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 계자 여는 날, 8월 16일 달날 비

조회 수 1487 추천 수 0 2004.08.18 11:32:00

< 연극의 바다에서 >

"저어, 이번 계자에 참석한 황상현 엄마인데 상현이 좀 바꿔주실래요?"
이런 전화 처음 받아봤습니다.
아니 뭐, 꼭 사실이 그렇다는 건 아니고
그만큼 그런 일이 드물다는 뜻이지요.
"처음 아이를 떨어뜨려놔서..."
"안경 낀 녀석이죠?"
"예, 맞아요."
"오늘 한데모임에서 잠시 잃어버렸던 안경을 찾아꼈는데...
첫날이라 낯설어서인지 원래 그런 건진 아직 모르겠지만
말수가 적고, 다른 사람과도 아직 화악 섞이진 않아요."
"어머, 기억하시네요..."
"애들이래야 겨우 마흔 하나인데요, 뭐."
"잘 지내죠?...사촌이랑 같이 갔는데, 박정훈이라고..."
"아, 오늘 연두색 옷에 하얀 줄무늬 티 입었죠?"
"네!"
"잘 뛰데요, 움직임은 빠른데 속도는 안나던 걸요, 작아서 그런가봐요."
아이는 버젓이 잘있는데
엄마들이 안달이라고 흉을 봐줍니다.
낯선 곳에, 그것도 처음 보낸 부모 마음을 모를 리야 있을라나요,
다만 늘 우리 걱정보다 아이들은 훨씬 씩씩한 존재란 얘기를 하고픈 게지요.
"전화 잘 안될 거예요, 무소식이 희소식이겠거니 하셔요.
전화가 가는 걸 외려 두려워 하셔요, 무슨 일이 있기 쉽상이니.
잘 데리고 있을 게요, 아이가 없는 시간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대동놀이 끝내고 아이들 씻는 동안 잠시 들어온 걸음에 받은 전화였답니다.
끊자마자 이어지는 또 다른 전화.
"이번 계자에 참석한 정민수라고 있지요?"
바꿔달랍니다.
"습하면 가렵다고 로션발라 달라던 아이지요?"
애는 멀쩡(?)한데 어른이 문제라고 놀렸(?)지요.
오늘 민소매 흰색 티셔츠를 입었더라지요,
아마 겨드랑이 쪽으로 주황색 세로줄이 있었지 싶어요.
상현이하고 견주자면야 훨 밝은 친구지만
역시 아직 많이 어울리진 않습니다, 잘 웃긴 하지만.
그래도 하루재기 할 때 보니까 또박또박
이런 자리 익숙한 아이처럼 하던 걸요.
오늘따라 유난히 전화가 많습니다.
음성을 남겨놓으라는 전화기에
말없이 끊은 전화만도 만만찮습니다.
역시 처음 보내는 아이, 특히 사람을 통한 신뢰가 아니라
(여기를 다녀간 아이의 입을 통해서라든가)
물꼬가 나온 텔레비전 방송을 보고 온 경우가
적지 않은 까닭이기도 하겠습니다.

비내리는 학교로 마흔의 아이들이 들어왔지요.
공동체 아이도 하나 있으니 모두 마흔 하나입니다.
대문에서 빗 속에 뛰어들어오는 아이들을 맞습니다.
"어, 용석이...."
고모한테 밀려서 와서는 이 고생을 한다며
컴퓨터도 없고 게임기도 없다고 툴툴대며
지난 번 계자에서 시끄럽기 이를 데 없던 그였지요.
"이놈의 자슥, 오지 마라 그랬건만..."
처음 올 때야 남이 계기가 되더라도
다시 오는 걸음은 자신이 오고 싶을 때 오랬지요.
"제가요, 뭘 두고 간 게 있어서요..."
그래도 봤다고 더 예쁜 용석이다마다요.
오고파 온 걸음이라 그런지 지난 번 계자보단 말이 좀 됩디다.
새끼일꾼 수진이가 들어섭니다.
"선생님, 너무 보고싶었어요. 5학년때 뵙고..."
저야(수진이) 6학년 때도 다녀갔으나 제가 다른 나라에 머물고 있었으니
중 3이 된 지금에야 만난 게지요.
"소소한 재미야 여전하지만
요새는 니네들 때만큼의 그 뜨거움들은 덜한 것 같애."
"언니(새끼일꾼 수민)도 다녀오더니 그러더라구요.
우리랑 노는 게 다르다고."
전반적인 아이들 문화(어른문화 또한 그럴테지만)의 변화인 듯합니다.
이번에 처음 온 재은이는
수진이형(새끼일꾼을 그리 부릅니다)이 처음오던 초등 2년이든가
그때의 모습과 너무나 똑같아서
마치 우리들의 연속성을 말해주는 듯해 재미났네요.
어른 열일곱이 함께 하는 계자입니다.
또 어떤 날들일지요...

