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아침.

고마운 비입니다.

하늘도 갈무리를 돕습니다.

참았다 이제 비 내려준 비, 늘 고마운 하늘, 하늘 고마운 줄 아는 산골 삶.

물꼬의 여름이 그렇게 마무리 되어갔습니다.

 

여유 있는 아침이었습니다.

해건지기 대신 이불을 반듯하게 개고 가방을 꾸렸지요.

그리고 청소,

이곳에서 우리가 잘 지냈으므로,

나아가 이곳을 쓸 또 다른 이들을 위한 배려로.

마음을 그리 넓혀가는 걸 배우는 곳.

아, 우리 도언이의 밥상머리 공연도 있었습니다,

여러 아이들과 샘이 한 음씩 가르쳐주며 만든

퍽 따뜻했던 자리.

누구든 예술가이고 누구라도 그리 무대에 오르지요.

 

갈무리글, 그리고 ‘마친보람’.

복도에 길에 늘어서서 갈무리 인사를 나눕니다.

무어라 무어라 야단을 치는 투여도

그게 애정임을 이 아이들이 더 잘 압니다.

넘들 들으면 별말 아닐 것이나

그 질감을 우리 아이들은 알 겝니다, 아다마다요.

“유선아, 애썼어, 불편한 곳에서 너무도 훌륭했어, 산오름은 정말 멋졌단다.”

“우열아, 아이구, 애썼어. 잘 지내줘서 고마워. 또 와야지?”

“민석아, 봐라, 형아 없이도 잘 지내잖아, 훌륭했어.”

“준우야, 이 툴툴아, 고만 좀 툴툴대고. 애썼어.”

“현지야, 뒷간 못가면 새끼일꾼 고려해봐야겠어. 애썼다. 고맙다.”

“태빈아, 처음 온 곳인데, 많이 불편했을 텐데, 잘 지내줘서 고마워. 좋은 날 또 보자.”

“승준아, 늘 정리의 왕이었어. 훌륭했어. 애썼다.”

“이노옴 광현, 시끄러워 죽는 줄 알았네. 앞 좀 보고. 애썼다. 고마워.”

“헤헤, 우리 무량이, 일루 와. 애썼어, 훌륭했어, 너무 너무 보고 싶을 거야.”

“현진아, 오래 오래 보자. 훌륭했어. 멋졌어, 우리 바람돌이!”

“정인! 멋졌어.”

“다경아, 많이 컸더라. 또 보자.”

“유진, 처음 와서 불편했을 텐데 잘 지내줘 고마워. 또 보자.”

“용균아아아아, 훌륭했어! 니네 부모님 보고 싶다, 이런 아들 부모는 어떤 분인가.”

“민혁, 애썼어, 멋져! 금세 다시 보자.”

“가람아, 잘 지내줘서 고마워. 괜찮은 오빠 연락처는 받아뒀냐? 물어봐야지.”

“무겸, 애썼어. 씩씩했어, 정말. 3주나 잘 지내줘서 고마워.”

“도언, 화장품 가게 엄마, 15톤 안하고 5톤 덤프트럭 모는 아빠, 대전 고모네 유학하는 형아, 예쁜 동생, 멋진 가족의 씩씩한 아들!”

(도언이를 부를 땐 늘 그리 부름말이 길었더랍니다.)

“하하하, 우리 성빈, 선정샘, 철기샘, 그리고 세현이도 보고 싶다 전해줘.”

“일루 와, 건호! 뭐, 다른 친구들이 내가 한 거 갖고 놀면 마음이 너무 아파? 그럴 땐 어디가 아픈 거라고?”(건호, “배요!” “그래, 그건 마음이 아픈 게 아니라 심술이야, 심술!”)

“도영! 멋졌어! 겨울, 기다리지.”

“해찬, 고맙다. 해인이도 보고프다 전해주고. 예비새끼일꾼들, 정말 멋졌어.”

“원규, 아직도 석궁 휘둘고 다녀?”

“석영, 하하하, 아주 유쾌했어. 처음 온 걸음인데 잘 지내줘 고마워.”

“정윤아, 어깨 좀 펴. 처음 왔는데, 많이 불편했을 텐데, 잘 지내줘 고마워.”

“헤헤헤, 승훈아, 또 보자.”

“윤호야, 너랑 많이 친해져서 좋아.”

“가현아, 아이구, 잘했어, 애썼어. 불편한 곳에서도 잘 지내줘 고마워.”

“혜준, 아이, 엄마 얼굴 못 봤잖아. 누가 데리러 와?”

