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단식 이틀째.

식구들과 대배로 아침을 엽니다.

“오늘은 오직 영빈이를 위한 기도쯤 되려나...”

누군가를 위해 온 마음을 쏟을 수 있는 시간이 고맙습니다.

 

주마다 불날이면 류옥하다는 읍내를 가는데,

일거리를 싸서 같이 나가 도서관에 다녀오거나

읍내에서 볼 일들을 보고 같이 오지요.

하지만 단식할 때는 운전을 않는지라

아이는 오늘 홀로 갔습니다, 새벽 5시 20분에 일어나.

아이 일어나는 결에 같이 일어나 송고할 글을 쓰는 아침.

 

소사아저씨는 학교 아래 밭에

아주 면도날처럼 예취기 휘둘렀던 모양입니다.

이 천지 녹음 가운데도 훤한 이마 같았지요.

영빈이는 도랑 안에 잡초와 풀들을 정리하였습니다.

나가보니 기분이 다 산뜻해졌지요.

영빈이는 풀 나라에서 보내는 첫날의 움직임이

아무래도 낯설고 불편합니다.

“긴 바지를 입어야겠어요.”

그런데 달골 올라가더니 감감입니다.

낮잠을 좀 자고 내려왔다나요.

점심을 먹은 뒤에도 또 보이지 않습니다.

책방에서 한숨 잤다지요.

그렇게 제 독기를 좀 빼고 나면 이곳 흐름이 몸에 앉히리라, 바라봅니다.

 

목재와 석재를 알아보고 있습니다.

강에서 일하는 이들에게는 석재를,

찾는 나무는 곳곳의 제재소로.

쉽지 않습니다.

잘 되리라, 새 봄을 위한 일이니 아직 여유가 있습니다.

이렇게 준비하도록 독려하는 무운샘 아니 계셨으면

이것도 닥쳐서 부랴부랴 했으리라 하지요.

늘 길눈을 밝혀주는 분들이 그리 있는 삶입니다.

다시 고맙습니다.

 

재수를 하는 아들 같은 제자의 글월을 받습니다.

얼마나 힘이 부칠지요.

답을 바라고 쓴 글도 아닙니다.

‘그저 그리 마음을 쏟고 싶었으리라...’

그를 위한 기도로 자기 전 수행에 대신합니다.

 

안개 자욱한 밤, 아이들과 달골 오릅니다.

“우와, 반딧불이다!”

아이들과 밤 산길을 걷는 시간이 참 좋습니다.

찔레향에 취하고 물내에 젖고...

둘보다도 셋이니 더 좋았지요.

 

단식 이틀째인 오늘이 꼭 사흘째인 것만 같습니다.

달골에 올라 거실에서 꼼짝을 못하고 잠시 누웠지요.

이 직전의 생활이 어떠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방만했습니다.

특히 서울을 오가며, 또 여러 사람들과 만나며

먹는 것도 형편없었습니다.

단식을 해보면 내가 무엇을 먹고 마시고 생활했는지를 고스란히 압니다.

먹고 마실 때는 별 생각 없다가, 정신이 번쩍 드는 거지요.

아침 수행, 오전 오후 일, 저녁 책 읽고 이야기와 글쓰기의 흐름입니다.

이번에는 소금 없이 물만으로 단식을 하고 있습니다.

저녁에 하는 단식 보조운동들, 풍욕 합장합척운동 모관운동 들도 없이

아침 수행에 집중해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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