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 계자 사흘째, 8월 18일 물날 비

조회 수 1560 추천 수 0 2004.08.20 19:45:00


< 비 오면 안도 바깥입니다 >

이 비 내리는 데도
고기잡이 어항을 만들어 된장 들고 우르르 나가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비옷 입고 우산도 들고
샘 두 분까지 더해 고래라도 잡아올 기셉니다.
저들보다 더한 기세로 넘치는 시내를 보면 다음에 하지 싶을 걸요.
돌을 찾아 길을 떠나려고 문 앞에 섰던 이들은
비 땜에 오래 서성이더니
저들끼리 강당으로 갑니다.
저녁에 몸으로 유명한 조각상들을 만들어보였더라지요.
삼층석탑도 쌓았더이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더니 돌대신 돌머리를 가지고 말입니다.
조각도를 들고 있는 이들이 꽤나 되네요.
재용이가 이틀째 인형을 다듬고 있고
성종이는 칼을 만든다더니 안마기를 내밀어요,
효자났지요.
그런데 뭐 꼭 그걸 만들려고 했다기 보다
어찌 어찌 하다보니, 라고만 말하면 서운할 테고...
김제우가 제 손으로 만든 피리를 불었어요.
모두 숨을 죽였습니다.
"어, (소리)난다, 난다!"
단소만들기에 실패한 현우는 자동차에 도전하고
윤석이는 도끼 밑부분이 날아가 버리자 방패라고 우깁니다.
호정이 은정이가 나무탑을 만들고
윤규는 장승에다 세훈이는 자전거까지 만들었습니다.
"이게 자전거도 되고..."
이름만 갖다 붙이면 다 그것(그이름)입니다.
넘들이 했으면 콩이 어떻네 팥이 어떻네 얼마나 말 많았을지요.
성훈이는 팔다리가 돌아가는 나무 인형을 만들었는데,
"야, 신기하다."
나현이는 몸까지 일으켜 세우며 감탄을 했더라지요.
이야기 줄기를 잡고 소품을 만들고 극놀이를 하는 곳도 있습니다.
팔목이며에 나뭇잎들을 주르르 달고
도끼질에 맥없이 쓰러지는 은비와 다온,
목에 자동차를 걸고 제 역을 드러내는 민수,...
신문지가 얼마나 따뜻한지를 실험해보겠다던 현우와 윤석이는
어젯밤 이불대신 덮고 잤다는데
아이들이 궁금하기도 했겠지요.
"일어나니까 옆에 있던 제 이불을 같이 덮고 있던데요."
"몸부림이 심해서..."
현우의 변명입니다.
신문지를 둘둘 말아 단열재처럼 옷 안에 넣고 잤던 윤석이는
바둥거리며 잔 탓에 신문지가 다 찢어지긴 했으나
아주 따뜻하였다지요.
유진이와 예림이는 종이학으로 왕관을 만들어 썼고
맹재우는 종이 목걸이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범준이는 풍뎅이며 공룡이며 잔뜩 접고
흙으로 빚은 흙 속 생물들을 제게 보여 준다며
손목을 끌고 가 오래 설명을 했더랍니다.
지점토로 흙에 사는 것들을 표현하던 재용이,
"엄청 빠르네, 첨에 집에 가고 싶어 죽을라 그랬는데..."
성큼 가는(흐르는) 날에 놀라워라 합니다.
상현이가 열이 좀 나서 누웠더니
이마에 얹어준 두부머리띠 덕에 저녁엔 대동놀이 하러 나섭니다.
코비가 잦은 은비는 오늘에야 코피 한 차례 쏟았고
맡겨둔 우리밀 과자와 물통의 행방이 걱정되어 울던 운택이는
제 장구를 들여다보려다 가방을 그만 찢었고,
지렁이와 개미가 싸운 얘기가 용승이 그림에 나오자
(엄마가 어데서 내려 만나는지 말했는데
그만 그걸 잊었다고
잠이 오는 서슬에 대성통곡을 한 용승입니다)
멀리서 한 마디 툭 나오네요.
"왜 싸워? 서로 공생해야지.
아니나 다를까 민재지요..
저(민재)는 걸핏하면 싸우면서...
아이들이 그린 그림이 이어집니다.
"나도 구렁인지 뱀인지 몰라요."
하나 하나 짚어가며 설명하던 윤규 그림엔
산책 온 아이가 떨어뜨리고 간 사과도 있고
시소 타고 가는 개미가 나오는 예림이의 도화지...
채리는 배 아프댔는데
쓸어주고 화장실 다녀오래니 개운하답니다.
하던 일을 멈추느라 컴퓨터를 끄고 있는 동안
옆에 누워있던 채리 배를 가만 가만 쓸어주던 류옥하다,
배가 어떤가 진단하고 방에 가서 누워 있으라는데
아픈 채리를 부축해서 일어나서는
이불 깔아주고 돌아왔습니다.
"보일러를 좀 틀었으면 싶네요..."
가난한 우리 살림을 늘 듣는 류옥하다,
쓰윽 제 얼굴을 올려다보며
뒷말을 붙입니다.
"약간..."
"내가 가볼게."
"이불은 두텁게 깔아줬고, 그냥 약간만 좀 틀어주면 되겠어요."
의협심의 나이 일곱 살입니다.
그런 마음이 살아가면서 사라지지 않을 수 있음 얼마나 좋을지요.

가끔 아이들 이름을 잘 왼다고
칭찬 혹은 부러움 비스무레한 말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그나마 좀 잘하는 일이지요.
것빼면 뭘 딱히 잘하는 게 없다는 생각이
절 허겁거리게 합니다.
아이들과 움직이려니 필요 때문에
이것저것 만지작거리는 건 더러 있지만
정작 좀 합네 하는 재주는 없거든요.
이 곳을 드나드는 이들에게서도 간혹 그런 이야기를 듣습니다.
할 줄 아는 게 없다는 자신 때문에 안타까워하거나
자꾸 잡다하게 배우고파 허둥대는 게지요.
그런데 재주가 많으면야 더할나위 없겠지만
사실 우리가 좋은 선생이 되는 것에는
궁극적으로 좋은 사람이 되는 게 먼저가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어떤 '좋은'이냐가 또한 관건이겠지만.
한편,
좋은 사람이 되려는 길에
교사 만한 자리가 없다는 생각 듭니다.
끊임없이 아이들을 통해 자신을 투영하게 되니까.
아이를 통한 반영을
제대로 읽을 줄만 알면 부모 만한 교사가 또한 없겠지요.
좋은 사람이 던지는 파장이
호수의 물결처럼 아이들에게 번져간다면
분명 보다 나은 세상 오지 않겠는지요.
재주야 재주꾼들한테 배우면 되지요.
제 간절함이 있다면 아이들이 어느 시기인가 어딘가에서
기예를 만나 익힐 수 있지 않겠는지요.
생(生), 그거 생각보다 아주 긴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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