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자유롭다. 자 봐라, 꽃 피고 싶은 놈 꽃 피고, 잎 달고 반짝이고 싶은 놈은 반짝이고, 아지랑이고 싶은 놈은 아지랑이가 되었다. 봄이 자유가 아니라면 꽃 피는 지옥이라고 하자. 그래 봄은 지옥이다. 이름이 지옥이라고 해서 필 꽃이 안 피고, 반짝일 게 안 반짝이든가. 내 말이 옳으면 자, 자유다 마음대로 뛰어라.

 

; 오규원의 ‘봄’ 가운데

 

 

달골 창고동에서 대배 백배로 여는 해건지기.

이렇게 시작할 수 있어 고마운 아침.

소사아저씨는 공기 차다며

오늘도 학교 뒤란에서 불을 때고 계셨지요.

 

느지막한 아침.

봄 길을 떠날 수 없겠기

개울에서 버들강아지 꺾어와 가마솥방에 들였습니다.

앉은 사람들도 버들강아지처럼 반짝입니다.

 

“장작 패야지요?”

여긴 언제나 남정네만 보이면 장작타령을 해둡니다.

그러면 가기 전 잊지 않고 챙기는 분 꼭 계시지요.

규옥샘과 기찬샘이 나섰습니다.

아이들도 모다 따라 나가고,

여자 어른들은 그제야 아침 설거지를 했지요.

 

“‘당장’ 모이기!”

버스는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으므로.

갈무리를 합니다.

서로 지낸 마음을 나누고, 그것을 글로 옮깁니다.

그 사이 그냥 가면 섭섭하겠기 가벼운 낮밥을 마련하지요.

고구마를 찌고, 수프를 끓이고, 삶은 달걀과 과일을 내고...

 

아이들이 낮 버스에 오르고,

기찬샘네 규옥샘네랑 같이 배웅합니다.

함께 들어와 후다닥 설거지하고 남해행.

두 가족은 젊은 시절부터 아주 가까운 직장동료이고 이웃이었다지요.

그리고 함께 수행하는 도반.

신통한 스님 한 분 계셔서 찾아가는 길,

따라나서기로 일찍이 약조했더랍니다.

 

남해 한 암자의 스님 앞.

한 사람씩 묻고 싶은 걸 여쭙기도 하지요.

저부터 말해보라네요.

“뭐가 있지...”

“있긴 뭐가 있어. 이 보살님은 걱정할 게 하나도 없네.”“하하하, 그러게요.”

“봐, 문제가 생기면 저렇게 웃고 지나간다니까, 사람이 긍정적이어.”

그런가 했습지요.

 

희자샘과 소령샘과 나란히 공양간 설거지를 하니

뒤에서 공양주 보살님,

동서들인 줄 알았다던가요.

그런 느낌도 참 좋았습니다,

이적지 다른 가족들과 그렇게 다녀본 적 없어.

빈들모임을 같이 하며 퍽도 가까워졌습니다,

무엇보다 같이 수행하는 도반들이어 더욱 그랬을 것,

굳이 같은 종교 안이 아니어도.

 

대해리는 밤 기온이 또 툭 내려가더라 합니다.

흐려서 지난 이틀 보지 못했던 별을

여기 남해 와서 봅니다려.

암자의 봄밤은 깊기도 깊었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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