“네이놈, 선모야, 앞 좀 봐라, 앞. 다 얘기한 거 꼭 물어보러 오고!”

“어이구, 한결아, 씩씩하게 잘 지내 고마워.”

 

마지막 때건지기.

마지막까지 정성스런 밥바라지 인교샘과 준호샘.

이곳에 남아 일상을 살아갈 이들을 위해 얼마나 정갈하게 정리를 해주셨던지요.

뭉클해지는, 그리고 또 배우는 뒷모습이셨습니다.

 

영동역, 아이들이 떠나고 샘들만 남았습니다.

역사 안에서 그대로 주저앉아 갈무리모임.

화장실 얘기가 제일 덜 나온 계자였지요.

늘 냄새에 대한 호소가 컸더랬습니다.

일단 규모가 적었고,

새로운 구조를 실험해봤고,

샘들과 소사아저씨가 각별이 더 자주 둘러보았고,

아이들도 이미 감안하고 왔을 테고...

 

이번 여름도 ‘기적’이었습니다.

첫 일정, 계자에서 따로 밥바라지가 없기는 처음이었지요.

그걸 가능하도록 해준 규모,

그리고 수연이며 윤지며 새끼일꾼의 손발들.

희중이의 적절한 도움,

안팎을 살피던, 특히 바깥에서 지원해야할 여러 일들을 해준 기표의 듬직함,

아, 저는 또 이 일에 발목이 잡힙니다요.

이러니 어떻게 이 일을 못한다 하겠는지요.

 

두 번째 일정의 밥바라지,

역시 계자의 원활한 뒤는 언제나 그들이 있습니다.

때로는 계자의 온전함은 순전히, 정말 순전히 그 덕일 때가 많습니다.

고맙습니다, 인교샘, 준호샘,

정성스럽게 밥을 주어서,

마음 편하게 안으로 집중하게 해주어서.

 

그런데, 우리들이 잘한 건 잘한 거고,

그렇다고 잘 못한 게 사라지지는 않지요.

공간을 알고 모르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나이 먹은 사람이 뭐가 달라도 다릅디다.

선병샘이 마지막까지 아이들 지나간 흔적을 따라

본관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돌아봐주었지요.

감동했습니다.

그리고 더 살피지 못하는 자신을 반성했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손을 놓지 않는 것이 필요합니다,

아이들을 보내는 순간까지.

혹 선생들끼리 논다고 아이들이 배제되지는 않았나도 반성해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정리와 책임을 강조하면서

정작 우리들은 산을 다녀와 들고 갔던 가방을 팽개치진 않았는지,

폐쇄한 책방에서 정작 선생들은 소파에 앉아 무엇을 했는지,

우리는 우리들의 끝을 잘 매듭지었는지,

나가는 순간까지 우리들의 자리는 돌아봤는지 물어야 합니다,

가끔 우리가 칭찬하는 일 잘한다는 것이

눈앞에 보일 때만 그렇지는 않았는지.

옷방 옷 하나를 정리하면서도 이곳을 쓰기 위한 자세가 아니라

그저 눈에 보이는 대로 허울 좋게 한 것은 아니었는지.

물론 힘이 들어서 그랬을 거라는 이해는 이해고,

우리들이 힘을 더 못낸 건 못낸 것으로 냉정히 인정하고 성찰해야 합니다,

영동역에서만 하더라도

아이들을 보내는 순간까지 혹여 전화기를 붙들고 있지는 않았는지.

 

뒤늦게 신청을 못하고 애를 태운 부모들의 연락이 있었습니다.

고맙고, 아쉽고, 죄송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일정을 취소하면서 물꼬의 살림에는 다소 어려움이 생겼지만

얻은 게 더 많았던 여름이었습니다.

교사의 질을 높이자던 뜻대로

샘들이 끝까지 끈을 잡고 좇아왔습니다.

아무리 뜻이 좋은들 구성원들이 함께 하지 않으면 그게 무슨 의미이겠는지요.

그런데 이번 여름 함께 한 이들, 정말 ‘대단’했습니다.

앞 계자의 품앗이 같은 새끼일꾼들,

뒷 계자의 훈련을 감내한 새끼일꾼들,

너무 지독해서 때로는 맘이 상할 법도 했으련만

온갖 욕을 잘 받아들이며 훈련을 해낸 친구들,

놀랍고, 또 놀라웠지요.

아, 어디서 이 사람들이 왔는지요,

어디서 이 아이들이 왔더란 말인가요...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다음 계절을 기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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