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수행과 빨래.

장마 북상 중이라더니 볕 잠시 찾았기

그 부스러기도 놓치지 않으려 종종댑니다.

소사아저씨는 들깨모종도 심고 호박줄기도 정리하고,

아, 달골 축대 문제로 전문가와 공사 담당자도 다녀가고.

 

“참, 어머니, 모둠방 스위치 고쳐놓았어요.”

고맙습니다.

도대체 이 살림이란 것이

어째 그리 일을 꼬리 꼬리 물고 흘러가고

해도해도 표도 없는 일이 또 하도록하도록 하느냔 말이지요.

모둠방 하나 불이 안 들어와서 전기를 좀 손보러 날 마르길 기다리는데,

볕 떴던 날 아이가 잊지 않고

그걸 고쳐놓았습디다.

아이가 크고, 아이가 그리 해줄 수 있는 일이 많아집니다려.

 

밤, 꿀을 가지러 황간의 광평농장에 들렀습니다,

마침 조정환 선생님이 의논할 일도 있다 하시기.

유기축산으로 닭을 치고 있는데

그 규모를 넓힐 곳을 찾고 계신듯.

농사 스승이고, 기대고 사는 이 어르신들 만나면

묵힌 마음 일들을 풀풀 꺼내 쏟고는 하지요.

“에고, 벌써 이리 됐네.”

늦은 저녁을 먹고 식탁에 앉아 하던 이야기,

아주 밤을 새겠습디다.

“아, 나 꽃 좀 있어야 하는데...”

춤명상에 소품으로 쓸 꽃송이 몇 챙기려는데,

그 밤에 두 분은 온 꽃밭을 돌며 갖가지 꽃들을 꺾어주셨습니다.

마음씀을 당신들로부터 늘 배우고 또 배우고.

 

읍내 한 식당의 병토샘이 이 산골 류옥하다 선수 고기 귀할 거라고

찌개거리 잊지 말고 챙겨 가라시기 여러 날,

오늘 들리마 했지요.

잔뜩 챙겨주셔서 오는 길 광평에도 나누고,

우리 냉장고에도 잘 넣었습니다.

읍내 목욕탕 아줌마도 인사 드렸더니

아이를 위해 음료들을 챙겨주셨지요.

우리 아이들을 부모만 키우는 게 아니란 말이지요.

그 사랑들 고맙습니다.

 

벗이자 물꼬의 품앗이일꾼으로부터 온 메일.

오랫동안 시민단체에서 함께 일했던 후배와 오랜만에 있었던 일 하나로

‘인간관계가 총체적으로 뒤집어지면서 어느 쪽으로도 마음이 잡아지지 않’았다 했습니다.

‘함께 운동하던 세월동안

아무에게도 하지 못했던 1부터 100까지의 이야기를 나눴던 후배인데’

형식상 서류가 필요했던 어떤 일로

기록을 위해 제법 많은 돈이 통장 상으로 오가며

그 돈이 혹 공중으로 날아가버리기라도 할까 그 후배가 잠깐 불안을 보인 모양.

세상 다 못 믿어도 그이만큼(제 벗요)은 믿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인데,

그 벗에게 후배 또한 그런 사람일진대

그 일에서 드러난(잠깐, 아주 잠깐이지만) 마음들로 잠시 불편한 그런 이야기.

아, 그들의 마음은 한순간 지옥이 있었을 것을

그 일을 이렇게 몇 줄의 글로 곱씹는 걸로 그걸 헤아릴 수나 있으려나요.

'... 샘아, 나도 그래.

아주 작은 일 하나에도 오만 가지 잡생각이 다 들어.

특히 그것이 사람하고 관련된 일이면

내 마음도 수만 가지에, 그를 끼고 해보는 생각도 수만 가지

(그게 빗살 좋게는 배려이고 나쁘게는 눈치인).

그 후배도 샘도 다 이해가 되는 거지.

어쩜(아니, 이 '어쩌면'은 빼야 더 의미가 명확할 듯)

나도 그 후배랑 똑 같고, 샘과도 똑같다지.

그냥 우리 사는 일이 짠하요.

그도 샘도 아니고, 바로 사람 사는 일이 말이지요.

아, 우리가 좀 넉넉해 봐, 까짓 그런 돈이 문제인가, 하하.

어째 좋은 일 좀 한다는 이들은 어이 그리 또 다 사는 게 넉넉치 않은지.

그냥, 그냥, 우리 사는 일이 참 '거시기'하요.'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그게 다.

정말 거시기합니다, 사람 살아가는 일들이.

 

03:15, 아침엔 그만 잊을 것 같아 일어나서나 보라고

광주의 한 벗에게 문자 넣어놨더니

그 소리에 깼는지 전화가 울렸습니다.

시 쓰는 그 여인, 서로 바빠 얼굴이고 연락이고 통 없다

반가움으로 한껏 깔깔거려본.

잘 자라는 그의 끝인사 뒤에 온 정끝별의 시 한 줄,

“사랑아, 나를 몰아 어디로 가느냐”

사람을 향한 좋은 마음이란 게 그리 내닫는 속성을 지닌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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