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보내고 비가 잦아들고 있었습니다.

볕도 잠시 다녀갔지요,

종일 흐림,이라고 써도 그리 틀릴 말 아니지만.


빨래방 안에 갈무리해서 뭉턱이뭉턱이 걸려있던 마늘은

오늘 상상아지트 제 집으로 옮겨졌습니다.

올해는 마늘이 좋아

물꼬의 많은 양의 김장까지 다 감당할 수 있겠거니 하지요.

소사아저씨가 애 많이 썼습니다.

아, 늦은 봄엔

남도의 집안 어르신이 와서도 풀을 한바탕 다 매주고 가셨더랬지요.

얼마나 많은 손발이 이곳을 살리는지.


볕이 반짝한 아침,

아침 수행을 끝내고 부지런히 빨래를 했습니다.

가을볕이 아까워라 고추를 말리던 다 저녁의 가을처럼

볕이 달아날까 종종거리는 젖은 날들.

첨벙첨벙 휘둘며 빨래를 할라치면

냇가 어디쯤 있는 빨래터에라도 나간 듯하지요.

이곳저곳 문이란 문도 다 열어두었습니다.

볕싸라기 거기도 닿아

눅눅한 공기를 밀어대달라고,

그게 어디 공기이기만 할까요,

얼룩진 마음도 털어달라고.

우산도 씻어 넙니다.

물을 피해 여기저기 밀쳐둔 것들도 자리를 찾아 들이지요.

그렇게 살아지는 겁니다,

살아라고 살아라고

그렇게 장마에도 볕이 다녀가는 겝니다.


속 아픈 일 하나.

바깥냉장고 기능에 문제가 좀 있는 줄 알고도

잠시 한눈 판 사이 가래떡에 곰팡이 슬었습니다,

금세 꺼내 얼려둔다는 것이 그만 손닿지 않은 한 이틀 만에.

미안하지요, 떡에도, 떡이 여기 이르게 한 사람들에게도.

하기야 덕분에 장순이와 세나 푸진 배를 위로 삼아야지 합니다.


저녁엔 이웃을 불러 월남쌈을 나눠 먹었습니다.

식구들도 오랜만에 먹는 여름 별미입니다,

우리들의 여름은 그렇게 월남쌈으로 오는데.

앞마을과 뒷마을 가운데 학교가 있어도

운동장을 나가지 않으면 마을이 까마득히 먼 곳이기 쉽지요.

오늘은 두루 마을 소식도 들었답니다.


별장집 할머니,라 부르는 할머니 소식도 그 편에 듣습니다.

대처 나가 자리 잡은 자식들이 마을 멀리 별장을 지었고,

할아버지 살아생전 지팡이를 짚고

마을과 산 중턱의 별장을 오르내리며 관리를 하셨더랬지요.

그러다 할아버지 세상 지고,

할머니가 그러고 다니시더니

언제부턴가는 아예 마을에 있는 집을 두고

마을과 뚝 떨어진 별장에서 빈집처럼 지내셨더랬습니다.

너무 오래 소식 없어 동네 아주머니 올라가 문을 두드렸다는데,

사람은 있는 게 분명한테 문은 잠겨

유리창을 깨고 들어갔더라나요.

이불처럼 널부러져 겨우 숨을 쉬고 있던 할머니,

지금은 병원에서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계시다 합니다.

사람 사는 일에 그만 짠하고 먹먹해지는...


밤새 장순이와 세나가 어찌나 짖던지요.

짐승들이 마당까지 내려오는 산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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