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2.22.물날. 흐리나 바람 단

조회 수 1156 추천 수 0 2012.03.04 22:56:21

 

흐린 하늘,

그래도 밤 별 하나 뿌연 하늘 너머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보이지 않으나 수많은 별이 거기 있는 줄 아다마다요.

잔설 많으나 겨울을 벗어난 산짐승들의 소리도

밤 내내 마을을 내려옵니다.

그리고 아침은 딱따구리 소리로 맞지요.

바람 답니다...

 

오는 주말 빈들모임이 있습니다.

식구 셋 오전에는 따로 일하기로 하고,

오후엔 같이 움직이기로 하지요.

소사아저씨가 바깥을, 아이가 본관을,

그리고 저는 흙집과 가마솥방, 부엌을 맡습니다.

 

앞집 이모할머니가 보이지요.

“점심 같이 해요.”

늘 늦은 점심이어 부르기가 쉽지 않더니

오늘은 우리도 이른 밥상을 먹자 했습니다.

가끔 마을 할머니들과 국수를 말곤 하지요.

“왜 자꾸 오라 캐사? 내사 마 미안해서...”

“아이구, 어쩌다 한번이지...”

“친정에서 더 쉬다 오지 뭐 그리 금방 왔어?

친정서 맛있는 거 많이 가져왔나배... 아이구, 반찬이 왜 이리 많아?”

혼자 무슨 맛이 있으려나,

생각하면 마음 늘 짠하지요.

“술도 한잔 드셔야지?”

두어 배 돌고 제 앞에 놓인 잔을 치웁니다.

“전에는 잘 하더만... 이젠 안 해?”

“전에는 주니 그냥 마셨지...”

경로당에서 혹은 새참을 먹는 논두렁에서 또는 해를 피한 그늘에서

어르신들은 지나는 절 불러 술을 한 잔 주시곤 하였지요.

그런데 그 한 잔이란 것이 소주 반병이랍니다,

한 공기 밥그릇에 부어주시는.

넙죽넙죽 받았더랬는데,

이제 저도 이 산골에서 긴긴 시간을 흘러 보낸 게지요.

나이 든 겝니다요, 하하.

 

오후, 오전 일이 밀려 두어 시간 더 각자의 자리에서 일을 합니다.

빨래도 하지요, 수건도 삶고.

그리고 모두 모여 달골행.

이불이며 베개며 실었지요.

“눈이 다 녹았어요.”

소사아저씨의 전갈을 듣고 차를 가지고 오르는데,

역시나 꼭대기 구비 길에 아직 눈.

아래서는 잘 안보였던 모양입니다.

차를 돌리지도 못하고 그냥 오르자 하는데,

웬걸요, 차가 미끄러지며 휘익 돌 참이지요.

꽁무니를 오른쪽 언덕배기로 틉니다.

왼쪽 도랑이라면 차도 망가지고 사람도 다칠 밖에요.

등골이 오싹!

 

구난 서비스를 요청하고, 머잖아 아저씨 달려왔습니다.

엊그제 배터리 점프에도 오셨던 터이지요.

“우리 이렇게 자주 보면 안 되는 거지요?”

싣고 온 모래주머니를 뿌려주어 겨우 올라설 수 있었고,

다시 돌려 차를 내려주셨더랍니다.

 

돌발상황으로 시간이 또 밀려

아무래도 오늘 청소 끝내기는 어렵겠다 하지요.

아이는 밖에서 꼭대기 굽이길 얼음을 깨고,

소사아저씨는 창고동을(사람이 없는 동안 파리와 날파리들이 채운),

그리고 저는 햇발동을 치웠더랍니다.

이번 빈들에선 밤에 하는 이야기마당을

1층 거실이 아니라 3층 더그매서 하면 어떨까 하지요.

아홉 시가 다 돼 내려와 저녁을 먹었답니다,

내일 오전 잠시 다시 올라 가자 하고.

흙집 욕실의 물때를 미는 동안 아이가 김치찌개를 끓였네요.

