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29.해날. 맑음

조회 수 1176 추천 수 0 2012.02.16 15:30:00

 

소사아저씨는 겨울 이 맘 때쯤 열흘 정도 부산으로 나들이를 가십니다.

그 부재의 자리에 아이 둘과 산골서 지내는 복닥거림들...

초등 1년 성빈이가 한 달 가까이 머물고 있습니다.

새끼를 세 마리나 거느린 장순이네 삶도 이 겨울은 부산합니다.

저들끼리 줄이 엉키기도 하고...

가끔 우리는 엉킨 줄을 풀어주러 나갑니다.

“제가 장순이 잡고 있을 게요.”

성빈이가 저(자기)보다 더 큰 장순이를 붙잡고,

전 곁에 얽힌 ‘하나’의 줄을 풀어주었지요.

 

“어머니, 연탄 갈까요?”

아이들이 먼저 고추장집을 나서며 현관문을 닫다가 묻습니다.

좀 귀찮은데 어머니가 갈아주시면 좋겠다,

갈 때 됐을 것 같은데, 제가 갈아도 되는데,

갈 때 되지 않았을까요?(들여다보기 귀찮으니),

어머니가 여기 고추장집 가시면 아래 가마솥방과 교무실은 제가 갈게요,

어머니가 좀 해주시면 안 되나,

있다가 갈아도 되면 그냥 갈게요, ...

한 문장의 말은 얼마나 많은 말을 담고 있는지요.

“있다가 내가 나가면서 갈게. 그냥 가.”

 

“우리 한 시간만 난로 곁에서 같이 책 보자.”

가마솥방으로 드는 볕이 얼마나 두텁던지요.

점심을 먹고 뒤 불가에서 모두 책을 끼고 나란히 앉았습니다.

등에 닿는 햇살이 양지바른 언덕만 같습니다.

그러다 생각나는 일이 있으면 이야기가 오가고...

정토 혹은 천국은 이런 순간이다 싶지요.

 

오후, 영어 공부하는 아이들 틈에 같이 노닥거리기도 하다가

여러 곳에 널려있던 마른 빨래들을 정리합니다.

옷방은 어느새 또 들인 옷들로 너저분해져 있습니다.

“아, 또 해지겠다, 그만!”

어느 지점에서 또 밀쳐두지요.

옷방은 그런 곳입니다, 계자 전 계자준비위를 구성한 세 사람도

사흘 내내 옷방에만 들었더라지요.

 

“뽑기 하고 싶어요!”

동생 성빈의 바램에 류옥하다가 나섭니다.

도구를 챙기고 설탕과 소다를 꺼내고...

들여다보니 제법입니다.

부침개형태로도 만들고 이따따 만큼 부풀려 빵도 만들고...

설거지까지 깔끔하게 해두데요.

류옥하다는 마지막 늙은호박들의 껍질도 다 벗기고

삶아 으깨두기까지 하였지요.

내일도 호박죽을 쒀 마을 할머니들과 나누려지요.

 

찬장의 돼지기름들 다 꺼내 버리기.

그예 버렸습니다.

횃불을 피워 올리려고 챙겨둔 것입니다.

‘싫다’고 말하는 일이 잦지 않은데 이곳에서 고기를 굽는 일은 꽤 싫습니다.

그래도 해야 할 때가 있지요.

이번 겨울에도 고기들을 구웠고, 기름이 나왔고,

그 기름을 어쩌냐 하다 또 모았지요.

모이고 모인 두어 해의 기름들,

그것들이 장 안에서 비누처럼 굳은 게 여럿이었습니다.

버려버렸습니다.

언젠가 쓰이리라, 그렇게 쟁여진 것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전 늘 선생님을 그리워했어요. 너무 보고 싶어요.”

봄소식처럼 온 한 제자의 글월을 읽습니다.

우리가 같이 공부한 것만도 한 네 해는 되지요, 아마.

아아아아아아,...

1994년 여름의 계자 원년 멤버(그 계자가 이 겨울 무려 150 번째였습니다)들...

물꼬의 새끼일꾼이 처음 생겼던 것도 그들 대였습니다.

오래 한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이리들 만나게 됩니다.

좋습니다, 참 좋습니다.

벌써 그 아이들이 30대에 이르렀지요.

 

품앗이 여자 샘들 몇 과 통화도 합니다,

오래 보지 않았거나 마음 빚이 크거나 혹은 그립거나 한 이들.

인교샘이랑은 어제 통화를 하였더랬네요.

밥바라지들에겐 더 마음 각별합니다.

거기도 많은 사람들을 멕이는 일들 있었다 했기

저도 가서 밥바라지 해주고 싶다 했지요.

“그게 아니구요, 저희 교회에서도 80여 명 식사를 한다고...”

“아, 저는 또, 어디 캠핑을 가서 그리 멕이는 줄 알았네.”

이런 교류들을 통해 돈독해진 시간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한 조건이기도 하지요.

언제 좋은 곳으로 같이 여행을 떠나는 날도 오겠지들 합니다.

 

아홉 살이 되는 성빈,

“낼 젊은 할아버지 오시네요...

인제 우리가 연탄불 신경 안 써도 되겠다.”

그러더니 곧 덧붙입니다.

“그래도 조금은 (신경을)써야 해요.

정리(하는 것)는 무조건 (신경을)써야 돼.

젊은 할아버지는 쑤셔 넣으니까.”

아이고,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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