야 보름을 넘긴 상주 식구들의 빨랫감들이 밖을 나왔지요.

빨래를 하자는데, 이런! 물줄기가 쫄쫄거리는데, 수도 문제는 아닙니다.

계자에서 빨래를 맡았던 아리샘,

이걸로 옥샘도 빨래해서 입고 사시는 구나, 짠했더라며

이제 바꿀 때 되었다 강력히 주장하였더라지요.

그렇더라도 우리는 한동안은 더 그 물건을 쓰고 있을 줄을

너도 알고 나도 압니다,

물꼬 삶이란 게 그리 쉬 물건을 버리거나 사는 게 아닌 줄.

 

“안되겠다!”

드라이버와 스패너와 펜치를 챙겨옵니다.

잠자리로 가려던 아이들도 좇아왔지요.

물이 드나드는 꼭지부터 망을 걸러내고,

세탁기를 풀고 쌓인 먼지도 털고 만질 곳들을 다 만져봅니다.

어차피 아주 전문적인 분야야 무슨 수로 알겠는지요.

“도시에서는 이런 거 다 버리는데, 아니면 기사 부르는데,

여기서는 직접 해야 돼요, 그렇죠, 옥샘!”

아, 마침내, 물줄기 세지고 세탁기 온전히 돕니다!

 

좀 거창합니다만,

‘나는 누군가에게 강요당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니다.

나는 내 방식대로 숨을 쉬고 내 방식대로 살아갈 것이다.’라는

저 유명한 <시민의 불복종>의 한 구절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산골로 찾아들어 둥지를 튼 까닭 하나는

자본 중심의 거대 소용돌이로부터 보다 독립적인 삶을 위해서였고,

나아가 진정 자유를 꿈꾸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문제가 생기면 우선 전문가를 부를 생각부터 하는 삶에서

일단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데까지 덤비는 자세,

그것부터 가지고자 함이었고(어차피 기술에는 전문가가 아닌 바에야 한계가 있을 터이고),

사실 산골이라는 지리적 여건이 더욱 그렇게 살 수밖에 없도록 해주었지요.

 

산골에서 날마다 독립을 꿈꾸고,

날마다 자유를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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