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다 깨다 하는 종일이었습니다.
학교의 모든 흐름이 그리 쉬었습니다.
독일과 스웨덴을 돌아오자마자 두어 시간씩도 채 자지 않은 채
며칠을 움직였지요.
존경하는 어르신 한 분 모시는 일이
어려웠고, 그만큼 기뻤고, 마음 퍽 푹했습니다.
참말 아름다운 시간이었다고
다녀간 이들의 글월과 문자와 전화가 닿았지요.
고맙습니다.
이곳 역시 그러하였습니다.
행사에 미처 하지 못했던 일들이 어디 한둘이기만 했을까요.
운동장의 주차장 쪽으로는
풀을 통 손을 대지 못하고 사람들을 맞았습니다.
닭장을 살펴주지도 못하고, 개집 둘레도 어찌나 허술했던지.
이제야 짬짬이 풀을 뽑기도 하였더랍니다.
6월 빈들모임,
이생진 선생님의 시와 현승엽 선생님의 노래가 남긴 여운이 길고도 길어
오늘도 선생님의 시집을 이것저것 뒤적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맹문재 시인의 ‘책을 읽는다고 말하지 않겠다’를 오래 곱씹었지요.
冊이란 한자를 찾다보니
부수로 冂이 쓰이는 것을 알았다
옛날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가는 지역을 읍이라 했고
읍의 바깥 지역을 교라 했고
교의 바깥 지역을 야라 했고
야의 바깥 지역을 림이라 했고
림의 바깥 지역을 경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책을 둘러싸고 있는 경계선은
내 시야가 닿기 어려운 거리이다
나는 책을 읽어서는 세상을 볼 수 없다고 믿어왔는데
책의 경계선 안에
산도 강도 들도 짐승도
사람도 시장도 지천인 것을 오늘에서야 알았다
칸트는 평생 동안 100리 밖을 나가지 않고
서재에서 보냈다고 한다
결혼도 하지 않고
시계와 같이 책을 읽었다는 것이다
벌써 100리 밖을 벗어났고
들쑥날쑥 살아가고
결혼까지 했으므로
나는 책을 읽었다고 말하면 안 되겠다
책을 읽는다고 말하지 않겠다
다만 책이 넓다는 것을 깨달았으니
보이는 데까지만 걸어가야겠다
*) 해당 한자는 읍(邑), 교(郊), 야(野), 림(林), 경(冂).
( 맹문재, <현대시학> 2010년 6월호)
2012년도 상반기 주마다 한 차례 보내기로 한 원고가
드디어 마지막!
숙제 하나 끝났습니다.
글 빚이 젤 무섭다지만
그래도 여느 사는 일에 견주면 그게 또 무에 그리 일일까요.
하나씩 하나씩 건너가는 삶의 징검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