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와, 호랑인가 봐.”

고양이도 아니고 개도 아니고 고라니도 멧돼지도 아닙니다.

이른 아침, 운동장에서 발견한 큰 짐승 발자국.

누가 다녀간 것일까요?

 

고추밭 옆 수세미와 오이 줄기를 묶습니다.

그리고 소사아저씨는 연일 대파 둑과 고추밭과 호박 사이를 누비며

풀들을 잡아봅니다.

풀은 멀리 달아나고

사람은 그를 따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풀은 아는지,

그들에게 겨울이 올 것이란 걸.

사람 사는 일은 또 그 풀이랑 어디 다른가요,

우리 사는 일이 늘 그리 단견이랑 말이지요, 하하.

 

“내 오늘은 기필코 장독대를 돌본다!”

벽을 한껏 타오른 담쟁이넝쿨 아래 장독대는

뚜껑 위로 떨어진 담쟁이 꽃가루로 넘치고,

꿀을 찾아 날아든 벌들의 웽웽대는 소리가

마치 너 왜 빨리 일 안하냐 재촉하는 소리만 같습니다.

어디는 벌이 없다고 난리더니

드나드는 아이들에게 그들이 귀찮은 이곳엔 벌벌벌벌벌 넘칩니다.

세상은 늘 그렇게 찾으면 없고 소용 닿지 않을 땐 넘치는 것 투성이.

어디나 이 산골이 그렇듯 풀은 겁나게 오르고 오르고

항아리들도 풀들 기세에 제 안으로 안으로만 웅크리고 있다지요.

소금물에 넣어둔 메주 건져 낼모레 장을 가를 것인데,

도통 돌보지 못한 장이었더랍니다.

볕을 많이 보지 못했던 장,

거기 허옇게 꽃 피어오르도록 그걸 돌봐주지 못했더란 말이지요.

닦고 거르고...

 

“수압도 좀 조절할까?”

지난 여름 계자에 운동장을 가로지르며 수도공사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너무 센 수압으로 물이 천지사방 튀고,

그게 여느 날의 살림에서야 그리 거슬릴 것도 없는데

아이들이고 어른들이고 우르르 와서 쓸 땐

튄 물을 닦아내는 게 또 일일지니.

이런 구석구석의 미세한 준비들이 곧 계자 준비인 거지요.

 

여름날은 먹을 게 지천입니다.

못다 먹고 가는 딸기와 오디처럼

여름은 더하면 더했지 못 하지 않지요.

밥상에 오를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오늘은 강된장을 지져내고

멸치젓갈도 놓고

호박잎을 찌고 풋고추를 냈답니다.

이 밥상을 위해 내 여기 산다 싶지요.

 

이틀의 볕으로 일 좀 했네요.

아, 늘 고마운 하늘,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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