우리가 오후에 안에 있을 것을 어찌 알았을까요,
마침 비가 추적이고 있습니다.
(그래도 잠깐 비친 해에 물놀이 나갔다가
생쥐가 되어 들어온 아이들도 꽤나 됐더라지요.
이번 계자 제목(< 잠자리, 내려앉아 웃는다 >) 덕분일까요,
한껏맘껏 시간, 잠자리 꽁무니에 아이들이 많기도 하였더랍니다.)
꼬박 세시간 이십분을 강당에서 연극놀이했습니다.
분위기가 익어가자
슬픔을 불러들여올 녘 김제우가 그만 아버지 생각에 울음을 터뜨리고
너도나도 상념에 잠깁니다.
몸을 써서 일상에서 쓰는 도구를 만들어내고
대사를 만들고
한 사람 한 사람이 차례도 붙어가며 풍경을 이루고...
아이들이 덩어리로 뚝딱거리는 세상은, 장관입디다.
어느새 한 구석에선 세상 모르고 도흔이가 잠이 들고
모둠들끼리 한 장씩 옛이야기를 맡아 연극만들기에 들어갔습니다.
학교 아저씨인 젊은 할아버지도 흥부와 놀부 아버지로 등장하고
은정이는 몸을 정말 제비처럼 쓰며 무대로 날아듭니다.
한쪽 볼에 붙은 밥풀을 부지런히 떼먹는 건용이,
예쁜 제비도 다시 등장하는 세훈이,
박씨 정훈이는 둥근박의 꿈으로 웅크리고 있습니다.
한얼(기운을 좀 가라앉히라고 예선 땅이라 부르기로 한)이와 용석이는
저들 기질을 살려 천지를 날뛰는 도깨비가 됩니다.
마지막은 성종이의 자막 내리기로 끝이 나네요.

손말도 익히고,
다시 한 밤에 강당으로 옮아갔지요.
대동놀이야 늘 떠들썩합니다.
승현샘은(품앗이 성문샘의 바로 그 종아리입니다)
달리는 통로가 다 모자랍니다.
사실 뛰고 보니 열택샘이랑 속도는 고만고만한데
역시 승부의 세계에선 기선제압이 중요합디다.
권투같은 것 할 때도 그 왜 서로 노려보는 것 괜히 하는 것 아니더라니까요.
용승이는 똘망똘망한 눈만큼이나 야물게 뛰더니
그 속도로 다 달리고도 자기 패의 맨 끝 자기 자리까지도
냅다 고 속도로 달려가 섭니다.
얼마나 웃기던지요.
이야, 다들 기를 쓰고 달리는데
뭐 비가 와도 까짓, 노는데 아무런 염려가 없는 이들입니다요.
오인영은 코 앞에 와서 자꾸만 또 뛰고 또 뛰자네요.
전래놀이도 한 뒤 동애따기 한판으로 끝이납니다.
첫밤, 그리 깊어가네요.

한밤에는 나현이가 잠투정을 좀 했습니다.
곤한데다가 멀리 집을 떠나 그러했겠지요.
요 앞 계자에 이어온 여연이는
아프던 귀 괜찮다고 우기며 엄마를 설득해서 다시 왔다는데
밤새 아파서 뒤척였더라지요.
아무래도 고름을 한 번 빼주러 읍내를 가야겠습니다.

'하고잡이'(잘 반응하는)들이라
자잘한 재미가 많겠다 짐작해보는 계자입니다.
비 많으면 많은대로
또한 그 날씨의 특징을 살리며 지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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