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미는 부엌 곳간 먼지를 털고 바깥 해우소를 치워내기 시작하고,

아이는 메주들을 내려 솔질해서 바구니에 넙니다.

낼모레 장을 담으려지요.

정월 그믐 전에 해야는 일이나 윤삼월 있다고 이제 합니다.

달포의 여행 끝자락 따라오던 꼬리를 자르고 일상으로 무사진입!

소사아저씨는 달날까지 봄나들이 중.

 

“지금 내려가고 있어요.”

음성을 지난다며 온 전화.

“5시 반쯤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지난 쇠날 금산에서 인연을 맺은 소병선님, 이성순님이 방문합니다.

이제 일상이 좀 돌아가는가 싶더니, 아직 하룻밤 더 놀아라네요.

카라반을 달고 주말이면 사진을 찍으러 다니시는 분들.

금산에서의 밤에 차려준 저녁밥상이 얼마나 고맙던지요.

다음 날 그곳의 너저분한 살림이 자꾸 보여서

팔 걷어 부치고 사람들 몰아가며 한바탕 행사 준비를 하였더랬는데,

마음을 내서 같이 움직여준 당신들입니다.

“옥선생님, 혹시 학교 선생님 아니예요?”

잘 시켜먹어서 그러셨을라나요.

나이 스물에 만나 예순을 바라보며 이적지 알콩달콩한 분들 보며

보기 참 좋았습니다.

“그러면 어른들 얘기 나누시라고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아니야...”

저녁을 먹고 잠시 앉았던 아이가 나가려는데

두 분은 그 아이도 붙잡아 앉혀 얘기를 이어갑니다.

아이는 손님이 사들고 오신 참외를 얌전히 깎아냅니다.

"어머!"

예쁘게 깎아 가지런히 썰어놓은 참외 위로

양쪽 자른 꼭지를 꽃처럼 얹었는데,

"어떻게 이런 생각을 다 했을까..."

어른들의 감탄이 한참을 이어졌더라지요.

시간은 어느새 자정도 넘고...

어미는 피아노를 치고 아이는 플롯을 불며

같이 노래도 하는 밤입니다.

아이 나이 열다섯, 퍽 많이 컸습니다.

적절한 수위를 조절하며 같이 잘도 놉니다.

노래 하라니 또 그 말을 받아 무대로 가기도 하고,

제가(저가) 다루는 악기로 공연도 하고,

같이 정치도 논하고 삶을 나누고...

적절한 농담들도 잘도 합니다.

“저런 줄 저도 몰랐네요.”

아이 잘 키웠단 소리도 소리지만

그의 단점들을 누구보다 많이 알고 있는 제 눈에도

그 아이 훌쩍 자라있었습니다.

“야아, 하다야, 너 참 멋지더라. 잘 크고 있다 싶더라.”

저도(자기도) 부딪히고 욕먹고 해가며 나아진 것이라나요...

 

제주도에 간 벗의 문자도 이 밤에 계속 대해리로 날아듭니다.

양쪽에서 경쟁하듯 곡주와 함께 봄날을 노래하지요.

- 여기 비와요, 비님이 와요.

제주도로 벗들이 몇 갔습니다.

정작 소식 보내고픈 이에겐 결국 문자 한 줄 못 챙기고 아스라한데,

그 자리를 다른 벗이 채워줍니다.

늘 비껴가는 생...

정작 대면해야할 사람, 직면해야할 진실을 마주할 용기는 갖지 못하고.

우리는, 혹은 나는, 자주 그렇게 비겁합니다.

- 밤새 내리는 빗소리 듣느라 잠도 설치고 이제사 파도소리로 바뀌고 있구만

  중계까지 원하시니 야속한 님이시여...

사진도 함께 날아들지요.

서까래 사진.

- 밤새 숙소 지붕을 받치고 있는 서까래 아래에서 숫자 세다 잠이 그만

고목사진도 옵니다.

- 흐린 하늘과 고목의 상관관계

- 보이지 않는 한라산을 향해 가지 뻗은 나무들

도 담겨옵니다.

- 흑돼지 오겹살로 저녁겸 한 잔 중

 

섬에선 그리 봄날이 바다에 뛰어들고

산골 속에선 또 그리 봄날이 저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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