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찮아도 느지막히 자는 잠인데,

묶인 강아지들 밤새 짖어 잠을 설쳤습니다.

게다 새벽에 든 한 부모님의 문자가 여러 가지 생각을 길어 올렸던 참이라

이러저러 아침까지 날밤을 샜더랬네요,

연휴가 좋은 것도 이럴 수 있는 거라며.

아이들과 늦게 내려가기로 합니다.

햇살 퍼지면 가자 하지요.

챙겨야할 나이든 사람도 없으니 좋습니다.

성빈이가 좀 출출해 했으나

갖다 놓은 스낵으로 배에서 일어난 불을 껐지요.

느지막히 사택에서 내려가 아침을 먹습니다.

그리 많은 움직임이 있는 계절 아니니,

더구나 이리 추운 날이고 보면

두 끼, 그리고 그 사이 가벼운 참으로 괜찮겠다 하지요.

 

걸려있는 수건을 그예 삶아 빨아 넙니다.

가마솥방 부엌에서 부엌곳간으로 나가는 문 앞에 걸린 수건 하나,

청소용 싱크대 옆에 걸려 손을 닦는 용도이지요.

그런데 빨 때 되었건만 큰일도 아닌데 그걸 못하고

계자를 맞고 계자를 마쳤더랬습니다.

그리고도 여러 날 그거 손댈 짬을 못 내었더란 말이지요.

그예 했어요!

뒹굴며 책도 좀 보고

아이들과 놀고

기락샘과 꼬리를 무는 이야기들...

설 연휴랍니다.

 

“니네 엄마가 쌀가마를 보내야겠다는 말이 까닭이 있었던 게야.”

함께 있는 이가 먹는 게 까탈스러우면 얼마나 마음이 쓰일지요.

성빈이가 얼마나 잘 먹는지 모릅니다.

이 불편한 곳에서 지내기는 또 얼마나 잘 지내는지요.

“참 용해.”

성빈이를 보며 류옥하다랑 자주 나누는 말입니다.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어.(신경 하나도 쓰이지 않아)”

“아니. 있는지는 알겄다, 말이 많아서.”

우리 성빈이의 말법은 정말 재미납니다.

떡국을 먹어야겠어요,는 떡국 먹고 싶어요.

“오늘은 오징어채를 해치워야겠어요.”

물론 오징어채 먹고 싶어요,입니다.

“옥샘, 저 더 있다 갈까요?”

이건 더 있다 가고 싶어요,이지요.

30일 달날에 가기로 예정되었던 성빈,

“아무래도 하루 더 있어야겠어요.”

더 있고 싶은 겁니다.

그러더니 저 혼자 31일 간다고 확정합니다.

그러고 보니 섣달 말일에 와서 달을 채우고 있네요.

좋습니다, 참 좋습니다.

고체인 산골 겨울이 그 아이의 재잘거림으로 액체가 되고 있다지요.

 

낡은 사택은 단도리를 좀 했다고 하나 여전히 우풍 셉니다.

방에서는 워머(라 하더군요. 원형 숄)를 두르고 앉은뱅이 책상 앞에 앉습니다.

이불 안에 들어 누워서 책을 볼 때도 두르고,

잠옷을 입고도 위에 다시 워머를 두릅니다.

지난해는 독일에서 한 교수님이 보내준 물주머니로 잘 나더니

올해는 아리샘이 사온 워머로 겨울을 이리 잘난다지요.

그래도 시렁에 메주를 단 아이들 방은 훨 낫나 봅니다.

“옥샘, 저희 방 진짜 따뜻해요.”

툭하면 저네 방에 와서 누우라는 성빈.

 

새끼일꾼 부모님들과 품앗이일꾼들에게

홈페이지를 통해 어려운 글 하나를 써서 올립니다.

어제 한 부모님의 문자가 있었고,

오늘은 다른 한 부모님과 통화 길었더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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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꼬에 손발 보태는 일꾼들이 대단하기로야 정평이 나 있지요.

특히 새끼일꾼들이라면 물꼬의 ‘영광의 이름자’로 불리웁니다.

일을 통한 배움이 사람을 얼마나 강건하게 만드는지, 늘 놀라지요.

이 혹독한 산골 삶으로 걸어 들어와

선한 일에 동참하며 기꺼이 움직이는 그들을 보면

이 시대 청소년에 대한 우려가 먼 나라의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세상의 미래에 낙관하게 되다마다요.

