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4.24.불날. 초여름 같은

조회 수 1122 추천 수 0 2012.04.30 15:10:58

 

 

 

봄은 노란신호등처럼 잠시 깜빡거리다 가는가 보다,

며칠 전 선배의 문자를 받았더랬습니다.

초여름에 이른 듯한 날씨.

수수꽃다리도 자두꽃과 앵두꽃도 활짝 폈습니다,

활짝, 정말 화알짝.

마당에서 가장 늦게 벙그는 자목련도 봉오리 다 올랐지요.

딸기꽃까지도 펴버렸습니다.

저녁답에는 논개구리들이 어찌나 재잘대던지요.

 

지리산에서 사진과 함께 온 편지 하나 읽습니다,

꼭 물꼬에 보낸 것이 아니라 두루 보낸.

정리 되지 않은 밭을 보고 엄두를 못 내는데 냉이꽃만 무성하고,

하루하루가 그렇답니다.

잡은 일은 또 날이 밀리고 예정한 일과 보다는 돌발 변수가 난무하는데

그런 일이 또 한두 가지가 아니라지요.

그걸 처리하고 나면 하루가 다 간답니다.

참 더할 말이 없습니다.

아, 거기도 그렇군요, 여기도 그러해요, 딱 그거지요.

그래도 이 해는 학기 중 평일에 교육 일정이 없는데다

농사를 줄여놓으니 한결 수월한데

그래도 참 일 많은 산골이고 낡은 학교이지요,

운동장 몇 번 왔다 갔다 하면 하루해가 지는.

 

양양에서 새벽을 가르고 옵니다.

참 멀어요.

어리연꽃과 수련을 여느 해처럼 또 실어왔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챙겨주신 용돈도 아이가 받아오지요.

건미역도 잔뜩 실려 옵니다.

“거긴 식구가 많으니...”

무운샘은 정말 내년에 제가 들어갈 토굴집 하나 지을 계획을

밤새 세우셨던가 봅니다,

오래 방에 불이 꺼지지 않고 있더니

일정을 잡아 내미셨지요.

일은 또 그리 돌아갈 모양입니다.

 

5월 빈들모임 건으로 주욱샘으로부터 늦은 시간 연락입니다,

교수들 공부모임에 참석하셨던 사범대 학장님이

사대 차원에서의 지원의사를 막 밝히셨다고.

사대 학생 20여명 신청을 받아 물꼬 봄단장을 하고,

그들에게 특강을 하는 시간 갖기로 하지요.

마음이 얇고 얕은 저는 쉬 우쭐하고 쉬 절망합니다.

쉬 넘치고 쉬 모자라지요.

자주 쓰러지고, 다시 그런 절 살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살아야지, 하고 일어서게 하는 이들.

‘근원적으로 우울하고 비관적인 나는 자주 죽고 싶고’라는 표현이

그저 우울한 한 영혼의 내밀한 고백까지라고 말할 것도 없이

제 마음에도 자주 또아리를 틀고 있는 걸 보고는 하지요.

전화를 끊으며,

오늘 제게 살아라, 살아라 하는 두 벗에게 홀로 속삭입니다.

‘그대들은 모를 것이다, 내 절망의 오늘을 그대들이 어떻게 건져주었는가를.

주욱샘, 고마워, 선정샘, 고마워.’

 

오늘 들어온 메일 하나,

어르신 한 분으로부터 꾸지람을 들었습니다.

낯이 뜨겁고 다리가 후덜거리고...

그것은 오늘 아이에게도 좋은 공부거리가 되었지요.

“얘야, 이 나이에 이르러도 나도 실수를 하고,

심지어 그것을 반복하기까지 한단다, 어른들한테 야단도 맞고,

(생이)그런 거다.

그러니 우쭐대지도 말며

너무 좌절하지도 말아라.

그러면서 우리 영혼을 세워가는 거다.”

 

아이는 오늘 남해의 한 암자로 전화를 넣습니다.

언제 공구도 다루고 공부도 하자던 스님의 제안을 새기더니,

(지난 겨울 끄트머리 거기 주지스님,

차비까지 쥐어주며 아이더러 꼭 절집으로 오라셨더랬지요),

한 주를 보내기로 했다데요.

몽당계자 마치고 아이들 역에 데려다주면서 대전으로 넘어가 남해로 가서는

5월 5일 선영샘 혼례식이 있는 군산에서 어미를 만나기로 한다나요.

뭐 그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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