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꿈꾸는 나라 >

 

 

우리는 우리 자신의 길을 찾아야 한다.

모든 문제는 자신의 언어로 소리치는 법.

진실의 흔적을 따라 탐정처럼 가라.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시인. 스웨덴)의 ‘역사에 대하여’ 가운데서.

 

잠시 독일과 스웨덴에 머물렀습니다. 몇 학자들을 만나는 여정이었지요.

스톡홀름에 있던 어느 하루는 웁살라를 다녀왔습니다. 흔히 스웨덴하면 스톡홀름을 떠올리지만 제겐 웁살라가 단연 으뜸입니다.

웁살라 대학의 한 교수와 미팅을 잡으려 했으나 그가 남부유럽으로 휴가를 가게 되어 만남은 이후로 미루어졌지요. 하지만, 사실 웁살라는 도시 방문을 더 큰 목적으로 삼았기에, 특별한 일정 없이도 주말에 기차를 탔더랍니다.

 

중앙역에 내려 스토라토켓 광장을 지나 피리스 강 다리를 건넜지요. 성에릭 광장을 거쳐 드디어 웁살라 대학의 중앙도서관, 카롤리나 레디비바! 이곳이 바로 웁살라가 제게 가장 강렬한 공간이게 한 까닭입니다.

미셸 푸코는 여기서 <광기의 역사>를 썼습니다. 대영박물관의 도서관이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낳았다면, 근대 권력이 어떻게 사회를 통제했는가 밝혀주는 <광기의 역사>는 이곳이 산실입니다. 웁살라의 길고 고독한 겨울이 날마다 여섯 시간 이상씩 집필하는 습관을 푸코에게 만들어주었다지요. 더하여, 17세기 유럽에서 광인들을 감금한 세계에 대한 치밀한 자료 고증은 15세기부터 내려오는 수만 권의 고서와 자료를 비롯한 총 500만 권을 소장하고 있는 이 도서관 덕이었을 겝니다.

드디어 카롤리나 레디비바의 문을 밀었더랍니다!

 

[사진] 북유럽 최고의 대학 웁살라대학의 중앙도서관 ‘카롤리나 레디비바’

 

웁살라는 식물학자 린네의 도시이기도 합니다. 그의 탐험대가 동식물학에 미친 긍정적 영향 못지않게, 굳이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그 순수한 학문적 담론이 유럽제국주의 권력과 결탁하는 과정 역시 이 도시에서 다시 곱씹어 보게 됩디다. 17, 8세기의 동양에 대한 순수한 관심과 학문이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그 범주를 벗어나 정치 군사적인 제국주의 권력과 공모하여 동양을 지배하고 억압하는 식민주의의 도구로 탈바꿈한 것처럼 자연에 대한 린네의 분류 역시 유럽 팽창주의와 연관될 수 있을 테지요, 뭐 새로울 것도 없는 이야기지만.

 

한편, 독일과 스웨덴의 일상에서 만난 사람들의 강렬한 인상은 이번 여행에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블루칼라들일지라도 갖고 있는 ‘품격’이라고 말하면 느낌을 전하기가 좀 쉬우려나요. 식당에서 거리에서 부대끼는 ‘아무’이더라도 그들과 한동안 이야기를 주고받아보면 그들의 지적수준에 대단히 놀랍니다. 단순히 ‘안다’가 아니라 교양(문화에 관한 광범한 지식을 쌓아 길러지는 마음의 윤택함을 말하는 그 교양)을 겸비한 앎.

특히 두 차례의 스웨덴 방문은 겸손과 품격을 지닌 이들로 행복하기까지 했습니다(꼭 10년 전 핀란드 헬싱키에서 배를 타고 건너갔지요). 어떤 사회이기에 이런 사람들을 길러낼 수 있었던 걸까요. 스웨덴 사회민주주의가 무엇이어서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믿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되었을까요.

 

마르크스주의 정통성논쟁으로 유럽이 들썩이던 1920년대, 스웨덴의 사민주의자들은 소모적인 이론투쟁을 접고 자신들만의 ‘국민의 집’을 설계합니다, 경제적 효율과 평등으로. 어느 하나의 계급적 이익이 아니라 사회 전체 계급의 행복과 복지를 추구하며 자본과 노동의 화해를 시도했고, 결국 마르크스 교조주의자들이 공존할 수 없다고 생각한 자유와 평등을 화합하는데 성공하지요. 삶의 구석구석에서 구현되는 보편주의와 평등주의!

대신 그들은 그런 사회를 위해 수입의 절반에 가까운 세금을 내야 합니다. 허나 그 세금이 허투루 새지 않고 다시 자신이 속한 사회를 위해 쓰이고 그것을 자신이 누리는 것을 의심하지 않음으로 기꺼이 내지요.

 

저는, 가끔 고개가 절래절래 흔들어지는 이 대한민국에서 그래도 아직 이민을 가지 않고 남은(?) 사람입니다. 한 소설가가 읊었듯 ‘단한번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 사회 구성원 간의 유대와 연대, 공동체 의식 따위는 약에 쓰려고 해도, 길거리 개똥보다 찾기 어렵고... 자유로운 것을 조금도 허락하지 않는 곳, 색다른 생각 자체를 처음부터 막아버리는 곳, 남들과 다른 시도를 하는 것만으로 곧바로 꼴통으로 찍히는 사회, 그러면서도 자유주의를 내세우는 곳, 바로 대한민국.’이라도 아직 이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제게 북구 사민주의는 좋은 모델이고 있지요. ‘내가 꿈꾸는 나라’! 그런데 그런 나라가 북구의 제도와 정책을 도입하면 된다고 생각한다면 저는 그대를 바보라 하겠습니다. 그것을 이끄는 가치와 비전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지요. 그렇게 일궈낸 그들 사회의 문화와 규범, 그러니까 동등한 자유와 권리를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부여해야 한다는 신념, 모든 아이들을 향한 아동 복지의 비전, 모든 것은 장애인의 관점으로 보는 장애인 복지의 지향... 그것이 그들 사회의 문화와 규범임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런 나라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거기 제가 교육에 열정을 거는 까닭이 있습니다. 저는 물꼬에서 그런 나라를 만들 사람들과 연대하고, 그런 생각을 아이들을 만나 나눕니다. 꿈꾸는 그 나라가 얼마나 먼 곳에 있는지는 가봐야 알 테지요...

 

머지않아 외국에 체류할 일정이 있습니다. 아일랜드냐 스웨덴이냐 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웁살라가 되지 싶습니다. 많이 자극받고 깊이 배우는 시간일 겝니다. 그리고 여전히 물꼬에서 꿈꾸며 그것을 향해 나아갈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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