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약간 어둡고 후덥해지는 한낮이었습니다.

그러다 잠시 비 흩뿌려 식혀주더니,

그예 갰지요. 고맙습니다, 이곳의 일들에 늘 하늘이 그러하듯이.

 

여느 때라면 2박3일의 빈들모임이 이달엔 1박2일로,

다시 이생진 선생님과 현승엽 선생님의 시와 음악에 집중키로 한 저녁이지요.

‘이생진 시인이 있는 산골 밤 - 시와 음악에 젖는 여름 저녁’

 

간밤,이 아니라 아침 7시에야 들어가 잠시 눈 붙이고,

두어 시간 뒤 하루를 시작했더랍니다.

어려운 어른이 오시긴 오시나 봅니다.

그런데 당신을 맞기 위한 준비가 얼마나 신바람이 나는지.

넘들은 모를 것이나 우리는 털고 닦고 윤을 냈더랬지요.

그런데 오래 비운 자리가 어찌 그리 자꾸 표나던지.

베를린 가기 전에도 대청소를 한번 하고 갔으나

여전히 눈에 보이는 후미진 곳들의 무질서.

운동장 풀은 결국 다 손을 대지 못했습니다.

 

해우소 안내판도 붙여야지요.

‘서서 오줌 누는 사람’, ‘앉아 오줌 누는 사람’ 표시를 걸고,

‘아이가’ ‘어른이’를 붙여 그 쓰임을 칸마다 붙이고,

잠자리 안내와 일정 안내도 씁니다.

그저 이틀 빈들모임, 그것도 사실 하룻밤인데

그런 부산이 없었네요.

그러고 보니 세 주를 내리 하는 계자는 이에 견주면 외려 헐렁했단 생각도.

 

휘령샘, 점심 버스로 들어와 행사가 있을 고래방을 맡습니다.

창틀의 먼지를 털어내고, 거울을 닦고,

사람들에게 선물할 이생진 선생님의 시집들을 아리샘과 놓고,

물꼬 책꽂이에 있던 이생진 선생님의 시집들을 열댓 권 전시도 하고,

그리고 수리떡이며 빠진 장을 채워 부랴부랴 달려온 재진샘과 희중샘과 걸개를 걸고...

주영샘과 다정샘은 부엌에 붙었지요.

 

실미도 행사를 마치고 금산에 와 계시던 현승엽샘과 이생진샘은

당신들의 벗 정옥환님이 실어오십니다.

금산서 무주 구천동에 발 담갔다 도마령을 타고 오셨더라나요.

결국 선생님들을 모셔오기로 한 아리샘의 임무는

그리 마무리가 되었더랍니다.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손에 손에 든 보따리들과 함께.

캐러반과 함께 등장한 소병선샘 이성순 샘은

지난번 다녀가시며 찍은 사진과 와인과 살림에 요긴한 화장지와 세제를 들고

사진과 영상을 담은 만반의 준비를 해오셨습니다.

광평농장 조정환샘은 민재님과 함께 서둘러 밭에서 나온 복장 그대로

트럭에 뻥튀기 기계를 싣고 와 내리셨지요, 우렁쌀도 같이.

현옥샘은 칼칼한 육수를 준비해오셨고,

시누이 조청자님도 초대해 오셨네요.

품앗이샘들이 카스테라와 파운드케잌을,

전영호님과 효진님이 빵과 흑맥주와 수박을 바리바리,

그리고 송남수샘은 직접 덖은 버섯차를 챙겨오셨고,

마지막으로 미죽샘이 단오부채를 준비해오셨지요.

5월 마지막에 부탁을 드렸으나 그만 잊어 부랴부랴 밤새 그리셨다는데,

스무 개밖에 안 되더라십니다.

(그러면 그런대로 또 잘 나누면 될 테지요.)

물꼬의 작은 행사 하나도

얼마나 많은 이들의 마음과 손과 나눔으로 이루어지던지요.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저녁 7시, 드디어 막이 열립니다.

서른, 어쩜 그리 괜찮은 규모였던지요.

벽에는 물꼬가 건 작은 걸개그림과

그 양쪽으로 선생님이 준비해 오신 걸개사진 독도와 이어도.

그런데, 그 걸개 뒤엔 우리 아이들이 그린 바닷속 그림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걸개 안으로 출렁이는 바다가 들어있었던 거지요!