 

열다섯 살 류옥하다는 출판서평지에 첫 원고를 송고했습니다.

아이 덕에 씨알 함석헌 선생을 다시 생각하는 시간들이었지요.

아이는 돈이 모든 가치의 우위에 선 이 시대에,

무슨 말을 해도 믿을 수 없는 대통령을 가진 국민에게,

우리가 본받을 어른이 있어 다행이라 했습니다.

 

... “불의에 침묵하는 것은 불의에 동조하는 것이지요.”

... 사람이 살아가는데 정말 중요한 것은 가치관일 것이다. 돈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고, 그래서 부자 되시라는 게 최고의 덕담이 되고, 그만큼 사람의 가치가 땅에 떨어진 것은 결국 우리가 ‘얼’을 잃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얼은 교육을 통해, 어른들의 삶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일 거다. 지금의 정치인들이나 많은 사람들의 모습은 부끄러운 정도다. 그래서 더욱 유영모 선생이나 장일순 선생, 김구 선생, 장준하 선생이 그리운 것이다...

... “어떤 일이든지 단지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피해서는 안 된다. 개인적인 비전이 없을 때 사람은 죽은 거나 마찬가지다”

... 이 책은 내게 큰 전환점이 되어주었다. 나는 학교 교육만 교육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부모님 뜻에 따라 산골에서 일을 하며 홈스쿨링을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제도 학교를 다니지 않는 것으로 인해 앞으로 살아가며 불이익을 당할까 자주 불안하기도 하다. 가끔은 제도교육을 받고 도시에서 직장을 다니는 것이 최선의 삶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나도 이렇게 산 속에서 농사짓고, 제도의 밖에서라도 나에게 집중하며 살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보았다. 그래서 같은 책도 나이에 따라 다른 주기에 읽고 또 읽는 모양이다...

 

; 류옥하다, <함석헌 평전> 서평에서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4722 2006.10. 2.달날. 맑음 옥영경 2006-10-10 1166
4721 2010.12.27.달날. 잠시 풀리는가 싶더니 오후 다시 언다 옥영경 2011-01-03 1165
4720 4월 몽당계자 이튿날, 2010. 4.24.흙날. 맑음 옥영경 2010-05-10 1165
4719 135 계자 나흗날, 2010. 1. 6.물날. 맑음 옥영경 2010-01-11 1165
4718 2008. 3. 4.불날. 흐려지는 하늘 옥영경 2008-03-23 1165
4717 3월 5일 흙날 눈 날리다 옥영경 2005-03-06 1165
4716 150 계자 사흗날, 2012. 1.10.불날. 갬 옥영경 2012-01-18 1164
4715 2011. 8.13.흙날. 맑음 / 147 계자 미리모임 옥영경 2011-08-30 1164
4714 2008.10.22.물날. 비 옥영경 2008-11-02 1164
4713 2007. 3. 7.물날. 마른 눈발 날리는 아침 옥영경 2007-03-21 1164
4712 2006.5.10.물날. 비 옥영경 2006-05-11 1164
4711 2006.4.24.달날. 황사 옥영경 2006-05-09 1164
4710 2005.12.31.흙날.맑음 / 잊고 있었던 두 가지 옥영경 2006-01-02 1164
4709 2월 16일 물날, 새 홈페이지 막바지 논의 옥영경 2005-02-26 1164
4708 154 계자 이튿날, 2013. 1. 7.달날. 맑음 옥영경 2013-01-11 1163
4707 2012. 2. 7.불날. 다시 한파 옥영경 2012-02-21 1163
4706 2008. 3.22.흙날. 맑음 옥영경 2008-04-06 1163
4705 2007. 4. 1.해날. 앞을 가리는 황사 옥영경 2007-04-16 1163
4704 2007. 2. 3.흙날. 맑음 옥영경 2007-02-08 1163
4703 2007. 1.15.달날. 맑음 옥영경 2007-01-19 1163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