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4.21.흙날. 장대비

조회 수 1141 추천 수 0 2012.04.30 15:06:24

 

 

 

새벽부터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아침, 장순이가 그의 집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고개를 드니 교문을 나가다 돌아보았지요.

그가 아니라도 늘 우린 그리 ‘가고’ 싶어할 겝니다.

그러다 돌아보겠지요,

그러다 돌아오겠지요, 마음을 비끄러매고.

 

소사아저씨가 도랑을 칩니다.

아이도 거듭니다.

미적거리던 비는 장대비로 변했습니다.

 

기락샘 오고, 오늘 우리들의 얘기는 시에 이르렀습니다.

한때 아내는 시를 썼고, 남편은 그 시를 읽었더랬지요.

남편은 시를 쓰지는 않았어도 많이 읽던 젊은 날이 있었습니다.

아내는 요새 다시 시를 좀 쓰고 싶어 하지요,

그간엔 삶이 시이려니, 삶이 수행이려니 하다가.

“나는 모더니즘 계열 별로야. 김혜순 오규원 시도...”

“랭보도 싫겠구나. <지옥에서 보낸 한철>, 멋있잖아.”

이야기는 시 읽기에서 시 쓰기로 옮아갑니다.

“내가 왜 모더니즘이 좋은지 알아?

 열심히 살아야한다 강요하지 않으니까.

 우리 마음이 지치고 피곤한데 그걸 잘 드러내줘서.”

“나는 여전히 고전적인 결이 좋아.

 근데, 나는 왜 그런 시가 좋지?”

“사람이 좀 고전적으로 살잖아.

 여보, 자기가 왜 시가 안 되는 지 알아?

 자기는 열심히 살아야한다는 생각이 강하니까.”

열심히 살아야한다는 생각이 강하니까 그리 살고 그리 사니 시가 안 된다?

그러면 시가 아니 되어도 무어라 못할 일이겠습니다.

 

비가 많이 내린다 했고,

대전에서 벌이기로 했던 춤명상 워크샵이

급히 다음으로 미뤄졌습니다.

덕분에 어제 화순에서 온 시집을 펼쳤지요.

 

자서自序

 

나는 우선 여기에 당신의 목소리를 멀리서도 알아

차리는 내 귀의 엄연한 위치와 그것의 운명에 대하여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로 하고,

 

또 그걸 애써 받아 적고는 하였던 오래된 습벽을 시

라고 호명하기로 한다.

 

-이 시집의 첫 페이지 한 장부터를 기꺼이 당신

의 눈꺼풀과 ‘마음의 흔적’ 위에 드리워주기로 하자.

 

시집을 덮으며 문자 넣었지요,

시샘 날 정도로 시를 잘 쓰네, 어찌 쓰면 이리 쓰냐는.

시인이 대답했습니다.

“혼자 디지게 쓰면 돼요.”

혼자, 디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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