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7. 1.해날. 갬

조회 수 1135 추천 수 0 2012.07.08 12:21:38

 

비 오면 더뎠던 일상,

날 말개지자 그 시간이 빨라집니다.

소사아저씨는 고추밭도 호박줄기도 정리하고,

다른 이들은 안살림을 살피지요.

 

아침 일찍 여준호님 가족 들어왔습니다.

귀농을 준비하며 물꼬를 드나들고 있는 가족이지요.

서로 도울 길을 찾아도 보고 조율도 해봅니다.

같이 할 수 있는 일도 있겠지요.

산촌유학에 대해 하는 진지한 고민도 우리가 함께 타진해보는 일입니다.

학교 뒤란 나무가 늘어져 댓마로 들고나는 이들이 불편을 호소했던 참,

올 때마다 이러저러 필요한 손을 잘 나누는 그가

소사아저씨와 가지들을 자르고,

고추대 세우는 일도 도우셨네요.

 

발효식품을 같이 공부했던 이웃 마을의 박옥례님이 남편분과 방문하셨습니다.

늦은 점심을 먹던 밥상에

드셨다는 점심을 굳이 함께 자리해서 나눠 먹었습니다.

불쑥 찾아와 미안타셨으나

그렇게 또 얼굴보지 언제 보나 마음 좋았습니다.

 

날 갠 바람으로 집안일들을 해치우느라

끝도 없이 이어지는 일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시 한 편을 떠올렸더랬네요.

 

 

아스피린

 

 

할머니는 토끼 표 ABC로 이산의 슬픔을 이기셨고

어머니는 종근당 사리돈으로 가난을 견디셨다

사는 건 고통이고 진통제는 희망이었다

둘 사이는 이스트로 부푼 빵처럼 화기가 아랫목에 가득했고

부풀고 부풀다 가끔 터지기도 했었는데,

미워하지도 않았지만 서로 불쌍해하지도 않았다

사철 그림 같은 아버지 대신

할머니는 병아리 장사도 했고, 어머니는 사과 행상으로 나서기도 했지만

우리 집에는 팔지 못한 사과가 늘 넘쳤다

어느 해 토끼 표 ABC가 단품 된지 얼마 후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꽃상여를 뒤따르며 사무치게 울던 어머니

종근당 회사가 건재하니 아직 어머니는 안심이다

산다는 것은 이런 것일까?

통증이며 그리움이며 절망인

그럴 때마다 먹는 아스피린

어쩌다 목에라도 걸리면 쌉싸름한 씀바귀 맛

사르르 내려가 녹여줘 매 순간 숨바꼭질하듯 만나는 행운 같은 것

때로는 올라오는 생목을 즐기며 앞으로 가야 한다

중독된 희망

 

(김미옥, <시문학 2010년 8월호>)

 

 

때로는 올라오는 생목을 즐기며 앞으로 가야 한다 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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