나아가 그들이 이곳에서 우정을 쌓고 서로 상생하는 과정은

보는 이들을 더욱 흐뭇하게 합니다.

물꼬가 고마운 또 한 순간이지요.

 

그런데, 지난 해 맺은 한 인연이

물꼬 같은 공간을 뒤늦게야 만나게 되었음을 애석해하며

너무나 훌륭한 아이들과 당신 자식이 교류하게 됨을 감사히 여기시고는,

고마움으로 새끼일꾼들을 위해 여름 계자에 다녀가는 걸음에 이어

사흘 동안 펜션을 빌려준 일이 있었습니다.

소식을 듣고 적잖은 우려를 표했더랬지요.

자칫 타인의 사적인 영역에까지 물꼬가 관여하는 것으로 비칠까 하여

대단히 조심스러웠으나

그 인연이 물꼬로 시작되었고,

모임 역시 물꼬 사람들 모임이어,

다행히도 그 부모님이 마침 벗처럼 교분이 있었던 터라

호통(?)에 가까운 정색을 했던 겝니다,

"일을 통한 건강한 만남이면 모를까

놀자고 며칠 밤을 모이는 거라면 생각을 좀 해야는 것 아니냐"고.

어떤 부모님 말씀을 따르자면,

물꼬가 흔히 종교 안에서의 수련회와 다른 것은

일을 통한 건강함에 있기 때문 아니겠냐셨더라지요.

 

아니나 다를까, 이후 그 모임과 관련 있었던 한 새끼일꾼을 통 보지 못했습니다.

짐작한 바가 없지 않았으나,

한발 늦게야 그 여름의 일이 그 아이 부모님 마음에 걸려있었음을 알게 되었지요.

좋은 일 하러 간다하기 보냈던 것이지

그리 모여 노라고 보낸 건 아니었다, 그것도 며칠이나,

이런 관계라면 좀 걱정된다는 말씀이셨습니다.

 

지난 여름의 선례에 이어 올 겨울도 한 부모님이 마음을 내어

새끼일꾼들에게 펜션을 빌려주려 한 일이 있었습니다.

물꼬에서 맺은 좋은 인연들이 깊어지는 것에 대해 기뻐합니다.

그러나 때로

좋은 뜻으로 시작한 일이 꼭 그러한 결과를 얻는 건 아닌 듯합니다.

물꼬에서 일을 통해 만날 게 아니라면

굳이 바깥에서 ‘밤을 새워가며’ 방을 빌려 놀 것까지는 없지 않겠는지요.

아무래도 아쉽다면야

이른 아침부터 만나 밤 이슥토록 논 뒤 헤어질 수도 있을 테지요.

일찍이 품앗이일꾼들이 서울근교에서 모임을 가진 예들이 익히 있었고,

스무 살 지난 성인들이 하는 일에야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겠습니다.

그러나 새끼일꾼들이 모이는 일에는 조금 더 신중해야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꼬 일이라면 백퍼센트 신뢰하고 보낸다는 한 새끼일꾼의 부모님은

이런 일에 대해 걱정을 보내셨습니다.

홈페이지를 통한 대화였음 좋겠다고,

스마트폰 위주로 이어지는 지나친 교류가 염려스럽다셨지요.

충분히 공감합니다.

더구나 올해는 계자 끝에 물꼬에서 하룻밤 잘 노다 가기도 하지 않았던가요.

 

어른으로서의 지혜가 필요한 때인 듯싶습니다.

한편 새끼일꾼들과 관련하여 품앗이일꾼들의 분별 역시 필요하다 싶습니다.

굳이 모여서 같이 밤을 보내야만 우정이 깊어지는 것일지요?

외람되오나, 살아갈수록 사는 일은 균형이다 싶어요.

좋은 의도를 왜곡한다 지레 불편해하시기 전

아무쪼록 물꼬의 처지와 마음, 그리고 다른 부모님들을

두루 헤아려주시옵기 부탁드립니다.

분명한 건 우리 어른들 모두 물꼬의 그늘이 우리 아이들을 바람직하게 키워줄 것을 믿고

우리 아이들이 곧게 나아가길 바란다는 공통된 소망을 가졌다는 사실 아닐지요.

 

설입니다.

건승하옵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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