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4.15.해날. 맑음

조회 수 1260 추천 수 0 2012.04.23 00:08:30

 

 

오늘은 장작불 피워 가마솥에 젓국을 달였습니다.

보리가 누렇게 익을 때 멸치젓을 담아 겨울 들머리 김장을 하고

거기서 남은 것들을 더 삭혔다가 이맘 때 하는 일이어요.

이리 만든 멸간장은 한 해 내내 요긴하지요.

미역국도 끓여먹고 온갖 나물무침에도 넣고.

 

그런데 이런 장들은 정말 시기가 있습니다.

멸간장을 소쿠리에 천 깔고 받쳐 내리고 있으니

벌써 파리들이 어찌 알고들 몰려드는 겁니다.

그렇더라도 아직 알을 날 때가 아니니,

딱 지금이 젓국을 달여 낼 때인 거지요.

 

장독대 항아리들 사이로 쌓인 낙엽들을 긁어냅니다.

계절이 그리 다녀갔습니다.

항아리에 쌓인 시간들도 닦아내지요.

우리 어머니들 날마다 하셨을 일을

계절마다 겨우 하고 있는 꼴이려니...

 

아이는 부엌 뒤란 바깥 냉장고 앞에서 낑낑대고 있습니다.

문 네 개짜리 영업용 냉장고,

구석구석 묵은 먼지를 닦아냈던 냉장고를 이틀째 거풍 중.

그 바닥 틈새 실리콘이 시원찮기 다 벗겨내 놨더니

아이는 오늘 거기 실리콘을 쏘고 있었습니다.

 

마침 멀리 남도의 어머니 오십니다.

늘 그렇듯 바리바리 싸서 들고 오신 가방 안에는

딸 좋아하는 풋마늘 김치며 외손주 좋아하는 무말랭이무침이며

부추김치 파김치 쑥버무리 엿기름... 들이 들었습니다.

어머니 캐신 쑥을 넣고 시래기랑 된장국을 끓여내지요.

 

내일은 된장을 담글라지요.

엄밀하게 말하면 씻어 말린 메주를 소금물 풀어 넣는 겁니다.

그걸 40여일 뒤 가르면

덩어리는 된장 되고 물은 간장으로 익어갈 게구요.

해마다 정월 그믐께 하던 일이 더뎌졌는데,

천산 일정으로 밀린 일이기도 했지만,

마침 윤삼월 있어 늦은 일은 또 아니지요.

 

올해도 두릅꽃이 피었다는,

홍천강에서 온 봄소식을 듣습니다.

얼마 전, 부탁한 일 제 때 하지 않았다고 한 밤중 자는 잠에 날벼락 내린 어르신,

며칠 지나지 않아 사과 문자 보내오셨던 결 여린 마음.

이어 닿은 꽃소식이었습니다.

드는 마음들을 제 때 제 때 전하고도 살아야겠다,

너무 늦지 않게 인사하고 살아야지,

오늘은 또 그런 가르침을 전해주고 계셨습니다.

 

봄입니다,

물꼬는 살구꽃 흐드러지고 있습니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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