바다랑 어느 곳도 닿지 않은 충북 산골은

늘 그리 바다를 그리워하지요.

 

먼저, 온 사람들이 모다 한사람씩 제 소개를 합니다,

물꼬와 맺은 인연도 전하고.

시인이자 기자인 김기준님,

전 교육장이며 물꼬의 오랜 지원자 이명섭 선생님,

소설가 민영이샘,

이웃이며 황간면 대표(?)인 오랜 유기농가 광평농장의 조정환 조청자 정현옥 조민재,

매곡면 대표이자 물꼬의 차 스승이며 풀쌈축제 송남수샘과 김광렬님,

대해리 이장님 못 오신 대신 우리 마을 대표로 참석한 이웃 봉길샘,

경기도 대표가 된 소병선님, 이성순님,

품앗이샘들 휘령 다정 희중 주영,

학부모이자 옥천 대표 전영호님 최효진님,

단오부채를 준비해 오신 미죽샘,

늦은 결혼 뒤 십년 만에 문화나들이 나선 대전의 부부 최광현님 성이안님,

아, 몇 해 전 주례를 섰던 유설샘의 동생 재진님도 드디어 물꼬를 오고,

그리고 물꼬 상주 식구들과

오늘의 빛나는 진행자 아리샘!

 

소개하는 시간이 너무나 인상 깊고 감동이었다고도 하였지요.

김기준님 가족들이 못 오고,

대전의 논두렁 주훈샘과 그 벗이 못 오고,

이장님이 급히 출타할 일로 빠지시고,

김석환 시인이 못 오고,

양문규 시인이 생명스테이와 날짜가 겹쳐 역시 오지 못하고,

그리고 교수로 있는 미국인 일본인 친구들이

성적입력에 밀려 결국 오지 못했습니다.

미국인 친구는 이생진 선생님의 시를 낭송할 준비까지 했는데...

그렇게 빠진 자리를 예정에 없이 와 준 이들이 고스란히 앉아

딱 그렇게 준비한 자리 ‘서른’이 되었더랍니다, 늘 만나는 물꼬의 기적!

 

“자유학교 물꼬에 들어서며 배운 게 많습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시강을 시작하셨습니다.

중 3때부터 이광수 이태준 심훈 이러한 이들의 작품을 읽으며 반하고,

그 내용이 실지 세계라 생각하고 그 세계를 답사하고,

그처럼 몸으로 체험하고 그렇게 돌아다닌 섬과 바다였다셨지요.

동쪽 끝 독도, 남쪽 끝 이어도, 서쪽 끝 마안도(비단섬)는 우리 영토에서 귀중한 위치,

허니 관심 가져달라 호소도 하셨습니다.

서산에서 태어난 당신이 초 3년 사촌누나들 따라 4킬로미터를 가 처음 본 바다,

그 신비하고 놀라운 바다 풍경,

그리고 지금 생각하면 칼 부세의 ‘저 산 너머’가

당신께 시를 쓰게 했다십니다.

 

저 산 너머 또 너머 저 멀리

모두들 행복이 있다 말하기에

남을 따라 나 또한 찾아 갔건만

눈물지으며 되돌아 왔네.

 

저 산 너머 또 너머 더 멀리

모두들 행복이 있다 말하건만......

 

금산에서 양산으로 무주로 해서 도마령 너머 영동으로 오며,

그러한 마음 늘 가졌듯 오늘도 그러했다셨지요.

그리고 시 ‘이어도’를 들려주셨고,

현선생님이 다시 노래로도 부르셨습니다.

“내가 제주도를 처음 간 게 61년 전인 1951년인데...”

5월의 제주도, 6월의 실미도를 가는 까닭들도 들려주셨지요.

“내게 시를 쓰는 것은 내 한, 남의 한을 같이 푸는 것”이라며

흔히 시인이 그저 아름다운 언어로 감동을 주는 거라고들 익히들 아는 것과 달리

당신은 실제 삶을 사는데, 사람으로 살아가는데

거기에 맺힌 한을 어떻게 풀까 고민한다셨습니다.

 

“이제 자네가 노래하지.”

“인생에서, 계획대로 되질 않지요. 우리가 초반의 작전이 이렇진 않았는데...”

“모든 게 계획대로는 안 되는데,

우리가 운동장에서 운동할라고 나가서 비가 오면 못하잖아요,

하지만 비가 와도 내가 할 수 있는 계획은 있지 않아요?

이 사람 계획 있어요!”

