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해리엔 새벽 눈 내렸다 합니다.

닭집 앞이며 고래방 들머리며 가마솥방 입구의 눈을 치웠다는,

소사아저씨 전한 소식.

 

아침부터 부암동의 게스트하우스가 부산했습니다.

발해항로를 따라 떠났다 돌아오지 못한

‘발해 1300호’ 14주기 추모제가 11시에 있습니다.

간밤부터 있었던 추모모임이 동이 터서야 잠자리가 허락되었지요.

추모제를 진행할 선배 부부가 먼저 아침밥상을 서두르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사명감이 있응께.”

“오늘의 제목은 ‘어느 노부부의 사명감’이네.”

9시 ‘윤동주 시인의 언덕’ 야외무대로 이동.

전날보다 푹해지긴 했으나 흐린 하늘아래 춥기가 만만찮았습니다.

발이 시려 자주 동동거려야했지요.

그곳에 이르는 길목에는 뗏목사진들을 전시하고,

곧 무대에서 향을 피워 올리며 제(祭)를 시작했지요.

 

1997년 12월 31일, 발해 건국 1300년을 앞두고 네 명의 젊은이들이 그 시대의 뗏목을 복원합니다. 그리고 옛 발해의 땅인 러시아 블라디스톡에서 발해 해상항로를 따라 바람과 해류에만 의지해서 항해를 시작하지요. 중국의 동북공정이 날로 심해지던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의 발해관 폐관과 서구의 해양국경선 200해리 선포 준비들이 그들이 뗏목을 띄우는 일에 박차를 가하게 했습니다.

혹한 속에서도 24일 간의 항해는 성공적인 듯하였으나 이듬해 1월 23일 오후 일본의 오끼섬을 앞에 놓고 뗏목은 난파되고 맙니다. 장철수 대장과 이덕영, 이용호, 임현규 대원들은 그렇게 떠났지요. 잃어버린 영토에 우리의 주권이 있다고 생각했던 강직한 그들이었습니다.

이후 전무하던 발해관련 박사논문들이 나오고, 발해관련 드라마가 만들어지고, 마침내 통영시 수산과학관 내에 기념탑과 네 분의 동상이 세워지고 교과서에 이름이 올려지기에 이릅니다.

 

대장이었던 장철수 형이랑은 가까이 살며 많은 생각을 나누기도 했고,

1992년 임진왜란 400주년 기념행사를 같이 준비하기도 했습니다.

광활한 만주벌판을 달리는 기상을 지닌 그였지요.

 

누가 왔더라...

어제부터 함께 하지 못했지만 다른 선배들이 합류하고,

올해는 물꼬 식구들도 자리를 여럿 했습니다.

“번호!”

“하나, 둘, ... 열다섯 번호 끝!”

휘령샘 철욱샘 아리샘 기락샘,

새끼일꾼 경이 유진 가람 인영,

일한 성재 관우 효정 진현 하다.

추모제를 마치고 모두 게스트하우스로 다시 모였습니다.

우리도 방 하나를 그득하게 차지하고 떡국을 먹었지요.

“발해 1300호, 그런 뗏목이 있었다는 것도 그동안 몰랐는데...”

“이런 추모제가 있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

“이 일처럼 지금 이 순간에도 곳곳에서 의미 있는 활동들을 하고 있을 거예요. 제 도움을 보탤 일도 있을 거구요.”

“중요했던 발해사가 새롭게 조명된 계기였다고 하니 정말 우리에게 큰 걸 물려주셨다는 생각을 했어요.”

“목숨을 걸 만큼 가치 있는 일이 있다는 그 열정이 아름답네요.”

자리를 갈무리하며 마지막으로 전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외웠습니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식민지 조선의 청년의 결이

오늘 우리가 기리고 있는 신식민지 조국의 청년 장철수로 이어지는 듯만 하여.

 

‘역사가 창조적이려면, 또한 과거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가능한 미래를 예견하려면,

일순간 스쳐 지나간 일일지언정 사람들이 저항하고 함께 참여하고 때로는 승리하는 능력을 보여줬던

과거의 숨겨진 일화들을 드러냄으로써 새로운 가능성들을 강조해야 마땅하다고 믿는다.’[<미국민중사>(하워드 진)에]

우리가 발해 1300호를 기리는 뜻 역시 그러하겠습니다.

아무리 사소할 지라도

우리가 곳곳에서 저항하고 참여하고 때로는 승리한 일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까닭이 그러합니다.

그리하여, 옳은 일, 선한 일에 복무하는 일이

꼭 지지받거나 순탄하게 흘러가지만은 않을 때에도

뚜벅뚜벅 걸어갈 힘 역시 바로 거기서 얻을 것입니다.

‘발해 1300호’ 15주기 추모제에서는 더 많은 이들과 함께 하길 서원합니다...

 

자리가 끝나고 샘들과 아이들은 경이네 집으로 갔다가 볼링을 친다던가요.

그 사이 그 동네에 사는 유진모와 경이모랑 자리했습니다,

아리샘도 동행하여.

차 마시고 밥 먹고 아이들 이야기 물꼬 이야기 나누다,

휘령샘 철우샘 와서 합류하는 동시에 어머님들은 자리 접으셨네요.

겨울계자가 술을 타고 그 자리까지 흘러왔더랍니다요, 하하.

 

고맙고, 감사한, 하루입니다,

삶이 어느 하루인들 그렇지 않을까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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