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5.15.불날. 갬

조회 수 1151 추천 수 0 2012.05.23 07:48:45

 

 

스승의날.

이런 날이 다가오면 뭔가 불편하고 쑥스럽더니,

어버이날이, 그런 날이라도 있으니 부모님을 챙긴다는 고마움처럼

스승의 날이라고 있으니 것도 또 고마운 일이기도 하다 싶데요.

자정 넘어서까지 종일 통화, 통화였습니다.

물꼬의 인연들이며 같이 수학했던 후배들의 인사들.

그런데 이번 스승의 날은 오히려 어른들의 전화가 많았습니다,

그대 애쓴다는.

교수로 있는 선배부터 친지어른 동료교사들 학부모들까지 말이지요.

고맙습니다.

교권이 바닥이네 어쩌네 해도

선생님, 이라는 직업이 지니는 그 깊은 의미야

어느 시대인들 달라지려나요.

세상의 모든 선생님들, 고맙습니다, 애쓰십니다!

 

위탁교육 건으로 용인의 한 고등학교의 의뢰를 받습니다.

이미 3월을 비우기로 했던 때부터

봄학기를 느슨하게 보내자 했던 바인데,

해서 학기 가운데 머무는 아이들이 없이 보냈더랬지요.

헌데 위탁을 원하는 아이가

10여년 논두렁으로 물꼬에 손 보탠 이의 학교 구성원입니다.

학생의 어머니가 한 주 전부터 메일을 보냈다는데,

우리 손엔 들어오지 않고 있었고,

애가 단 어머니가 그이에게 말을 넣은 모양.

“내가 참... 샘 얼굴 봐서...”

단식 주간에 그 아이를 데리고 같이 수행을 하면 되겠구나 하지요.

어머니의 메일을 수신한 뒤 2차 논의를 하기로 합니다.

 

해 지고 풀을 맵니다.

젖은 땅이 아까워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어둡도록 맸습니다.

잘 보이는 곳이 아니어 잊히기 쉬웠던,

교무실 쪽 뒤란 현관 앞의 연탄재를

아이는 이 저녁 치우고 있었고.

지난여름 대대적인 수도공사로 파헤쳐졌던 운동장 일부는

비만 오면 푹푹 파이고 있었지요.

아이는 거기 연탄재를 깨 밟았더랍니다.

“이제 들어가요.”

먼저 일을 끝낸 아이의 재촉,

잘 뵈지도 않습니다.

“해우소 불 좀 켜 줘.”

해우소 들머리 풀을 그예 매고 있었지요.

그 사이 먼저 들어간 아이는

저녁밥상을 차려 기다리고 있었더랍니다.

우리 세대의 어린 날도 저녁 늦도록 어른들이 일에 겨우면

그리 저녁을 차려냈을 터입니다.

얼마나 자연스런 풍경이던가요.

 

일본 아줌마, 미국 아줌마, 한국 아줌마,

오늘 그리 모여 잠시 놀았습니다.

일본인 친구의 표현이었지요.

읍내를 나갔던 아이도 제 볼일을 끝내고 와서

대화에 끼어들고 있었습니다.

“우와, 정말 많이 컸어!”

2004년 물꼬에 자원봉사를 왔던 스미코는

아이를 보고 얼마나 놀라던지요.

류옥하다 일곱 살 때 보고 벌써 8년 세월입니다.

그 시절 상설학교에서 함께 했던 아이들도 그리 자랐을 테지요...

 

요새 모시발 하나 만들고 있습니다.

일삼아 하는 게 아니니 더딥니다.

서울 가는 기차에서도 하고 사람들 만나 얘기 나눌 때도 손을 대지요.

오랜만의 바느질입니다.

늘 손으로 뭔가를 만들면 누군가에게 줘왔지요,

나만 쓰기에는 그 애씀이 아까웠으므로,

또 언제든 필요하면 만들 수 있다 생각했기에.

이번엔 물꼬에서 쓰려고 만듭니다.

이렇게 짬짬이 하다보면 발이 걸리는 날도 오겠지요.

 

“나는 6월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현승엽 선생한테 확인하니 8월이라는데...

그래서 직접 확인을 할려고...”

“아니에요, 선생님. 6월 23일!”

<그리운 바다 성산포>의 시인 이생진 선생님과 가객 현승엽샘과,

6월 빈들모임에 대한 논의로 늦은 밤 통화가 있었습니다,

22일 실미도에서 낭송회를 마치고 오실 이생진 선생님의 움직임 때문에.

8월에 우리들이 양평에서 하기로 한 음악회랑 날짜에 혼동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해서 실미도에서 있는 22일 쇠날의 낭송회 일을 수락하셨는데,

23일이 물꼬 일정이지요.

여든 넘으신 노구로 쉽지 않은 여정일 것입니다.

“그러면... 실미도를 취소해야겠네...”

“아니에요. 제가 사람을 보낼게요.”

마침 아리샘이 근무하는 학교가 인천입니다.

쇠날 저녁 그가 움직여줄 수 있겠다 했네요.

늘 일이 일이 되도록 가는 모양이 순조로워 고맙지요.

 

선배랑 늦은 밤의 통화.

일을 도모하고 그 과정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일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지요.

나이 들수록 어렵기 더하고 조심 조심하게 되는 만남.

“사람을 알아가는 시간들이지...”

그러게요, 우리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들이지요.

세상사는 일도 매한가지일 겝니다.

세상을 알아가는 시간들인 게지요.

사는 일이 그리 어려울 게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겁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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