그러자 현선생님은

“여기 자유학교라 자유롭게... 산에서도 우리는 바다를 노래합니다.”

그렇게 기타를 울리셨습니다.

노래가 마치 안개처럼 우리들 사이를 스몄지요.

‘가끔씩 아주 가끔씩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바다는 늘 그 자리에 있는데 나는 삶 속에서 그저 꿈만 꾼다...

나는 바다가 좋다 나는 그대가 좋다...’

 

“그런데, 원래 이 시간이 9시까지인데 지금 시간이...”

노래를 마친 현선생님의 얘기에 이생진 선생님이 화답하십니다.

“내일이 일요일이고, 9시가 문제는 아니잖아요?

 이게 자유학교의 특징... 1시간의 백분 수업 그러한 게 없단 말이야.

 학생이 하고 싶은 대로!

 자유만큼 좋은 게 없어, 세상에...”

 사람들의 환호와 박수가 이어집니다.

 

두 분 인연은 퍽도 오래입니다.

중 1때 담임선생님과 그 제자가 우연히 인사동에서 해후하고,

이생진 선생님의 인사동 시낭송에서 현선생님이 돈 매클린의 ‘빈센트’를 불렀다지요.

그렇게 두 분은 짝궁이 되어 섬과 바다를 다니십니다.

다음은 선생님이 정말 좋아하셨다는 고흐이야기,

그렇게 시집 <반 고흐, ‘너도 미쳐라’>가 나왔고,

오늘 선생님은 ‘고흐를 위한 퍼포먼스’를 읊으셨습니다.

‘... 고흐는 순간순간 하고 싶은 것이 많았어요...

... 나는 지금 고흐를 하고 있어요

별이 빛나는 밤,

고흐를 하고 있어요

돈 매클린의 별이 빛나는 밤 노래할래요.’

고흐라면 압생트가 빠질 수 없지요.

“이 사람도 술을 좋아해, 소주...

 지루하신 분은 가시고 자유니까, 있으실 분은 있고,

 저기 이불이 많아, 먹을 것들도 있어.

 이 시간이 끝나면 저 사람은 소주, 나는 막걸리를...”

한바탕들 웃음을 쏟아내고,

시는 현선생님이 부르는 돈 매클린의 노래로 이어졌지요.

 

소설가 민영이샘의 자작시 낭송과

품앗이 샘들과 이명섭샘의 <그리운 바다 성산포>에 실린 시낭송,

그리고 류옥하다(어른들 중심 행사라 아이라곤 이 아이 하나였던)의 플룻 연주,

조청자님의 <우이도로 가야지>의 시 한 편.

현선생님의 음악을 배경으로 선생님도 시집 <그리운 바다 성산포>의 일부를 낭송하시고

그 끝이 '풀 되리라',

그리고 그 시를 노래 옮기는 현승엽샘.

‘... 아버지 날 공부시켜 나 편한 사람 되어도

어머니 구천에 빌어 나 영 되어도

나 다시 빌고 빌어 풀 되리라

흙 가까이 살다 물 가까이 살다

아무렇지도 않은 풀 되리라...’

선생님의 시 ‘무명도’에 곡을 붙인 노래도 불렀지요.

‘숙제 못했다고 중학교 때 혼났던 승엽샘,

오늘은 숙제 잘했다’고 선생님이 소개해주시지 않았더라도

우리는 박수 크게 크게 쳤을 겝니다.

 

많은 것들이 자극하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책이, 시가 힘을 가지는 것은 경이롭고 고마운 일!

그 시로 노래로 채운 아름다운 산골 여름밤이었지요.

“(오늘 물꼬가 선물한 시집 가운데)다른 책을 가졌으면

오늘 밤 친해져 바꿔보면 되겠네요.”

아리샘의 재치 있는 마지막 인사.

기념 촬영도 빠뜨릴 수 없었지요.

 

가까운 곳에서 건너오신 분들이 자리를 털고,

가마솥방에서 열린 주점에 남은 이들,

현승엽샘 중심의 걸쭉한 뒤풀이를 이었지요.

“됐어!” “됐어!”

“바다만 있으면 됐어!” “됐어!”

‘서귀포 칠십리 길’로 우리는 건배를 하고,

11시도 넘었지요 아마, 이생진 선생님 숙소 먼저 들어가시고,

새벽 두 시가 넘고 세 시도 넘고 네 시도 넘을라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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