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6.21.나무날. 맑음

조회 수 1041 추천 수 0 2012.07.02 15:58:17

 

대해리로 돌아왔습니다.

차는 자주 규정 속도를 넘습니다.

속력의 속성이 그러하지요.

우리 삶도 꼭 그렇다 싶더이다.

순간순간 그걸 알아차리고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 성찰의 이름일 것.

 

읍내에서 아이를 만나 장을 보고 들어옵니다.

사람 서른 멕이는 일이야 그리 큰일도 아닌데

마음이 그런 거지요, 오래 앙망한 어른을 모시는 일이.

주인 없는 동안 살펴준 두엇의 이웃에게 작은 선물을 하나 전하고 옵니다.

언제나 어렵게 다녔고, 짐이 가벼웠던 여행길, 그리고 거친 숙소와 긴 여행,

제게 외국여행이란 늘 그러하였습니다.

하여 선물이라고는 엽서 외에 사본 적이 없는.

그런데 이번엔 숙소에서부터 좀 편히 했던 여행이라

학교에 쓸 몇 가지 소품을 들고도 왔지요.

두어 곳에 걸고 붙였더랍니다.

 

학교에 들어서서는 룽따부터 달았지요.

스톡홀름의 구시가지 감라스탄에서

티벳과 네팔로 채운 한 가게를 만납니다.

댓살 아이 손을 붙들고 꼭 10년 전 걸었던 거기.

몇 장을 챙겨와

낡은 운동장 가 전나무 사이에 휘날리던 낡은 룽따에 이어 달았습니다.

바람의 말(馬)

바람이 그리 달려 자비를 전하라 하지요.

 

열흘 정도였다나, 한국은 너무 더웠더랍니다.

대해리도 다르지 않았다고.

피서 다녀온 게 됐네요.

독일과 스웨덴은 두터운 겨울 외투에서부터 민소매까지 공존했더랬습니다.

쌓인 우편물들,

김동표 영동지원청 교육장님이 다녀가셨고,

새봄에 토굴집에 쓰일 통나무들이 쌓여 운동장에서 맞고,

그리고 시집 꾸러미.

6월 빈들모임에 오는 이들을 위한 선물입니다;

<우이도로 가야지>, <그리운 바다 성산포>, <실미도 꿩 우는 소리>, <서귀포 칠십리>.

 

“...

* 그런데요, 선생님, 저희 사는 곳 많이 불편하다 말씀드렸지요?

* 참, 물꼬서 따로 준비해얄 것은 없을지요?”

선생님께 며칠 전 보낸 이러한 글월에 답장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나는 많이 걸어가며 사는 사람이라

아직은 서 있는 다리가 든든합니다.

옛날엔 짚신으로 걸었지만

지금은 고급 등산화로 걸으니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내 시는 사나운 길에 익숙해서

나를 잘 따라옵니다.

세 끼 대신에 두 끼로도 견딥니다.”

선생님은 그런 분이십니다.

선생님을 알면

왜 사람들이 그토록 당신의 시를, 그리고 당신을 좋아하는지 알 겝니다.

 

바로 맞이 청소에 투입.

소사아저씨는 살구나무 둘레 풀들이며 포도나무를 돌보고,

아이는 어미랑 손을 맞춥니다.

아, 아이는 공구를 가지고 망가진 의자 하나도 고쳤습니다.

버리려나 했더니 요긴한 꼴새로 다듬었지요.

기특합니다.

생각하고 가능성을 따져보고 해보고...

 

깊은 밤, 모시 바느질 하나 끝냈습니다.

달골 햇발동 부엌 창에 걸려지요.

이 작은 행위 하나의 갈무리가 마치 이생의 모든 일을 끝낸 것만 같은.

그래도 충분합니다, 난 평범하고 작은 일에 분노하고 기뻐하는 이이니.

‘위대한 이들은 위대한 일을 완성하라,

나는 이런 일로도 스스로 위대할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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