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7.17.불날. 비 흩뿌리고 가고

조회 수 1095 추천 수 0 2012.07.28 00:00:59

 

무서운 풀들의 기세,

서정주의 "상리과원(上里果園)"을 생각하는 아침.

 

 

꽃밭은 그 향기만으로 볼진대 한강수(漢江水)나 낙동강(洛東江) 상류와도 같은 융륭(隆隆)한 흐름이다. 그러나 그 낱낱의 얼굴들로 볼진대 우리 조카딸년들의 친구들의 웃음판과도 같은 굉장히 즐거운 웃음판이다.

 

세상에 이렇게도 타고난 기쁨을 찬란히 터뜨리는 몸둥아리들이 또 어디 있는가. 더구나 서양에서 건너온 배나무의 어떤 것들은, 머리나 가슴패기 뿐만이 아니라 배와 허리와 다리 팔꿈치에까지도 이쁜 꽃송아리들을 달았다. 멧새, 참새, 때까치, 꾀꼬리, 꾀꼬리 새끼들이 조석으로 이 많은 기쁨을 대신 읊조리고, 수십 만 마리의 꿀벌들이 왼종일 북치고 소고치고 마짓굿 울리는 소리를 하고, 그래도 모자라는 놈은 더러 그 속에 묻혀서 누워 있는 못물과 같이 저 아래 저것들을 비취고 누어서, 때로 가냘프게도 떨어져 내리는 저 어린것들의 꽃잎사귀들을 우리 몸 위에 받아라고 볼 것인가. 아니면 머언 산들과 나란히 마주 서서 이것들의 아침의 유두분면(油頭粉面)과, 한낮의 춤과, 황혼의 어둠 속에 이것들이 찾아들어 돌아오는 - 아스라한 침잠(沈潛)이나 지킬 것인가.

 

하여간 이 하나도 서러울 것이 없는 것들 옆에서, 또 이것들을 서러워하는 미물(微物)하나도 없는 것들 옆에서, 우리는 섣불리 우리 어린것들에게 설움 같은 걸 가르치지 말 일이다. 저것들을 축복(祝福)하는 때까치의 어느 것, 비비새의 어느 것, 벌 나비의 어느 것, 또는 저것들의 꽃봉오리와 꽃송아리의 어느 것에 대체 우리가 항용 나직이 서로 주고받는 슬픔이란 것이 깃들이어 있단 말인가.

 

이것들의 초밤에의 완전 귀소(歸巢)가 끝난 뒤, 어둠이 우리와 우리 어린것들과 산과 냇물을 까마득히 덮을 때가 되거든, 우리는 차라리 우리 어린것들에게 제일 가까운 곳의 별을 가리켜 보일 일이요, 제일 오랜 종소리를 들릴 일이다.

 

:  <서정주 전집>(민음사, 1983)에서

 

 

그런데 이 시는 6․25 직후 잿더미 속에서 씌어졌습니다.

그래서 더욱 이 시를 좋아합니다.

자주 이 팍팍한 삶 속으로 던져지는,

누구의 표현을 빌면 그 ‘깡마른 몸과 마음’에

이 시가 위로 되기 때문이지요.

지금 들도 그 즐거움 아닌지요.

저 무수한 생명 생명줄들, 저 환희들,

그래 살아보자 어깨 두들겨주는.

 

이른 아침 소사아저씨는 마을 공역으로 풀을 베러 나가고,

아침, 비 부슬거렸습니다.

어제부터 와 있는 아이들 무리는 ‘아점’을 먹기로 했다며

거의 정오까지 누워들 있고,

물꼬에서 퍽 없는 풍경이지요,

일하러나 오지 놀러오는 일이 어디 있던가요,

놀기도 하지만 일손을 보태겠다는 아이들이 오지요,

이런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지난 봄학기의 인연으로 어찌 사흘을 내주게 되었네요.

(그런데, 너무 무리하게 부탁해 왔을 땐 마음 편치 않더니

하하, 만나니, 어찌나 반갑던지요.

아이들은 아이들이니까.)

아이들은 고요하고,

이곳 아이는 읍내를 나가고,

집안 어르신이랑 달랑 둘 아침을 먹습니다.

비 내리는 고즈넉한 산골의 아침이 퍽도 좋습니다.

 

남도의 집안 어르신은 장독살림이나 돌봐주고 가실 걸음인데

풀을 보다 못해

숨꼬방 앞 천막 아래며 부엌 뒤란을

이른 아침부터 다 뽑아주고 계셨습니다.

밭에 들어서는 고추밭도 매고 고구마줄기 걷고

고추 따서 깻잎과 함께 소금물에 절여도 주셨지요.

이런 순간도 사는 일이 짠해집니다.

홀로 살필 수 없는 규모의 살림을 벌여

나이든 노모를 그리 아리게 하고...

 

닭이 또 알을 품더니 그예 병아리가 또 태어나고 있었습니다!

경사로운 일이지요.

밤에는, 어제부터 사냥꾼들의 총소리를 울리는 산골입니다.

산을 내려온 짐승들로부터 농작물 피해가 심각해

군에선가 보냈다는 그들.

짐승들이 쫓기고 있겠지요.

하아, 참, 그 또한 사는 일이 짠합니다.

 

아이들 보호자로 교사가 하나 더 오고,

아이들 열하나에 어른 둘이 내일까지 머뭅니다.

밤새 고래방에는 빔이 돌아갔습니다.

새벽이 오고 설핏 잠이 깨 일어나니 아직도 영화 상영 중.

날이 다 밝아서야 아이들은 영화관을 나왔네요.

이미 거기서 잠이 들어버린 아이도 있고.

또 예서 그리 뒹구는 날 또 언제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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