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사이, 아이는 몇 차례

비어있는 달골을 둘러보러 오르내렸습니다.

보일러실이며 부엌 수도며 욕실이며

그리고 방 구석구석 혹여 문제가 생긴 곳은 없는가 살폈더랬지요.

지난주엔 머물던 초등 1년 성빈을 데리고

지하수 모터 쪽의 동파방지를 위해 설치했던 장치가 망가진 것을

새로 수리해서 작동시켜놓고 내려오기도 하였더랍니다.

한동안 아주 추웠기

오늘은 아이랑 함께 올랐습니다.

햇발동을 나서기 전 아이는 어미의 노트북도 챙겨 나왔습니다.

제(자기) 노트북을 내내 엄마가 차지하고 있었기도 해서 그렇겠지만

얼마 동안 오를 일 없으니 제(자신) 것 쓰는 게 아무래도 편하려니 한 게지요.

적어도 어미한테는 퍽 고마운 아이랍니다.

 

여권이며 침을 맞는 일이며로 교무실을 나서는데,

전화가 울렸습니다.

“○○○입니다.”

대뜸 이름을 들먹입니다.

“15년 만인가요?”

“우리 아이가 열다섯이 되었으니 그렇겠네.”

물꼬 서울학교가 동교동 있을 적 두레일꾼이었고,

물꼬에서 맺은 인연으로 혼례를 올리기도 한 그입니다.

괴산 어디쯤에서 캠프도 하고 문해교육도 한다 들었지요.

“오래전에 옥샘께 말로 상처를 입힌 적이 있었는데...”

처음엔 말이 주는 상처를 몰랐고,

이후 알았으나 전화를 하지 못했고,

이제야 한 전화랍니다.

요 며칠 여러 차례 같은 번호가 전화기에 남아도 있었지요.

“살아가며 힘들었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미안합니다.”

그리고, 정말 건강하고 행복하길 진심으로 빈다했습니다.

전화를 하게 된 무언가 계기가 있었겠지요.

사람의 기억은 벽의 그림이 아니지요.

영화처럼 움직여 그것이 서로에게 전혀 다른 장면이기도 합니다.

어떤 상처를 주었는지 저는 생각도 나지 않는데,

그의 마음에는 남아서 불편을 일으켰던 모양입니다.

맞은 놈이 발 뻗고 잔다던가요.

여튼 그의 마음이 평온해졌을 것이니 다행입니다.

‘사람의 일’들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그리 허허로울 수가 없는(허허롭기만 한).

 

추창민 감독의 <그대를 사랑합니다>(2011)를

늦은 시간 아이랑 함께 보았습니다.

그의 첫 영화 <마파도>는 그냥 코미디니까 쉬운 영화라는 생각을 했고

(그러고 보니 그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본 적은 없네요),

다음의 <사랑을 놓치다>는 퍽 잘 보았습니다.

이번 영화는 노년의 사랑이야기로

관록 있는 배우들의 맨 얼굴 클로즈업만으로도

영화의 힘이 엄청나서 놀라고 또 놀랐지요.

그런데, 노부부가 연탄을 피우고 생을 정리하는 장면에서,

그것을 자식들, 나아가 사람들이 그런 사연을 알지 못하도록 친구에게 수습토록 한 장면은

결국 눈물을 쏟게 했습니다.

영화를 보던 어미도 아들도 펑펑 울다못해 대성통곡.

노후를 걱정하는 시대, 이 무슨 버르장머리 없는 사람의 시대란 말인가요.

 

만석의 오토바이가 동네 깡패의 차를 긁는 장면에서,

그제야 영화를 만들어놓고 배우 이순재가 한 인터뷰 한 문단 떠올랐습니다.

어느 영화나 그런 장면들이 있겠지만

그 장면 자체와 무관하게 전체적인 느낌 안에서 '사는' 장면들이 있다지요.

그렇겠다마다요.

헌데, 만약 이 영화가 별로였다면

그런 장면들이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을 거라며,

전체적인 리듬이 중요하다 했습니다.

‘전체적인 리듬’...사는 일도 그러하다 싶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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