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발 날리긴 하나 나흘째 얼었던 날의 기세는 조금 풀린 듯.

그러나...

세탁기로 드는 물이 그만 얼어버렸습니다,

아이들 빨래를 해주자는데,

세탁기와 벽 사이 히터를 그 뒤로 내내 켜두는 데도.

‘용의 구슬이라는 고전에 이르기를

대마왕을 물리치니 베지타가 나왔고

또 물리치니 후리자가 나왔고

다시 물리치니 마인부우가 나오더라.’던가요.

흙집 터진 수도를 막고, 세면대를 고치고, 세탁기를 고치고, 온수기 수도배관을 고치고,

쾌종시계를 고치고, 된장집 언 수도를 녹이고, 그리고 이제 세탁기 물!

흙집 안 다른 수도꼭지들은 다 틀어두었던지라

말썽이 생겨도 딱 그 벽만이겠다 하고 마음 놔버립니다.

“날이 풀리는 중이나 좀 기다려보자.”

그래도 퍼서 쓸 물이 가까이 있어 얼마나 고맙던지요.

난로 위 주전자 물로 애벌빨래를 하고,

때마다 물 퍼 넣으며 세탁기를 돌립니다.

그래도 돌아 고맙마다마요.

 

아이들이 마른 빨래를 다 걷어옵니다.

같은 종류들로 분류한 뒤 수건만 가마솥방으로 왔지요.

수건을 개며 성빈이,

“빨고 말리고 2일 동안이나 시간 걸리는데 쓰는 데는 금방이에요.

(그런데) 하루에 세 개 쓰는 건 너무하다.”

계자 때 ‘우리의 젊은 언니들’이 그러더라지요.

우리의 젊은 언니들인 고학년 여자 아이들은

젤 먼저 일어나 머리부터 감습니다, 이 겨울에도 날마다.

그런 부지런함이라면 그래도 된다 싶기까지 하데요.

“옥샘, 이건 발 닦는 것으로 하면 좋겠어요.”

진한 색깔이 나타날 때면 성빈이가 치켜듭니다.

저 아이도 그런 규모가 다 있노니...

얼룩진 수건들은 가려내지요.

걸레로 쓰긴 너무 멀쩡하고,

그렇게 걸레로 오해받을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아무래도 삶아서 박박 주물럭거려야겄다 하지요.

 

성빈이랑 해우소 친구가 되었습니다.

바깥 해우소는 작은 아이들에게 아무래도 위협적이지요.

“화장실 갈까?”

“네.”

“옥샘은 화장실 안가세요?”

“가자.”

그렇게 함께 다닌답니다.

“옥샘, 그런데, 문에 달린 거 이거(문고리) 있잖아요,

하다 형이 계자 때 뚝딱뚝딱 시간에 만든거래요.”

“응, 그랬다더구나.”

“그런데, 하다 형은 어떻게 알고 (원리를) 했을까요?”

이제 슬슬 하다 형 꽁무니가 시들해진 성빈이는

종일 제 뒤를 따라다니고 있습니다.

완전 껌이라지요.

“제가 옥샘 껌이면 옥샘이 절 씹으시는 거네요.”

가끔 그 껌은 비둘기가 되기도 합니다.

전령이지요.

학교가 넓으니 여기서 저기 있는 큰 애한테 뭔가 시킬 때도

성빈이를 쓰면 됩니다.

딱 제 일이지요.

형아도 가끔 아이에게 뭐 가져오라 부탁합니다.

영락없는 막내.

 

연탄을 가져다 놓을 때,

개밥 닭밥을 줄 때는 아이들이 같이 다닙니다.

“닭들이 많이 컸어요.

수탉은 의젓해지고 암탉은 포실포실 살이 오르고...”

빈 들통을 돌리며 걸어오는 아이들을 내다보니

형아는 동생에게 원심력과 구심력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요, 저렇게 곁을 통해 배우는 것들이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던지요.

교무실 난롯불이 시름시름하자

류옥하다 선수는 난로를 다 비워내고

그 바닥 재들도 긁어냅니다.

어느새 쌓여있는 재들, 겨울이 그리 쌓였을 테지요...

 

잠시 읍내 다녀오기로 합니다.

도서관 책도 반납해야 하고

설에 못한 인사도 해야 하고

자동차검사도 해야 하고

장도 봐야 하고

아이들, 자장면집 자장이 먹고프다고도 하기.

먼저 나가서 일 보고 아이들 황간으로 버스 타고 나오기로 합니다.

그래야 학교를 비우는 시간이 준다고 저들이 그러겠댔지요.

나가는 길, 계자에 남겨진 택배며 우편물들 2차 발송.

그런데, 면소재지 들린 택배집,

설 인사들을 하는 어르신들이

따뜻한 것 마시고 가라며 홍삼차를 사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아, 이 산골서 오래도 살았고나...’

 

그런데, 중국집을 다녀와 배를 움켜쥐고들 화장실을 드나들며

역시 언제나처럼 집밥이 최고라는 결론들이었지요.

참, 막 매워하는 저더러 성빈이 왈,

“옥샘, 매운 거 드시면 안 되죠?”

“엉?”

일전에 한 부모님이 이제 옥샘도 체력을 보강해가며 겨울을 나야한다고

설인사로 건강보조한약재를 보냈더랬습니다.

거기 그리 적혀 있었던 게지요.

'술, 담배, 짠 음식, 매운 음식을 삼가고,...'

 

2월에는 예비중 계자를 예정하고 있었습니다.

예전에도 더러 있었던 적 있었고,

지난해도 참 좋은 자리였더랬지요.

그런데 새끼일꾼으로 신청했으나 오지 못했던 새끼일꾼이며

같이 수행했던 이기찬샘이며 대구의 품앗이 황성원샘이며

방문들 하고 싶어하기

일정을 ‘빈들모임’으로 바꾸기로 결정하였네요.

꼭 여느 일정처럼 보내지 않아도 좋겠다 하지요.

느릿느릿 도란거리며 지내리라 싶습니다.

 

중아아시아를 다녀올 일이 생겼습니다.

3월로 예정합니다.

새 학년도 가을학기에 티벳 여행을 앞두고 일종의 몸풀기 쯤 되겠습니다.

가난한 여행이니 많이 걷고 잠자리는 거칠 것이며 먹는 것도 단촐할 테지요.

그 쪽 공부하는 몇 분과 동행할 계획입니다.

잘 다녀와 훗날 물꼬 인연들과 그 길 또 밟으리라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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