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3. 5.달날. 경칩에 종일 비

조회 수 1222 추천 수 0 2012.04.06 12:16:27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오는 봄은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 썩은 물 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 /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오고야 맙니다.(이성부의 ‘봄’에서)

그리하여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고 외치는

‘너, 먼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봄은 오고 시인은 닷새 전 다음 세상으로 건너가셨더랍니다...

 

비가 얼마나 내리는지 푹푹 빠지는 마당입니다,

빠지는 물이 내리는 비를 감당치 못하고.

 

달골 화분들에 충분히 물을 줍니다.

공간마다 비어있을 시간을 서서히 생각합니다.

낼모레 천산원정길에 오르면 달포 가까이 학교를 비우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야 있지만

제가 하던 일들은 거의 멈춰 있을 테지요.

 

선물로 1000원 지폐를 준비합니다.

다른 나라 여행길에 오르면 만날 이들을 위해 작은 선물을 마련합니다.

인사동에서 구한 탈 배지(이게 참.. 뺏지, 라고 써야 의미가 전달될 것 같은)이거나,

태극기 배지나 탈 목걸이, 혹은 전통문양 엽서이기도 했는데,

이번엔 그리 생각한 것이지요,

나름 재미있을 듯도 하고,

그 돈의 가치로 구할 물건이 그 돈 가치만큼이지 못할 것도 같아.

 

장을 보고 옵니다,

식구들 먹을 밑반찬을 준비하기 위해서도,

여행에 필요한 물품 몇을 사기 위해서도.

계속 더 필요한 시멘트를 못 사고 있더니

오늘 대전에서 침을 맡고 오며 그예 사기도 합니다.

 

아이는 새벽 2시가 넘어서야 잠자리로 갔습니다.

내일부터 6시 20분 차를 타고 읍내 나갈 그는

결국 자신의 일정을 포기하고 어미 보내는 일에 집중키로 했지요.

“차를 가지고 나가셔요.”

그러기로 합니다.

아이는 자주 어미보다 현명합니다.

버스를 타고 나가자면 시간에 대느라 준비가 좀 벅차겠다 싶더니

여유가 생겼습니다.

역 주변에 주차해 두면

오는 흙날 아이가 열쇠를 가지고 나가 기락샘과 만나 차를 가지고 들어온다는 거지요.

 

‘삶의 온도가 빙점 이하로 내려갔을 때, 그렇게 동양으로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후지와라 신야의 동양기행 2>를 들고 있습니다.

천산원정길과 겹쳐지는 어느 대목을 읽을 수도 있겠다고 잡은 책에서

한국편을 먼저 펼쳐들었네요.

‘화를 내면서 우는 것처럼 들리는’ 판소리와

청량리 뒷골목과 뱀집과 돼지머리와 김 오르는 시장과 그리고 핏빛...

1982년에 쓰인 것, 2008년 번역,

그러니까 광주가 훑어지나간 80년대 초입의 남한 풍경이지요.

우리 살이가 이런 풍광이구나 싶어 마음 끈적거렸더이다.

한편 이이의 글들에 신뢰가 가고,

다른 한편 개인의 경험이 갖는 한계에 대해 잠시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건넌 80년대의 터널이 자꾸 덮쳐왔지요.

 

천연색 사회과부도, 대륙의 중앙 하단에 누렇게 있던 부분들,

언젠가 그곳을 가리라 했습니다.

말 없는, 그것도 표정 있는 사진도 아닌 지도 한 장이

그토록 오랫동안 옷자락을 끌기도 합니다.

낼모레 천산원정대라는 이름으로 마침내 거기 이릅니다.

제 여행서의 첫 구절은 무엇으로 시작하게 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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