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세 시 넘어 되도록 아무 일 없던 하늘이었더랍니다.

그런데, 새하얀 아침!

어쩌면 그토록 조용히도 왔더랍니까.

제법 두텁게 봄눈이 내려앉은 새벽이었지요.

아침 절엔 눈 하나둘 날리기도 하였고,

종일 흐린 하늘.

 

그래도 봄.

봄소식이 닭장에서부터 왔습니다.

겨우내 소식 없던 달걀이 봄 선물로 여섯 알 와 있었지요.

어찌나 굵은지.

 

창고동에 모여 절명상 백배로 해건지기를 하는 동안

하다와 가람이가 눈을 쓸었습니다.

그래도 차 끌고 내려오며 어깨 뻐근했지요.

 

콩나물 국밥을 준비하는 아침,

성원샘과 루다가 와서 도왔습니다.

소사아저씨, 뒤란에선 불을 때고

온수통에 얼어있던 물 비로소 녹아

모둠방이 데워지기 시작하고.

 

느릿느릿한 오전입니다.

이곳의 흐름대로 살다가는 빈들모임,

이런 흐린 날이면 우린 느린 소들이 된답니다.

아침을 먹고 성원샘과 루다가 떠나고,

그 자리로 낮버스를 타고 기락샘 들어옵니다.

 

사람들이 패를 나눠 일을 시작했지요.

밖에선 연탄재를 옮기고 깨고,

대문 현판을 안전하게 고정하기 위해 구덩이를 파고

(거기 시멘트를 붓고 철사로 고정을 할 것입니다),

안에선 가래떡을 썰고 사과잼을 만들었지요.

 

늦은 아침이었다더라도 건너가긴 아쉬운 낮밥,

가래떡을 굽고 모과차를 달여냅니다.

그리고 단호박죽도 냈지요.

마지막 호박 껍질을 류옥하다가 벗겨 얼려두었던 것이랍니다.

“잼이랑 빵도 먹으면 안돼요?”

“그래, 먹자.”

낼 간단한 낮밥을 위한 빵이었지만 먹기로 합니다.

잼은 다양한 크기의 병에 담았습니다.

식구 수대로 실어갈 것이지요.

 

이규옥님과 임희자님 들어섭니다,

고구마를 집채 만한 상자에 싣고.

이번에 남해행을 기찬샘네랑 함께 할 것이라

영동을 들렀다 가나마다 고민하던 참에

이소령님 문자가 닿았더라지요.

“안 오면 정말 후회해요!”

오래 함께 수행한 도반들로 그 명성(?)을 들어왔던 분들이랍니다.

만나 반가웠지요.

 

5시, 모둠방에서 초빙강사가 진행하는 레크레이션이 있었습니다.

“딱 30분만!”

인건이한테 한 부탁이었지요.

어르신들은 이럴 때 그런 표현 쓰시지요, 아주 물건이군, 하고.

여러 가지 단체활동으로 본 것도 많은 데다 신명도 많은 친구여

우리를 아주 즐겁게 하겠구나 했던 겁니다.

‘어른들 좋으라’고 10분 준비한 아이들의 노래 공연부터 있었네요,

좋아하는 온갖 음식들이 다 등장하는.

손잡고 일어나기, 무릎으로 앉기, 톰과 제리 같은 놀이들이 이어지고,

참 많이도 웃었더랍니다.

물꼬, 공부 말고도 누구나 자기 재능을 발현하는 곳!

오늘의 주인공이 바로 인건이었답니다.

 

저녁 먹고 다시 달골 오릅니다.

영서는 종일 아주 밥바라지 도움꾼이었습니다.

워낙에 참하고, 곧잘 했지요.

언제 계자에서 밥바라지 보조로 쓰면

새끼일꾼들에게 좋은 보기가 되겠습디다.

춤명상.

기락샘이 난로를 피웠고, 거기 고구마 넣었습니다.

고구마가 익어가는 동안 춤을 추었지요.

봄을 노래하고 우리들의 한해를 기원하는 춤들,

그리고 시작을 위한 마음을 담은.

 

더그매서 ‘실타래’가 이어졌습니다.

오늘은 무엇을 주제로 할까 물었지요.

세훈이와 류옥하다의 제안이 받아들여졌고,

우리는 모두 자기 마음들을 열고 풀었습니다.

그리고 응원하고 지지하고 격려하고 도왔지요.

그리고 노래.

아, 어린이집 아이에서부터 낼모레 육십 어른까지 함께 부르는 노래,

노래들...

 

자정, 아이들은 별방에 다 모였고,

어른들은 더그매에 남아 곡주 한 잔.

우리 삶을 어떻게 세울까,

아이들을 어떻게 도울까 하는 이야기들이 꼬리를 물었더랍니다.

선한 사람들이 만든 선한 기운이 자연의 좋은 기운과 어우러져

모다 감싸준 봄밤이었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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