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해건지기를 끝내고
이른 아침부터 빨래를 합니다.
공부를 하려 책을 펼칠 때 책상정리로 시작하듯
일상으로의 복귀는 그렇게 빨래로 시작됩니다.
달골 마당의 풀도 좀 매고,
한 곳엔 울릉도에서 가져온 산마늘을 심었습니다.
8학년 재호가 들어왔습니다,
아이들의 외가이고 어른들의 고향이고 친정인 이곳.
아이들은 ‘소도’(운동장 한켠에 생긴 명상터)의 풀을 뽑고 밭도 매고,
저녁엔 소사아저씨가 갓 뽑아온 열무를 다듬었습니다.
그 열무 총총 썰어 비빔밥을 해먹고,
열무김치도 담았지요.
낮, 본관 현관문을 닫는 순간 큰 소리와 함께 건물이 흔들렸습니다.
“뭐야?”
“내가 문을 너무 세게 닫았나 했어.
어디서 무슨 발파 작업하는 건가...”
아이가 곧 다시 좇아왔지요.
“지진이래요, 지진. 12:46 무주 동북동쪽 5km 지역 규모 3.9”
영동 읍내에 사는 미국인 친구도 놀라서
문자 보내왔더랍니다.
“옥영경 선생님이신가 봐요.”
“예.”
“나, OO인데...”
“내가 아는 OO이?”
“응.”
20년도 더 된...
그때, 한 대중운동조직에서 같이 일했던 사람들이 줄줄이 달려가고,
단체는 와해되었습니다.
90년대 초 동구권의 붕괴와 함께 한국도 이데올로기 지층이 흔들렸던 그 시절...
그리고 다들 어찌 어찌 살아가고 있었지요.
물꼬로 세상에 뿌리를 내리는 동안
사람들은 꾸준히 만나며 서로를 격려해오고 있었더랍니다.
“왜 자기들끼리만 만났대?”
“너야 계속 운동하고 있으니... 이제 만날 때가 된 거지.”
물꼬 소식은 간간이 들어왔다지요.
그는 대치동 한가운데서 새로운 길을 찾아
조금씩 움직임을 넓혀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 사람들도 역시 그리 자신의 자리를 잡고
운동성을 놓지 않고 있었던 게지요.
“너 OO이 알지?”
재미나게도 인연은 질겨
물꼬의 후원회원인 논두렁 부모님, 그리고 새끼일꾼이고 아이인 한 가정과
물꼬 이야기를 나누고도 있었다 합니다.
세월이 흘렀고, 세상은 변했으며, 그래도 삶은 계속 돼
다시 사람들이 이 시대가 필요한 무언가를 또 도모하려지요...
물꼬가 참 오래입니다.
때가 되면 사람들은 회귀하는 연어처럼 소식을 넣습니다.
별 해놓은 건 없지만 사람들이 그리 쌓여있었지요.
“‘길을 잘 들여놓은 공간’을... 볼 줄 아는 이만 보겠지만...”
아리샘이 그랬던가요,
낡은 살림이나 구석구석 우리들 손들이 만들어놓은 질서가 있는 이 곳,
그래서 오래 되었지만 새로운.
물꼬를 계속 나아가게 하는 힘도 그 질김에서 오는 것이지 않나 싶습니다.
잘 살아나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