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5.18.쇠날. 맑음

조회 수 1050 추천 수 0 2012.05.23 07:56:29

 

 

5·18 32돌. 벌써 그리 되었는가요...

 

늘 다음날 움직임을 그리며 자기 전 메모를 합니다.

아침수행이 끝나면서부터 혹여 잊을세라

앞치마에 쪽지를 넣고 다니지요.

하지만 일은 배로 불어나기 일쑤입니다.

아무리 쪽지의 안내를 잘 따라가더라도

그 일을 하러 가면 물려서 다른 일이 보이고,

그래서 번번이 여유를 두고 계획을 하지만

쪽지의 일들을 못다 하고 말지요.

 

여름 장화를 꺼내러 요새 거의 비워두다시피 하는 간장집을 갔다가

아이가 가꾸는 텃밭을 건너다보니 벌써 상추가 한껏 자랐습니다.

솎아오며 부추도 한 움큼 잘라오지요.

그 바람으로 간장집 부엌 너저분한 살림들을 보고 정리를 시작,

아무래도 거미줄이 먼저이겠다 하고 빗자루를 휘두르니

그제야 눈에 들어오는 천장 모서리의 호리병벌의 집들.

사람이 비운 동안 그들은 그들의 집을 지었습니다.

여름 내내 성가시기 전

의자에 올라 팔 쭈욱 뻗어 그것들을 허물지요.

 

운동장을 건너 본관으로 돌아오니

오고간 일꾼들의 걸린 겨울 옷가지들이 부엌 앞 옷걸이에서 말을 겁니다.

빨지요.

빨래를 널러 나가는 걸음은 이제 우산이 불러 세웁니다.

드나드는 이들이 많으니 우산도 많지요.

‘무식한 울 어머니’ 늘 하시는 말씀,

일하고 난 뒤 정리 잘 해두어야 다음에 쓰기 좋다,

우산이라고 그렇지 않을까요.

볕 나고 나면 잊히기 쉬운 일입니다.

현관의 우산 바구니를 엎어 우산들을 털고 씻고 말리지요.

손을 봐야할 것들은 아무래도 오늘은 못하겠습니다.

 

그러는 사이 장구모임이 있습니다.

오랜만에 치는 설장구입니다.

한바탕 휘몰이와 동살풀이를 당겨서 치고 나니

아, 그 신명이 뻑뻑하던 몸을 다 풀어줍니다.

 

다음은 식구들과 학교 부속건물이 있는 ‘달골’에 오르지요.

며칠, 햇발동 거실 바닥 한 곳에 물이 스미고 있었더랬습니다.

사는 일이 끊임없이 문제를 넘고 넘는 일입니다.

그것이 살아있다는 증거이며,

문제를 만나면 별 도리 없이 풀어야지요.

아무래도 수로를 살펴야겠다 합니다.

물이 빠지지 않으면 바로 이상이 생기는 달골의 습입니다.

창고동도 건너가 봅니다.

닫아두어도 너른 공간을 어이 알고 번번이 벌레들이 날아들고,

죽어 바닥에 죄 깔려있습니다.

본 김에 제사인 게지요.

당장 쓸기부터 합니다.

그리고 식구들이 수로를 정비하고 풀을 뽑았습니다.

 

하던 가락이 아쉬워 하나라도 풀을 더 매자 하는데,

해 지고 어둠 내리기 시작하니 소쩍새 웁니다,

밥하러 가라고, 너무 늦은 저녁밥상이라고.

여름날 시계가 따로 없던 시절, 박꽃 피면 밥을 지으러 갔다 했습니다.

해가 너무 길어 저녁밥 때가 가늠키 어려울 적

날 아직 어둡기 전이어도 저녁답에 박 꽃잎 열릴 때가 딱 밥 지으러 가얄 때더라,

박을 심고 신기하였더랬지요.

흐린 날은 더욱 그러했습니다.

때를 잘 모르겠더니 그 꽃 하얗게 펼치면

그때가 저녁쌀을 앉히려 가기에 꼭 맞는 대여섯 시.

이 맘 때는 소쩍새 울어 긴 하루가 다 되었음을 그리 알리지요.

산골 삶을 사랑하는 한 까닭입니다.

 

학교로 서둘러 내려와 가마솥방에서 늦은 저녁을 먹는데,

쥐 갉는 소리가 건너옵니다.

어째 올 겨울은 그네에게 덜 시달렸더라니,

아니나 다를까 너무 오래 그들의 기척이 없었더랬습니다.

벽장 뒤!

사실은, 오늘이 처음은 아닙니다.

다만 벽장 너머라 외면하던 일이지요.

아이고, 교무실에 가서 할 일들 아직 줄서 있거늘

아무래도 오늘 아니면 또 언제 저 벽장을 들어내고 들여다보나,

장에 든 물건들을 빼고 세 사람이 옮겨봅니다.

어림없습니다.

그래도 또 어찌 어찌 앞으로 당겨보지요.

그리고 구멍을 막고 못질.

 

온갖 산 것들이 산골을 채운 밤,

교무실 책상 앞에서 해야 할 일들을 하며

간질거리는 모기 물린 자국들을 긁습니다.

발목이 조금씩 부어오르고 있어요.

이게 또 하나의 문제가 되려나...

아이도 어디 송고할 원고를 쓰느라 건너편 책상 앞에서 자판 소리 바지런합니다.

달마다 한 차례 출판서평잡지에 기고하는 일 말고도

인터넷 매체며에 글을 쓰는 게

학교를 다니지 않고 산골에서 홀로 공부하는 아이의 좋은 공부 하나이지요.

 

어느새 자정을 넘습니다.

또 하루를 건너왔습니다.

아, 사람 사는 일이 그러합디다...

자잘한 일상들이 허드렛일이지 않고 그것만으로 가치를 지니는 곳,

그래서 산골 삽니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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