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아침, 장순이가 그의 집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고개를 드니 교문을 나가다 돌아보았지요.
그가 아니라도 늘 우린 그리 ‘가고’ 싶어할 겝니다.
그러다 돌아보겠지요,
그러다 돌아오겠지요, 마음을 비끄러매고.
소사아저씨가 도랑을 칩니다.
아이도 거듭니다.
미적거리던 비는 장대비로 변했습니다.
기락샘 오고, 오늘 우리들의 얘기는 시에 이르렀습니다.
한때 아내는 시를 썼고, 남편은 그 시를 읽었더랬지요.
남편은 시를 쓰지는 않았어도 많이 읽던 젊은 날이 있었습니다.
아내는 요새 다시 시를 좀 쓰고 싶어 하지요,
그간엔 삶이 시이려니, 삶이 수행이려니 하다가.
“나는 모더니즘 계열 별로야. 김혜순 오규원 시도...”
“랭보도 싫겠구나. <지옥에서 보낸 한철>, 멋있잖아.”
이야기는 시 읽기에서 시 쓰기로 옮아갑니다.
“내가 왜 모더니즘이 좋은지 알아?
열심히 살아야한다 강요하지 않으니까.
우리 마음이 지치고 피곤한데 그걸 잘 드러내줘서.”
“나는 여전히 고전적인 결이 좋아.
근데, 나는 왜 그런 시가 좋지?”
“사람이 좀 고전적으로 살잖아.
여보, 자기가 왜 시가 안 되는 지 알아?
자기는 열심히 살아야한다는 생각이 강하니까.”
열심히 살아야한다는 생각이 강하니까 그리 살고 그리 사니 시가 안 된다?
그러면 시가 아니 되어도 무어라 못할 일이겠습니다.
비가 많이 내린다 했고,
대전에서 벌이기로 했던 춤명상 워크샵이
급히 다음으로 미뤄졌습니다.
덕분에 어제 화순에서 온 시집을 펼쳤지요.
자서自序
나는 우선 여기에 당신의 목소리를 멀리서도 알아
차리는 내 귀의 엄연한 위치와 그것의 운명에 대하여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로 하고,
또 그걸 애써 받아 적고는 하였던 오래된 습벽을 시
라고 호명하기로 한다.
-이 시집의 첫 페이지 한 장부터를 기꺼이 당신
의 눈꺼풀과 ‘마음의 흔적’ 위에 드리워주기로 하자.
시집을 덮으며 문자 넣었지요,
시샘 날 정도로 시를 잘 쓰네, 어찌 쓰면 이리 쓰냐는.
시인이 대답했습니다.
“혼자 디지게 쓰면 돼요.”
혼자, 디지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