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명상’이 있은 오후였습니다.

 

소사아저씨와 아이는 오늘 옥상에 올라 얼음을 깼습니다.

얼음이 녹아 홈통을 타지 못하면

고스란히 흙집 벽을 타고 물이 흘러내릴 것입니다.

벌써 벽이 군데군데 젖어있기도 하였지요.

 

밭에 단도리를 해두었던 대파를 요긴하게 쓰는 겨울입니다.

오늘도 그득하게 뽑아와 다듬었지요.

반찬들을 만들고 채워 넣으며

오늘은 ‘핀란디아’를 틀었습니다.

겨울이면 러시아 음악들과 함께 라디오에서도 종종 만날 수 있는 곡.

헬싱키의 시벨리우스공원에도 두어 차례 갔습니다.

아이가 여섯 살 무렵

헬싱키와 그곳으로부터 기차로 2시간 거리의 하멘린나와

다시 또 2시간을 달려 이르는 탐페레에 머물렀지요.

시벨리우스 공원의 파이프오르간을 연상 시키는 조각품이 떠올랐고,

아이를 데리고 걷던 거리도 되짚어졌네요.

먼 옛적입니다.

사람의 일이 이런 뿌연 궤적들을 그리며

사라진 바람의 길처럼 그리 흘러갈 터이지요,

이적지 사람이 살아온 것이 그러했듯.

 

마을을 나갔다 오리라고 교문을 나서는데,

뒤에서 문을 닫으려고 섰던 아이가

차를 향해 꾸벅 90도로 인사합니다.

영화 <가문의 영광>에 나오는 그런 인사,

“형님, 다녀오십시오!” 하는.

혼자 한참을 웃었습니다.

 

밤, 아이는 교무실청소를 깔끔히 해놓고 어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복도와 흙집 바닥까지 다 해놓았지요.

기락샘도 마침 서울서 내려왔습니다.

무슨 말 끝이었던 걸까요,

우리 아들 참 잘했고나 뭐 그런 인사 뒤였던 듯합니다.

“하하하, 평소에 내가 다 하는 건데...”

“알아.”

“인공지능 전천후 리모콘!”

“방수도 돼.”

“방한도 되지, 추위도 안타니.”

이 아이가 없던 시절은 또 어찌 지냈던 걸까요?

이 아이가 없을 날은 또 어이 지내려나요...

 

초등 5년 아이를 둔 아비, 막무가내 방문 요청이 들어옵니다.

얼마나 절박하면 이 산골까지 당장 찾아나서겠다고 하는 걸까,

물꼬의 소임이려니 하면서도 때로 힘에 겨워

정부지원 아래 있는 공간들이 그런 역을 더 해주었으면 싶지요.

먼저 글을 주십사 합니다.

시간도 줄이는 것이고,

그래야 오고자 하는 이도 무슨 문제인지 정리를 할 테고,

듣는 편에서도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를 가늠하기 쉬울 테니까요.

같이 특수교육을 공부했던 후배의 구조요청도 있었습니다,

초 6년 남아, 돌볼 사람이 여의치 않은.

아, 딱한 사정들은 어이 이리 많은지,

이 관계들에 물꼬는 무엇을 얼마나 할 수 있을 것인지요...

 

3월 한 달 중앙아시아에서 보낼 생각이라

중앙아시아의 역사와 문화를 살피고 있습니다.

오늘은 논문집 하나를 봐요.

잘 못 짚었다 싶기도.

지금은 좀 얕은 정보가 더 유용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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