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2.16.나무날. 다시 한파

조회 수 1230 추천 수 0 2012.02.24 03:32:25

 

 

눈 나리는 밤입니다.

그 위로 별도 별일 없는 양 쏟아질 듯 걸렸습니다.

바람 거칩니다.

다시 한파.

강원 한파주의보.

강원도에 사는 선배를 생각했습니다.

소식 닿지 않지만 가끔 읽는 글로 그를 만납니다.

그리라도 소식 알아 고맙습니다.

가끔 물꼬 소식도 누군가에겐 그러하겠고나 싶데요.

 

얼마 만에 글을 쓰는지요.

보름 넘게 ‘물꼬요새’도 못썼습니다.

그나마 하는 짧은 기록조차 소홀했네요.

날은 무섭게 갔고, 그렇게 보름이 넘었습니다.

어깨앓이가 이제 좀 살만해졌다지요.

오늘은 밀린 글들을 쓰리라 하는 밤입니다.

 

7학년 진현이와 류옥하다는 여행 중입니다.

오늘 거제도를 나흘째 돌았습니다.

제 고교 은사님 거기 사십니다.

선생님이 낮에 전화 주셔서, 혼내셨지요.

“니는 애를 그리 방치하나?”

달날 통화하던 중 끊어진 전화를 여태 잇지 못하고 있다

선생님이 먼저 주신 전화였더랍니다.

선생님 댁에 잘 들어갔다지요.

낼은 새벽 5시 집을 나와 6시의 김해행 버스를 탄다던가요.

 

천산원정대 대장 다정 김규현 선생님이

대원들을 비롯해 사람들한테 두루 물꼬 홈피 살펴보라 지령을 보냈습니다.

힘 실어주기, 뭐 그런 거지요.

당신의 걸음걸음이 늘 놀랍습니다.

젊음은 나이가 아니라 생 자체에 있는 것.

정말 젊으신 선생님.

 

세수조차 꺼려지는 추위,

우리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연탄 갈고 짐승들 밥 주고

그리고 우리 밥 먹었습니다.

“오늘 모임 있지요?”

소사아저씨 말에 그제야 칠판을 보았습니다.

면소재지에서 달마다 한 차례 하는 귀농모임이 있는 저녁입니다.

여러 댁의 혼례 소식도 왔지요.

구성원들이 주로 퇴임하신 분들로

서로 의지처가 되어 농사를 지어가는 과정들이

한참 어린 제가 보기에도 흐뭇하답니다.

나오니 눈 날렸습니다, 영화처럼.

 

서둘러 학교로 돌아옵니다.

선배 한 분 오기로 했지요.

당신의 지지와 지원이 물꼬를 오랜 세월 끌어왔습니다.

그를 기댄 시간이 얼마던지요.

한동안 뜸했던 선배는 최근 경제적으로 어려운 일을 겪으며

이제 어떤 일이 앞에 오더라도 당황하지 않겠더랍니다.

시련은 사람을 그리 단련해내지요.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시련이 고마운 게고.

 

‘아득한 옛날에 나는 떠났다,로 시작하는 시를 읽는 밤.

눈 덮힌 산마을에 보급품을 실어온 선배랑 곡주를 기울이다

어제 미국에서 초콜릿과 함께 온 holly near의 음반을 들었습니다.

술상에 앉았던 이들이 일어나 잠자리로 간 지도 오래,

어느새 거친 바람을 가르고 새벽이 걸어옵니다.

별은 어찌 그리도 총총한지.’

 

선배가 들고 온 영화들을 들여다보며 당장 한 편을 열었지요.

이런! 날밤이 되겠군요.

<the way back>

강제노동수용소를 탈주하여 자유를 찾아 떠나는 이들.

시베리아 강제노동수용소에서 탈출한 일군의 무리의

실제 경험에 바탕을 둔 이야기라지요.

흔히 이런 류의 영화가 그러하듯 충분히 드라마틱하겠지요.

그러나 ‘형벌의 땅을 탈출해 자유를 향해 가는 마초 군상에게 있을 법한 이야기라면’

이 영화랑은 좀 어긋진 말입니다.

폭한의 시베리아와 폭염의 고비사막을 지나 6,500킬로미터를 걷는 그들,

인간은 작고 자연은 거대하지요.

자유를 찾아 떠난 탈주자들의 휴머니즘 드라마가 아닌 영화이기에

‘여긴 여느 탈주영화들과 달리

패악을 부리는 간수, 사디스틱한 교도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추격전이 없’습니다.

캐릭터의 배경이나 성격도 아주 조그맣게 처리되지요.

그리 극적인 사건도 없고, 오직 걷는...

그래서 좋습니다.

한 사람이 쓰러집니다.

“오늘 자유인이 죽었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을 잃고, 그들은 멈추지 않고 계속 걷습니다.

“나는 그냥 끝까지 걸을 거야....”

‘인도에 도착해 터덜터덜 걷는 야누스의 해진 부츠 위로

종전과 함께 찾아온 소련의 사회주의 시행과 철의 장막, 헝가리의 봉기, 베를린 장벽의 설치, 프라하에 대한 소련의 군사 개입, 폴란드의 연대운동,

그리고 사회주의 붕괴와 자유화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담은 뉴스릴 필름이 몽타주’됩니다.

그들이 관통한 것은 대자연이었고 그리고 한편 유럽의 역사였던 거지요.

그래서 감독 피터 위어는 묵직해졌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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