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25.물날. 사흘째 얼어붙은

조회 수 1257 추천 수 0 2012.01.31 02:08:10

 

 

맑습니다,

흐리다더니 다행입니다.

그러나 춥습니다.

부엌 안 수세미가 다 얼었더이다.

 

기락샘 서울 가고, 소사아저씨는 긴 휴가 중이고,

아이 둘과 달랑 남았습니다.

한파가 준 소동들 이어집니다.

기온 아주 아래로 내려가 그런지 연탄이 훌러덩 타버리고는 하여

가는 시간대가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다행하게도 여러 곳에 아궁이가 있으니

여기 꺼지면 저 곳에서 옮겨오고는 하지요.

다음은 배수로.

아이들이 창 아래서 수런수런하기 무슨 일인가 했겠지요.

고추장집에서 나가는 물(부엌 물을 틀어두었으니)을

농수로에서 흔히 쓰는 천막호스를 이어 간장집 쪽 배수로로 내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호스가 얼어 터진 곳 생겨 흘러가지 못하고

거기서 물 뿜어대며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

사택으로 오르는 계단 쪽이 넘친 물로 너른 빙판을 이루고 있었지요.

호스에서 얼음을 깨고 빼내고 있었습니다.

성빈이도 그런 류옥하다 선수를 한 몫 거들고 있었네요.

아이들은 그렇게 일을 하고,

짐승들을 거둬 멕이고 청소를 하고,

그러다 형이 동생한테 피아노를 가르치고,

저녁엔 교무실 와서 계자 후속작업 하나인

2차 택배 보낼 준비를 도왔지요.

 

오늘은 아이들과 같이 본관 불을 끄고 올라와

된장집의 소사아저씨 방에서 텔레비전을 봅니다.

오늘 내일 프로그램 하나 챙겨 보기로 하였지요.

“여기도 텔레비전이 있었어요?”

“젊은 할아버지 방에만.”

성빈이가 신기해라 했습니다.

그 끝에 요새 한참 입에 올려지는 사극 하나

우리도 챙겨봤더랍니다.

명절 연휴란 말이지요.

“아, 근데 물!”

한 시간을 그리 모여 앉았다가 나오는데,

이런! 아이들이 얼지 않도록 물을 잘 틀어두긴 하였는데

온수기 물을 쓰고 전원을 끄지 않은 채 냉온수 사이로 틀어두어

김 오르는 물이 그리 허비되고 말았네요.

산골 겨울 앞에 수년을 살고 있어도

이런 실수를 반복하는 것은 줄지가 않는 듯.

매순간 깨어있기!

 

아이들이 잠든 밤, 선배가 쓴 글 하나를 읽었습니다.

사랑은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는 것,

사랑은 무능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는 어느 시인의 시를 옮기고 있었지요.

‘모순과 오해와 절망과 희망 속에서 나를 지키는 말들’이라 했습니다.

아, 당신도 그러하구나,

얼마나 자주 모순덩어리 자신 앞에 서던가요.

선배를 지키는 말이 저를 또한 지키고 선 밤이네요.

 

깊은 밤, 지역 도서관에서 들고 온 책도 읽었네요.

소설가 입문작들이었습니다.

한 새내기 소설가의 당선소감 하나,

‘삐딱한 내 심장을 언제라도 뛰게 만드는

내가 목격한 예술가 중 가장 열정적이고 아름다운 시아버지’라는 구절,

누구일까 궁금하더니

남편이 이한얼 감독이랍니다, <호우시절>의.

그러면 시아버지가 누구려나요?

이외수 선생이 되는 거지요.

세상 소식이 먼 이곳이어(자의든 타의든) 처음 듣는 얘기들이었지요.

마침 선배 하나 전화했기 물으니

한 때 인터넷을 꽤나 달구었던 모양입니다,

그것도 조선일보를 통한 등단이어.

인터넷이라는 특성상 거친 말들도 오르내렸겠지요.

그런데, 문득 우리 사회에서 '조선일보'가 갖는 의미를 생각해보게 됩디다.

'이외수'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 또한.

그처럼 우리나라는 어떤 이의 표현대로 ‘어떤 단어가 갖는 의미가 선명한’ 나라.

사실 ‘박쥐같은 이들이 회색지대에 살면서도’

‘판단’만큼은 그토록 선명하게 하고 있더란 말이지요.

 

아침이 밝아오는 7시에 잠에 듭니다.

그래도 아이들 꼼지락거림에 너무 늦지 않게 깨어날 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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