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2.13.달날. 눈 내리다 흐림

조회 수 1176 추천 수 0 2012.02.24 03:28:45

 

 

밤, 짐승소리들이 건너옵니다.

아직 남은 겨울, 먹을 것이 모자라기라도 해서일까요,

아니면 겨울잠을 깬 누구인지...

 

소사아저씨는 목공실 위 처진 비닐에 고인 빗물을 떨어냅니다,

녹고 얼기 반복하며 비닐을 찢을 수도 있겠기에.

얼어붙은, 교무실 뒤란 옥상에서 내려온 홈통의 얼음도 깹니다.

지붕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고였던 물이 그제야 흘렀지요.

 

7학년 진현이가 하룻밤을 예서 묵고

류옥하다랑 일주일의 여행을 떠났습니다.

대전 고속버스터미널에 내려주었지요.

“너무 많이 얻으려 말거라.

내가 가벼워야, 비우고 있어야 들어오기가 쉽단다.

좋은 것을 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서로 사이좋게 다니는 게 아닐까 싶어.

먹는 것에 돈 아끼지 말고.

얻어 자는 잠이라도

숙박에 들이는 비용만큼 찾아드는 댁에 뭐라도 사들고 가고...”

길어지면 잔소리 되는 거지요.

 

나가는 길에 성빈이가 두고 간 옷도 챙겨 보내고,

늘 마음 고이는 한 벗에게 김치를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역시 나간 길에 대전에 사는, 이제는 멀리 떠난,

벗의 어머니를 만납니다.

같이 밥을 먹고 장을 봐 들여보내며

비로소 헤어지는 인사를 할 수 있었지요.

보내고도 보내지 못하는 일이 얼마나 많던가요.

이제야 벗을 보냈습니다.

 

늦도록 교무실에 있은 깊은 밤,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산골의 밤은 문득 어떤 소리가 무서움을 불러올 때가 있습니다,

산골 아니어도 그렇겠지만.

깨어있는 이 아무도 없을 것 같은 산마을의 야삼경,

더럭 겁이 나는 거지요.

일을 끝내고 마당을 나오는데 여전히 건너오는 소리.

그런데, 안에서 들을 땐 마음이 덜컹거리더니

막상 밖을 나오니 그저 개 짖는 소리에 불과합니다.

우리 앞에 놓이는 두려움들도 때로 나서보면 별 것 아닐 겝니다.

나서시라, 마주하시라.

 

역전노장 감독의 영화 한편을 봅니다.

늘 꼭 각이 진 것 같은 그의 영화는

다작에도 정작 제게 남는 게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그렇더라도 오랜 관록이 전해주는 무게가 있는 게지요.

오늘 본 영화는 규보의 시로 더 기억되겠다 싶데요.

 

山僧貪月色(산승탐월색)하여

竝汲一甁中(병급일병중)이라

到寺方應覺(도사방응각)하니

甁傾月亦空(병경월역공)이로다

산속의 스님이 달빛에 반하여

함께 길러 한 병속에 담았네.

절에 돌아와 바로 깨닫게 되니

병 기울자 달 또한 사라진다는 것을.

 

이번 해 상반기 동안 주에 한 차례 쓰고 있는 칼럼,

이번 주 글을 송고합니다.

내일은 천산원정대 발대식이 서울에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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