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2.15.물날. 맑음

조회 수 1225 추천 수 0 2012.02.24 03:30:59

 

 

잣나무에서 바람 무섭게 입니다,

세상의 모든 바람이 거기서 시작되기라도 하는 양.

가끔 타이가의 아나스타샤를 물꼬의 뒤란 잣나무에서 만나기도 합니다,

뭔가 새로운 일 앞에 섰을 때면 꼭.

또 무엇이 시작되고 있는 걸까요...

 

개 식구가 넷이나 됩니다.

강아지들이 크니 남은 음식물로는 턱없고,

사료를 사서 더해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소사아저씨는 오늘 닭사료에 된장을 풀어 끓여 개밥을 더하고 있었답니다.

이웃 붕중샘네 공사장도 기웃거리고,

앞집 이모할머니 소주 들고 건너오셔서 드시고 가기도 했다고.

 

자고 일어나니 눈이 침침했습니다.

활자가 퍼져서 읽을 수가 없는 겁니다.

안경을 얼른 챙겨 꼈는데, 이런! 변화가 없습니다.

간밤 새벽 6시에 들어와 눈 잠깐 부쳤으니

곤해서도 그렇겠지 했지요.

더러 그런 일 있기도 하니 조금 지나면 괜찮으려니 하기도.

그런데,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더럭 겁이 났지요.

이렇게 눈이 멀기라도 하련가.

이모부가 지난 해 한 쪽 눈을 실명하신 일도 있어 더 걱정 일었나 봅니다.

서울을 벗어나기 전 안과를 들립니다.

“이제 노안이 시작되는 거예요.

이렇게 어느 날 갑자기, 어느 아침, 그렇게 시작이 되지요.

점점 심해지실 겁니다.

좀 있다 안경을 다시, 돋보기죠, 맞추셔야지요.”

노안!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온다합니다,

아이가 돌 무렵 어느 순간 발을 디디며 걷기를 시작하는 것처럼.

 

거리에서 삼베로 만든 시루 깔개를 발견했습니다.

마음에 담고 있으면 그리 보인다니까요.

떡을 찔 때마다 낡은 보가 걸리고도

읍내 온갖 가게를 다 들렀으나 찾지 못한 물건입니다.

언제 인터넷으로 사야겠구나 하고는 이러저러 밀리던 일이더니,

오늘 만났지요.

특히 식구들 다 좋아하는 백설기, 자주 해먹겠습니다.

 

대전역에 내려 침을 맞으러 다니는 곳에 들렀다가 다시 대전역,

그리고 영동으로 옵니다.

차를 역에 주차해두고 갔더랬지요.

학교 들어오니 택배가 맞습니다.

미국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소정샘이 보낸 것입니다.

그 바쁜 틈에 그럴 짬이 다 있었더랍니까.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보고파요!"

초컬릿과 holly near의 음반,

‘그리운 물꼬’라는 말이 백번도 더 엿보이는.

홀리 니어, 운동권 가수라고나 할까요.

처음 들으며 존 바에즈라고 착각하게 하는 그의 음색은

주디 콜린즈와도 닮았습니다.

그가 부르던 ‘누가 이들을 기억하랴?’라던 노래가 있었지요.

전쟁을 반대하고 노동운동을 했던 구두수선공 사코와 생선행상 반제티는

무정부주의자 친구가 연방수사국에 끌려가 몸이 으스러진 채 죽은 소식을 듣고

총을 지니고 다니지요.

경찰은 이들을 살인죄와 강도죄로 체포하고, 그들은 사형당합니다.

그들의 억울한 죽음을 노래하던 그,

이제 50대 초반쯤 되었겠습니다.

얼마 만에 받은 음반 선물인지, 아, 좋습니다.

오는 7월 말쯤이면 귀국한다 합니다.

멀리서 밥 잘 묵고 건강하길.

 

늦은 밤, 영화 한편 봅니다.

나날이 죽음으로 가까이 가는 이를 지키는 이야기,

세상을 떠나는 이와 보내는 이의 이야기.

타키타 요지로의 <굿& 바이>가 떠올랐네요.

죽은 자를 위한 예의 앞에서 우리를 경건하게 만들던,

그리고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애정이 그 일을 성스럽게까지 만들 수 있음을 보여주던.

장의사인 이 영화의 여주인공도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흔하나 마음에 남는 대사,

“세상에서 제일로 먹기 힘든 게 마음,

세상에서 제일로 버리기 힘든 게 욕심,

세상에서 제일로 배워먹기 힘든 기술이 잘 사는 기술.”

한편 세상에서 제일로 ‘쉬운’ 게 또 마음 먹기이고

젤로 버리기 쉬운 것 역시 욕심이겠습니다.

잘 사는 기술은?

그것도 어쩌면 아주 쉬운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생각한 대로 살아가면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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