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4.27.쇠날. 맑음

조회 수 1028 추천 수 0 2012.05.12 02:35:09

 

 

대배와 호흡으로 여는 아침.

마늘밭 둑에 옥수수밭을 만들고,

부엌 청소와 해우소 청소.

 

봄 몽당계자 여는 날.

아마도 몽당계자는 이 봄이 마지막이 될 듯합니다.

사연 많았던 몽당계자입니다.

그간 모이는 아이들 중심으로 무슨 계모임처럼 했던 몽당이었습니다.

간절히 모이고 싶었던 아이들에게 잠시 만들어준 판이었지요.

주축이던 그 아이들 이제 8학년이 되었고,

더는 몽당계자가 학기 가운데 쉽지 않을 게다 싶었습니다.

갈수록 심화되는 학력의 바다에서

더구나 이제 주 닷새 학교를 가니 쇠날 하루 빼기가 여간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하여 공식적인 공지까지는 않았지만

이 봄이 물꼬의 마지막 몽당이 되겠다 했고,

앞으로는 그 자리에 빈들모임 들어가지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밥바라지를 했던 가정 중심으로 가벼운 모임을 하면 어떻겠나 하고

연락들이 오갔으나 무산되었지요.

그 다음, 몇 아이들을 초대하게 되었습니다.

준우가 오지 못할 사정이 생겼고,

무량이 무겸이가 갑자기 이삿날이 이번 주말로 잡혀

셋째를 뱃속에 가진 어머니가 감기까지 심하여 결국 접고,

그리고 음성의 한나는 태국으로 떠났고,

덕소의 성빈이도 어찌어찌 하여 여름계자에 합류하기로 했습니다.

한 아이가 전화로 신청은 하였으나

마감날인 오늘 자정까지 아직 메일이 들어오진 않아 오지 않는구나 생각키로 했고,

하여 민혁이와 승훈이, 그리고 류옥하다만이 함께 하게 되었지요.

결국 아이 셋과 어른 넷, 달랑 일곱이 보내는 소소한 봄날 사흘이 되었답니다.

 

점심 버스를 타고 아이들이 왔습니다.

시골버스를 타고 오는데 풍경 좋기도 하고 재밌었으나

잘 내릴지 자꾸 걱정이더라나요.

버스 아저씨께 여쭈니 한 할머니를 따라 내리라더랍니다.

마을에 들어오던 쌍둥이집 할머니였지요.

어찌나 잘 커서들 왔던지요.

“자연 안에서 잘 쉬고,

 몸집 마음집을 위해 수행하고,

 이 봄날을 잘 누리려합니다.”

전체 안내가 있었고 속틀을 의논한 뒤

점심 밥상을 준비했습니다.

아이들은 꾸덕꾸덕 마른 가래떡을 한 바구니 다 썰었지요.

점심을 먹은 아이들은 마당에서 배드민턴을 치며 봄 마당놀이를 시작했더랍니다.

류옥하다가 어느새 새끼일꾼입니다.

오랫동안 봐 왔던 훌륭한 선배들의 덕으로

딱 그 역할을 잘 해내고 있었지요.

‘나는 아이들과 함께 있어야 해, 비로소 건강하게 살아져’,

마당을 내다보며 그런 생각을 하였더랬고.

 

‘조는 봄’.

조는 봄을 깨우는 오후였습니다.

마당 봄꽃들을 구경하고,

바위취를 캐 달골에 올랐습니다.

마침 아이들이 모종삽까지 가방에 넣어왔더랬지요.

달골 마당 그늘진 곳들 풀을 뽑고,

거기 바위취도 놓고 잔디 떼다가 몇 곳 옮겨다도 심었습니다.

“이건 제게 잘 안 맞는 것 같애요.”

혁이는 자주 하던 일을 옮겨가며 제 일을 하고

훈이는 형아를 따라 한 가지 일을 붙들고 있었더랍니다.

 

내려오다 계곡에 들었지요.

초여름 날씨였습니다.

아이들은 신발을 벗고 양말을 벗어던져두고

허물처럼 바지도 벗어 널었습니다,

‘개나리 노란 꽃그늘 아래 가지런히 놓여있는 꼬까신’처럼.

‘아기는 살짝 신 벗어놓고 맨발로 한들한들 나들이 가’고

아이들은 그리 계곡에 들었더랬지요,

올갱이를 잡겠다던 대야의 바닥을 그예 깨고.

 

계곡에서 돌아온 아이들은 저녁밥상에 잠옷 차림으로 앉았습니다.

같이 사는 것 같은...

이럴 때 ‘사랑스러운’이라는 말을 하는 걸 겝니다.

설거지를 끝낸 아이들은

책방에서 책도 읽고 체스도 두고 있었지요.

 

한데모임은 달골 햇발동 거실에서 합니다.

물꼬의 달골시대를 위한 제언도 있었고,

추억의 물꼬 기억들도 나누고...

이 아이들의 눈을 보면서

오직 이들에 대한 관심으로 보내는 저녁 한 때가

미쁘고 느꺼웠습니다.

베개싸움을 끝낸 아이들은 샤워를 하고

날적이를 쓰며 하루를 정리하였지요.

 

참, 승훈이가 물꼬에 선물을 들고 왔습니다.

"우와, 마침 우리 필요한 거였는데..."

온도계와 놀잇감을 챙겨왔지요.

물꼬의 온도계들이 망가져 언제부터 류옥하다가 노래를 부르던 온도계.

고맙습니다.

 

오늘 대구의 한 대학에서 초빙교수 건으로 전화가 들어왔습니다.

얼마 전부터 오고가던 이야기가 구체화 되고 있었지요.

(아, 이것이 물꼬의 큰 움직임에 주는 영향이 그리 크지는 않을 것입니다.

언제나 중심은 물꼬의 일이다마다요.)

9월부터 당장 강의를 하자는데,

이미 강의 시간 배정과 연봉에 대해서도 선을 잡아 연락해온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9월에 오르기로 한 티벳 여정은 불가피하게 놓아야 합니다,

수정해야할 일이 그것만이 아니겠지만.

어느 쪽으로든 선택을 하게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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