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2.27.달날. 맑음

조회 수 1112 추천 수 0 2012.03.07 01:55:42

 

 

 

새벽, 대해리는 찬바람이 셌다 합니다,

가마솥방 안도 찬 공기 많이 돌았다고.

그래도 간장집 앞마당에 풀 옴싹옴싹 올랐다지요.

오후로 가며 날은 따숩고

봄기운 한지에 퍼지는 먹처럼 번져가더랍니다.

마을 사람들이 포도나무 가지를 치기 시작했다지요.

 

남해에서 새벽을 맞습니다.

어제 빈들모임을 마치자마자

규옥샘네와 기찬샘네 가정이 방문하는 한 암자에 동행한 길입니다.

4시 아침예불을 올리지요.

종교인 아니어도 의식을 명징하게 하는 목탁소리...

대중스님이 계신 곳이라면

도량석-종송-예불문-축원-반야심경을 차례로 한다는 것은 들은 바 있으되

어떤 소리가 어떤 소리인지는 모를 밖에요.

그래도 오직 엎드린 한 인간의 간구가 마음을 일렁였더이다.

 

아침 공양 뒤 스님은 류옥하다더러 너는 스님 되어야겠다셨습니다.

“밥이 맛있어요. 뭐 나중에 날마다 먹을 건데...”

류옥하다도 넙죽넙죽 말을 받습니다.

그러더니 약속을 하자는 스님 새끼손가락을,

자기는 세상에서 할 일이 많다며 뭐 잠깐 망설이는가 싶더니

덜컥 손가락을 거는 겁니다.

“야아, 너 그렇게 약속해도 돼?”

“당장은 지식적인 공부도 해야 하고 세상 공부도 해야겠지만,

나중에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서...”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는 의사가 되면 좋겠다,

집안에서 성직자 하나 나오는 것도 큰 복이려니 싶더니

이런 일도 다 있습디다려.

 

“물꼬를 남해로 옮겨보는 건 어떠신지...”

스님이 이사를 권하십니다.

진지하게 말이지요.

그러며 절의 너른 터들을 보여주셨습니다,

내 땅처럼 쓸 수 있다시며.

따뜻한 남쪽이라 딱 좋건만,

혹독한 겨울 끝이라 당장 가고픈 마음 없잖았으나,

역시 사람들의 접근거리가 문제이지요.

 

나오는 길에 머잖은 해라우지 홍현마을을 들립니다,

석방렴(석전, 석제)이 있는.

주로 경상도·전라도 연안에서

만입한 간석지의 경사가 약간 급한 곳을 골라 둥그스름하게 돌담을 쌓고

멸치·고등어·새우·전어 및 기타 작은 잡어를 잡았다 합니다.

밀물 때에 돌담 안으로 조수와 함께 고기들이 들어오면,

썰물 때에 돌담의 밑 부분에 구멍을 뚫고 밀어 넣어두었던 통발을 들어냈다지요.

또 다르게는 석방렴 안의 조수가 절반 이상 줄었을 때

그 속에 갇힌 고기를 자루가 달린 그물로 떠올렸다네요.

사람들은 어떻게든 자신의 삶터에서 삶의 길을 찾아냅니다.

우리, 어떻게든, 이 세상을 건너갈 수 있단 말 아닐지요.

 

하다는 인건이네를 따라 포항으로 떠나고(이삼일 일정이 될 거라나요),

얼마 전엔 진현이랑 한 주 길을 떠나기도 하더니,

이 겨울이 참말 바쁩니다요.

통영으로 가는 규옥샘네 차에 올라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내려

대전 가는 버스에 오르고,

그리고 선배 하나가 대해리까지 실어다주어 무사귀환.

 

낼모레 29일 선배들이, 물꼬의 논두렁들이기도 한,

북콘서트에서 만나기로 하였는데,

그만 무산 위기였습니다.

모임을 주도한 선배네가 스위스와 함께 하는 정부 사업에 문제가 생긴 모양.

하여 다음에들 보자 하는데,

상찬샘이 천산원정길을 위해 장비를 좀 챙겨온다셨기

다녀오기로 합니다.

 

남해의 봄은 마늘밭 사이를 휘돌며 옵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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